# 01.3.2.3.15.6. 순혈과 순수
## 01.3.2.3.15.6.1. 구약의 교회
## 01.3.2.3.15.6.2. 참 교회
## 01.3.2.3.15.6.3. 율법의 종
## 01.3.2.3.15.6.4. 순혈 제국
## 01.3.2.3.15.6.5. 순수의 제국
## 01.3.2.3.15.6.6. 다윗의 무너진 장막
## 01.3.2.3.15.6.7. 거짓(개) 이스라엘: 인종 청소주의자
## 01.3.2.3.15.6.8. 참 이스라엘: 거듭난 새 피조물
## 01.3.2.3.15.6.9. 나 예수의 나라
## 01.3.2.3.15.6.10. 구약 이스라엘의 결국
# 01.3.2.3.15.7. 믿음과 혈통
## 01.3.2.3.15.7.1. 올리브나무 비유
### 01.3.2.3.15.7.1.1. 재배종 올리브 나무
### 01.3.2.3.15.7.1.2. 재배종 올리브나무의 가지
### 01.3.2.3.15.7.1.3. 농부와 우리의 접붙임
### 01.3.2.3.15.7.1.4. 참 올리브나무 비유의 의도
### 01.3.2.3.15.7.1.5. 바울의 선민적 오류
#### 01.3.2.3.15.7.1.5.1. 오류의 역사적 증거
##### 01.3.2.3.15.7.1.5.1.1. 역사적 멸망
###### 01.3.2.3.15.7.1.5.1.1.1. 제1차 로마-유대 전쟁
###### 01.3.2.3.15.7.1.5.1.1.2. 제2차 로마-유대 전쟁
###### 01.3.2.3.15.7.1.5.1.1.3. 제3차 로마-유대 전쟁-1
###### 01.3.2.3.15.7.1.5.1.1.3. 제3차 로마-유대 전쟁-2
01.3.2.3.15.7.1.5.1.1.3. 제3차 로마-유대 전쟁-2
**로마의 대응**
당시 유대 속주의 총독이었던 퀸투스 티네이우스 루푸스는 랍비 아키바를 긴급 체포해 처형했다. 그러나 반란은 이미 들불처럼 유대 전역으로 번져 있어 조기 진압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초동 진압 실패의 책임을 지고 역사에서 퇴장했다. 총독이 교체되는 이 장면을 보면 로마에서 이 전쟁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로마는 5개 군단 8만 명을 유대 속주의 반란 진압을 위해 추가 투입했다. 그중 제22 데이오타리아나 군단은 아라비아 페트라이아에서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가던 중 매복에 당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유대 전역의 계곡과 동굴에 매복해 있던 유대인의 무리는 오랜 반란의 준비로 무기와 그 수가 굉장했다. 그들의 게릴라 전술은 로마군을 당혹하게 했다. 이집트의 제2 트라야나 포르티스 군단도 투입되었다. 시리아 총독 가이우스 포비키우스 마르켈루스는 제3군단 갈리카를 인도해 전장에 투입되었다. 아라비아 속주 총독 티투스 하테리우스 네포스도 제3 키레나이카 군단을 인도해 전장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제22 데이오타리아나 군단이 피해를 입은 것처럼 다른 군단들도 유대 고원과 광야, 네게브, 갈릴리, 사마리아, 요르단 계곡 등 수많은 곳에 동굴 요새를 구축하고 기습을 가하는 바르 코크바의 군대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고전하며 연전연패를 하던 로마는 섹스투스 율리우스 세베루스를 유대 속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투입했다. 그는 브리타니아에서 군대를 지휘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10 게미나 군단과 제9 히스파니아 군단을 포함한 3개 군단과 5-6개 코호트, 30-50개 보조병 부대를 인솔해 유대 속주에 도착했다. 이 군대는 도나우 강에서 차출된 것이었다. 처음 투입되었던 군대가 유대 속주에 가까운 곳과 이집트 등의 북아프리카 쪽에서 차출되었는데 이제는 그 후방 도나우 강 유역들의 군대들이 차출되었다. 도나우강은 현재 독일 남부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흘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다다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카르파티아 산맥과 발칸 산맥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곳은 아이언 게이트(Iron Gate, 철문)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루마니아를 통과한다. 이 지역은 광대한 로마의 북부와 북동부 지역으로 이 지역의 거대한 군대가 투입된 것이다. 로마군의 군세는 이제 12만이 되었다. 로마 전체 군사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군대가 유대 속주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모였다.
