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경유지 태국

by 에스겔

저가 항공편을 탔기 때문에 인도로 가는 경유지 태국에서 23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공항 근처 저렴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하루에 5만 원 정도 하는 숙소였다. 태국 기준으로는 그렇게 싼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위생이 엉망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무거운 짐을 들고 4층에 있는 방까지 올라가야 했다. 호텔 직원들도 찜통 같은 날씨에 짐을 드는 걸 도우면서 계속 영어와 태국 말을 섞어가며 욕을 했다. 자신들도 힘든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팁을 강요하는 행동이었다. 숙소의 문을 열고 아내는 나를 향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하나님이 이런 곳으로 보내셨다니 이게 말이나 돼? 도대체 기도를 하고 온 거야? 기도를 안 하고 와서 이렇지? 왜 이렇게 문제가 계속 생겨?"


아내의 말에 나 자신을 돌이켜 봤다. 병원 침대에서 기도했다. 아픈 가운데서도 정신을 차려 비자를 신청하면서도 기도했다. 며칠 동안 비자 신청이 오류가 났을 때는 무엇이 문제 인지 묻고 또 물으며 대적기도를 하라고 하시면 대적기도를 하고 인내를 가지고 하루 종일 인도 비자 사이트에 양식들을 작성했다. 원래 그런 장애들이 잦은 사이트라지만 며칠 동안 신청 사이트에 오류가 발생하니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그래도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마지막까지 여러 방법을 동원해 신청을 했다. 결국 모바일 사이트로 신청하는 것을 포기하고 PC로 사이트에 접속해 7일 만에 영문으로 비자 신청에 성공했다. 남들이 보면 집착광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 출입국 관리소에서 일부러 신청을 막으려고 계속 사이트 장애인 것처럼 속였던 것 같다. 신청을 받고 나서 입국을 막을 사유가 없으니 신청 자체를 막은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24시간 7일 가까이 신청서를 수시로 새로 작성을 하니 신청은 받아주었는데 이유도 밝히지 않고 승인 거부를 했다. 2025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을 했는데 종전이 되었지만 두 국가 사이의 긴장은 여전했다. 내가 예전에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그 길들을 다니며 기도했는데 이번에도 인도에서 파키스탄 국경을 넘으려는 계획을 비자 신청서에 썼기 때문에 막으려 한 것이다. 또 인도 우익들이 정권을 계속 장악하고 있어서 인도에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차별이 심해졌다. 기독교인에 대한 테러가 이슬람권과 비슷하게 한 해에 600건 이상 발생한다. 내가 기독교 선교사인 것을 파악했는데 들어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것도 종교 비자가 아닌 여행 비자로 인도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 뒤에 인도 출입국 사무소에서 조사를 받을 때 그들이 했던 질문을 보고 그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저들이 계획적으로 비자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데 인내심의 한계가 와도 하나님께서 계속 신청하라고 해서 잠들지 않은 거의 모든 시간을 동원해서 반복해서 양식을 작성했다. 밤에도 새벽까지 신청을 했다. 그런데 그 기간에 기도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내가 아내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도 기도하지 않은 문제는 아니라고 하셨다. 영적 공격이라며 끝까지 가라고 하셨다. 사단을 대적하라고 하셨다.