로마군은 지독한 게릴라들의 늪을 정복하기 위해 초토화 전략을 사용했다. 점령지의 모든 것을 파괴해 유대인들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도시와 농경지를 파괴했다. 점령하는 반란군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이렇게 박멸하지 않으면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알기에 로마는 이러한 전략을 펼쳤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로마의 전략이 아니었다. 심판이었다. 유대인들이 로마인과 그리스인을 박멸한 것이 먼저였다. 그에 앞서 나 예수와 나의 교회를 잔멸 하려 했다. 저들이 나와 나의 앞에 보낸 선지자와 나의 뒤를 이은 성도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우리(하나님)가 말하는 하늘나라는 저들의 나라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저 유대인들의 하늘나라는 유대교 세계제국이다. 그러나 우리(하나님)가 말하는 하늘나라는 유대교 광견들의 욕심을 이루어 줄 수 없다. 그래서 저들은 우리를 거부했다. 거부할 뿐만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교회를 잔멸 하려 했다. 저들은 믿는 이방인도 개로 여겼다. 그리고 나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들은 이단으로 몰았다. 그렇게 몰아서 목숨을 빼앗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유대교 세계제국을 반대하는 모든 것을 죽여 멸해야 하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주의의 뿌리는 유대교다. 히틀러는 역사를 관찰하여 민중들을 가장 강력하게 선동할 수 있는 도구가 무엇인지 찾았다. 그래서 그 도구가 인종우월주의인 것을 파악했다. 바로 유대교와 유대교 이단 이슬람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종교야 말로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한 최고의 도구다. 그것도 한 민족을 세상 위에 가장 뛰어나고 선택받은 민족으로 선포하여 그들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야 말로 신의 뜻임을 세뇌시킨다면 민족 광신도들을 막을 길은 없다. 역사에서 유대교와 이슬람이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그 종교의 교주가 된다면 인간이지만 신적인 존재가 된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그러한 존재이고 이슬람에서는 모하멧이 그러한 존재다. 그래서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메시아로 자신을 포장했다. 그것을 독일 루터 교회가 믿고 독일과 열방에 선포했다. 히틀러는 민족의 메시아이며 세상의 메시아가 될 것임을 선포했다. 그래서 독일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광신의 불길을 올렸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유대교 세계 제국을 모티브로 하여 히틀러가 고안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더 강력한 광신도인 유대인을 멸하기로 한 것이다. 유대인을 멸해야 자신이 만든 게르만 민족주의보다 더 강한 광신의 세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판단하기에 자신이 고안한 게르만 인종우월적 기독교 이단의 원류인 유대교는 자신의 종교를 뛰어넘는 원류였기에 유대교는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종교가 게르만족을 세뇌시켜 세상을 정복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르만 민족 인종우월주의의 원형은 유대교다. 유대교, 이슬람, 그리고 기독교의 이단인 나치교는 모두 동일한 특징을 가지는데 강제 개종과 강제 개종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학살이다. 이러한 광신도의 집단은 세상을 파멸시킬 광견의 무리다. 저들은 죽기 전에는 세상에 대한 학살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로마는 광견 같은 무리들을 앞에 두고 싸워야 했다. 죽음을 앞두고도 이방 개들을 멸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저 미친 광견들(유대인)을 로마가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이는 길밖에는 없었다. 죽기 전에는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는 미친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한 종족을 멸하는 심판의 이유는 이러한 것이다. 극악한 부패가 쌓이고 쌓여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을 때, 그들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자들을 멸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에게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주어 더 이상 악행을 지속하지 못하게 만든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한 노아홍수 이후의 공멸방지툴이다.
로마의 초토화 전술에 바르 코크바도 무너져갔다. 이는 전면전이 아닌 지구전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초토화해서 그 땅의 현지인이었던 유대인의 모든 전략적 우위를 파괴했다. 더 이상 유대인들은 숨어서 게릴라 전술을 펼칠 힘이 없었다. 양식이 떨어지고 수원지에 가서 물을 길어올 수도 없었다. 보급로를 차단하고 요새를 하나하나 점령하며 초토화하는 로마의 전략은 느렸지만 집요했다. 베트셰안 시의 테 살렘 계곡 근처에서 개선문의 잔해가 발굴되었다. 제6 페라타 군단의 진영이었던 곳이었다. 개선문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영광을 바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고고학자들 중에는 이것이 바르 코크바가 이곳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카산드리아의 발굴 현장에서는 파괴의 살육의 증거들이 남아있다. 이스라엘 벧구브린 국립공원(Beit Guvrin-Maresha National Park) 근처에 위치한 베테르(Betthe, 현 Betar) 동굴(위도 31°35'49.1"N 경도 34°54'02.3"E)에서는 고고학적 문헌들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동굴의 문헌들을 통해 당시 사회 구조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여러 가지 도기와 일상 용품들이 발굴되어 전쟁 시기의 사람들의 생활 상을 엿볼 수 있었다. 반란 기간 중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와 방어 시설의 잔해도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바르 코크바의 무리는 이곳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135년 여름 베테르 동굴은 로마군 제5 마케도니아 군단과 제11 클라우디아 군단에게 포위당했다. 유대인들은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고 항전했다. 죽이고 죽여도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죽은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랍비 문헌에서는 로마군들이 타고 있는 말의 코 높이까지 유대인들의 피가 차올랐다고 했다.
바르 코크바의 최후에 관한 기록은 여러 설이 있다. 산헤드린에서 그를 거짓 메시아로 판결하고 처형했다고도 한다. '거짓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벤 쿠시바(Ben-Kusiba)라는 이름을 그에게 붙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는 로마 군에게 살해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죽여 그 수급을 베어 황제 하드리아누스에게 올렸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베테르 동굴에서 뱀에 물려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중 역사적 사실은 로마 군에게 살해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메시아로 여겼던 자가 이방인인 로마군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 스스로 산헤드린에서 거짓 메시아로 분별하여 죽였거나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뱀에게 물렸다고 했다. 뱀에게 물려 죽었다고 한 이유는 자신들이 선택한 메시아가 가짜도 아니며 전쟁도 바르 코크바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이겼을 것인데 불의의 사고로 이렇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는 핑계를 대기 위함이다.
이렇게 실패한 전쟁임에도 1923년 유대인 청년단은 이곳 베테르의 이름을 자신들의 단체에 붙였다. 저들은 거짓 메시아와 거짓 하늘나라로 증명된 것이라도 그것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일지언정 자신들의 세계 제국을 향한 집념의 표상이 된다면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저들은 세상을 집어삼킬 미친 광견들이다. 저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며 사단의 회다.
베테르에서 참패하고 지도자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광견들은 반란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초토화되지 않은 지역에 있는 무리들은 계속해서 반란을 지속했다. 모두 죽지 않는 한 저들은 반란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군은 유대 속주 전체를 모두 초토화시켰다. 죽이고 죽이고 죽여서 더 이상 반란을 일으킬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1년이 더 지난 136년에야 전쟁이 끝났다. 학살하고 남은 무리는 모두 포로로 잡아 노예로 팔았다. 어떤 기록에는 이 전쟁으로 인한 유대인 전사자의 수가 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로마는 이 극악한 인종우월주의자 유대인들의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쟁 후 유대인들에게 가혹한 압박을 가했다.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출입을 금지시켰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성지가 있는 성전의 터에조차 출입이 금지되었다. 자신들의 자긍심의 원천이었던 다윗 왕가의 유적 근처에 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또한 성전도 사라졌다. 원래는 예루살렘의 맞은편에 건축하였던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를 예루살렘 성전 터 위에 건축했다. 예루살렘 성전터 위에 세워진 아일리아 카피톨리나에는 성전이 없었다. 이로 인해 성전 복원의 모든 소망은 사라졌다. 이미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때에 파괴되었으나 다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아일리아 카피톨리나 안에 복원되었을 성전이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반란으로 이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영원히 성전의 복원은 없을 것이다. 우리(하나님)의 발이 머물던 임재의 상징인 지성소도 없을 것이다. 이는 구약의 약속이 나 예수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유대교는 그 중심이었던 성전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라도 회개하고 돌아왔어야 했다. 그런데 저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저들은 성전 대신 거짓 미쉬나와 그 주석들을 만들고 그것을 탈무드로 만들어, 유대교 세계제국의 변태적 야망을 다시 꿈꾸었다. 이 일을 주도한 자들은 바리새파의 랍비들이었다. 이들이 유대교의 주축을 이루는 랍비 유대교다.