아내는 저가형 항공기, 좁은 이코노미석, 장거리 비행, 택시 기사의 바가지요금, 원래 예약과 다른 객실, 이 모든 것에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속임이고 매 순간 사기를 치는 것이 선교지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가난한 저개발 국가였던 시절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바가지에 사기를 섞어 돈을 갈취했었다. 나는 선교지에서 그런 일을 너무 많이 당해서 익숙해져 있었지만 아내는 처음 당하는 일들에 당황하고 화가 난 것이었다. 부산 병원에서 양산 집으로 그리고 김해 공항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7시간 정도를 비행하여 태국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넉다운이 되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태국 입국 수속을 마치는데 2시간 이상 걸렸다. 호텔 픽업 서비스를 예약하고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픽업 리무진을 기다리는데, 오겠다는 시간에 리무진은 보이지 않았다. 호텔에 전화를 해도 전화는 먹통이었다. 메신저로 연락을 시도해도 먹통이었다. 공항 인포메이션과 경찰을 찾아 호소를 했는데도 저들도 호텔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은 동일했다. 그렇게 1시간을 또 허비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20~30분을 달려서 호텔에 도착했는데 택시비도, 픽업 서비스 비용도 환불해주지 않았다. 호텔과 아고다(Agoda)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절차를 거쳐서 뒤에 돈을 환불하기로 했지만 결국 환불은 없었다. 객실도 예약된 방이 아닌 다른 방을 보여 주며 그냥 그곳에 들어가라고 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더블 룸이었는데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 방은 곰팡이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경험상 이런 경우는 싸워야 한다고 판단한 나는 호텔 직원들에게 따졌다. 결국 더블 룸은 4층 밖에 없다며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걸어서 올라가라고 했다. 그때 시간이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였다. 아내와 나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을 정도로 지쳤다. 그래서 호텔 직원들과 성과도 없는 말싸움을 포기하고 그냥 4층 객실로 올라갔다. 그런 선교지의 현실을 처음 체험하는 아내가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여행사나 선교사들을 통해 선교지에 들어가면 조금 낫지만 사실 바가지나 사기 피해는 막을 수 없다. 대부분은 자신들이 사기나 바가지를 당했는지도 모르고 당한다. 조금 알게 된 나는 흥정을 하기도 하고 따지기도 하는 것이다. 동남아나 인도에서 저렴하고 좋은 서비스는 없다. 바가지와 사기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인도에서 한국 중급 모텔 정도 되는 곳에 숙박을 하려면 10-20만 원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예전에 많았던 게스트 하우스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가격도 싸지 않다. 한국 모텔보다 못한 곳에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바가지를 씌우는 곳이 대부분이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곳도 많다. 정해진 서비스이니 온수를 틀어달라고 하면 보일러를 틀었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온수는 나오지 않는다. 또 전화를 하면 보일러를 틀었다고 또 거짓말을 한다. 호텔에서 나가겠다고 호텔비를 돌려달라고 하면 괴상하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결국 호텔비는 돌려주지 않는다. 버스나 기차 안에서 돈을 훔치거나 휴대폰을 훔치는 것은 기본이다. 정해진 가이드를 따라 여행사의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여행에서는 좀 낫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정해진 바가지는 써야 한다. 선교사들이 인도하는 선교 여행은 조금 다르다. 그렇지 않은 여행은 다 비슷하다. 특히 우리처럼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그 현장에서 진로를 변경해야 하는 여행은 어쩔 수 없다. 또 선교비를 아끼려고 비싼 호텔에 묵을 수 없다면 더 하다. 인신매매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내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아내에게 사과를 하면서 말했다.


"미안해. 그런데 선교지가 다 이래. 그렇다고 안 올 수는 없잖아."


그리고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다음 날 오전 늦게 일어난 아내는 사과를 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데 놀랐어. 당신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웃고 있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는데 갚을 길도 없어. 이렇게라도 순종할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 어디 가서 죽으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해. 그냥 순종하고 가서 죽어야지. 그런데 이건 죽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미리 여행 코스를 정하고 여행사에 예약을 하고 좋은 호텔에 묵으며 다니고 싶지만 성령님이 이렇게 이끄시니 어떻게 해. 또 선교지에 와서 한국 호텔 정도 비용을 주고 잠을 잘 수는 없잖아. 방법이 없어. 순종할 수밖에. 또 선교지에 왔는데 사단의 방해가 없다면 이상하지."


다행히 호텔 아침 조식과 점심은 아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호텔 주변의 강과 갈대숲, 이국적인 꽃들과 나무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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