자신들이 학살했던 대로 학살을 당한 자들 외에 살아남은 자들은 노예가 되어 세상에 흩어졌다. 노예가 되지 않았던 자들도 망국의 백성이 되어 나라 없이 떠돌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의 배역하고 악독했던 이스라엘을 향한 오래 참음도 이제 끝인 것이다. 저들은 믿지 않음으로 심판을 당했다.
01.3.2.3.15.7.1.5.1.1.4. 제1-3차 유대-로마 전쟁의 결과
유대-로마 전쟁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랍비들에 대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랍비조차 더 이상 히브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히브리어는 단지 종교적 언어로 남게 되었다. 종교적인 글들을 아람어로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AD 66-73년에 있었던 제1차 유대 반란으로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저들은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코이네 헬라어나 아람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이는 민족성의 말살을 뜻한다. 종교성의 상실을 뜻한다. 모국어로 된 히브리어 성경을 읽을 수 없고 심지어 나 여호와의 이름이 여호와인 지 아니면 야웨인지 야훼인지 또는 야후웨인지도 알지 못하는 저들은 더 이상 유대교의 본산이 아니다. 저들은 저급한 개잡종의 무리에 불과하게 되었다.
둘째, 또한 저들이 흩어져서 언어만을 잊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혈통의 정체성도 잃었다. 순혈을 강조하고 선민의식으로 유대교 세계제국을 고대하던 저들의 혈통은 이국의 강간범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이 일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저들이 회개하지 않고 2차, 3차 반란을 이어갈수록 저들에 대한 저주와 징벌은 더 강화되어 저들은 더 깊은 지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강간으로 인한 혈통의 혼탁은 이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계속되어 결국 2000 여를 지나는 동안 저들의 혈통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게 되었다.
셋째, 저들이 바라던 유대교 세계제국은 박멸의 대상이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곳에서 유대인 박멸이 이루어졌다. 약탈과 강간과 멸시가 그들을 따라다녔다. 저들도 자신들의 조상들과 같이 나를 죽이고 나의 교회를 멸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이 회개하였다면 저들은 더 이상 저주와 약탈과 강간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말한 대로 나 예수를 죽인 피의 값을 자신들이 감당하려는 교만의 악취를 계속 풍겼다. 자신들의 죄가 관영하여 결국 저들은 종교적으로도 혈통적으로도 멸절을 당하게 되었다.
넷째, 예루살렘은 궤멸되었고 성전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을 중심으로 한 히브리인들도 사라졌다. 성전이 파괴되었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이미 성전은 파괴되었다. 그러나 후대의 로마 황제들이 성전의 재건을 약속했지만 유대인들의 거센 반란의 결과로 성전의 재건은 영구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성전이 없는 유대교는 유대교가 아니다. 성전이 없이는 죄를 용서받을 길도 없고 피의 언약으로 언약궤 속죄소를 통해 우리를 만날 길도 없다. 성전이 없는 구약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다. 저들은 이제 유대교라는 이단으로 살 수밖에 없다.
다섯째, 최종적 심판의 상징으로 성전이 파괴되었고 이후로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한다. 2차 성전은 1차 성전이 파괴된 이후 70년 만에 포로 귀환하여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세우려는 3차 성전은 2000년이 지났지만 세울 수 없다. 심지어 이스라엘이라는 현대에 세워진 나라가 계속하여 자신의 땅 안에 있는 모리아 산에 성전을 회복하려 하고 있지만 세울 수 없다. 여러 차례 중동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성전은 회복할 수 없다. 그 이유가 있다. 이제 성전은 우리(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아니다. 나 예수의 피를 통한 화목과 속죄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옴의 상징이 아니다. 원형인 나 예수가 왔는데 저들은 계속하여 구약의 예표와 모형을 붙들고 우리(하나님)를 거부하고 있다. 저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너희는 우리가 유대인들이 박멸당하는 것을 기뻐한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저들이 광견병에 걸린 인간과 같이 미쳐서 날뛰는 것을 보고 비웃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리(하나님)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기뻐하겠는가? 가는 곳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약탈과 강간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였겠는가? 그렇다면 저 유대인들은 왜 저런 역사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함께 계속 살펴보고 그 답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