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사람의 아들 서문
저자는 믿음으로 태풍의 경로가 바뀌고 태풍이 소멸하는 것을 경험했다. 기도를 통해 열방의 역사가 움직이는 것도 보았다. 중국이 일대일로 아시안하이웨이를 건설하기 전에도 믿음으로 열방에 나가 중보하고 선포했다. 이것 외에도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이루신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고 동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한 선교단체를 통해 아시안하이웨이 인도차이나 창 현장중보에 참여했다. 인도차이나 창은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를 포함하는 반도다. 지정학적으로 인도의 동쪽, 중국 대륙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역사적으로 양쪽 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그래서 그 이름이 인도차이나다. 그리고 태국을 제외한 인도차이나반도 지역 대부분의 나라들은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지였다가 1948년에서 1954년 사이에 독립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면적은 230만 2,000 제곱킬로미터다. 우리는 인도차이나반도 중에서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육로로 횡단을 했다.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는 아시아 32개국을 횡단하는 도로다. 일본에서 출발해서 한국을 지나 여러 경로를 통해 유럽의 입구까지 가는 도로망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간선도로다. 간선도로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포함하는 동맥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로를 말한다. 아시안 하이웨이는 간선도로 건설 및 연결을 통해 아시아 전체 지역의 모세혈관 같은 도로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혈류망적 도로 시스템이다. 고속도로가 동맥이고 국도가 모세혈관까지 뻗어나가는 전체 도로 시스템이다. 전체 길이 14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유럽 도로들의 형태와 기능을 아시아에도 적용하고자 만든 도로다. 유럽의 고속도로망은 국가를 넘어 유럽 자체가 하나의 고속도로망으로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다. 동맥과 정맥 그 주변의 모세혈관이 몸의 모든 곳을 순환하듯 도로는 연결된다. 동맥과 정맥이 고속도로에 해당한다. 유럽은 국가 단위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하나의 도로망으로 연결해 거대한 하나의 통일된 제국으로 통일되게 되었다. 이것이 경제와 정치 문화의 활발한 교류를 가져왔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하나의 공동체가 되게 했다. EU가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EU의 탄생은 유럽의 도로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유럽의 도로망에 영감을 얻어서 아시아도 하나로 연결하자는 것이 아시안하이웨이다.
여기서 아시아란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보다 넓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구대륙의 모든 지역이다. 러시아도 중동도 아시아에 포함되는 유럽적 개념의 광의적 아시아다. 유럽인들이 터키를 소아시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의 동쪽은 모두 아시아로 보는 유럽적 지리개념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시안하이웨이 프로젝트는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ESCAP)에서 담당해 왔다. 1992년 ESCAP에서 승인한 아시아 육상 교통기반 개발(Asian Land Transport Infrastructure Development, ALTID)의 세 축 중 하나로, 주로 기존의 도로망을 활용해 현대의 실크로드를 목표로 계획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을 중국이 건설했다. 아시안 하이웨이는 AH1~ AH9까지 9개의 도로망이 있다.
그중 AH1(아시안하이웨이 1번 도로)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도쿄 - 후쿠오카 - ferry - 부산 - 경주 - 대구 - 대전 - 서울 - 파주 - 개성 - 평양 - 신의주 - 단둥 - 선양 - 베이징 - 스자좡 - 정저우 - 신양 - 우한 - 창사 - 샹탄 - 광저우 (- 선전) - 난닝 - 우의관(友誼關) - 동당 - 하노이 - 빈 - 동하 - 후에 - 다낭 - 호이안 - 냐짱 - 비엔호아 (- 붕따우) - 호찌민 - 목바이 - 바베트 - 프놈펜 - 포이페트 - 아란야프라쎄트 - 카빈 부리 - 힌 콩 - 뱅파인 (- 방콕) - 낙혼 - 사완 - 탁 - 매소트 - 미아와디 - 파야기이 (- 양곤) - 메익틸라 - 만달레이 - 타무 - 모레 - 임팔 - 코히마 - 디마푸르 - 나가옹 - 조라바트 (- 구와하티) - 실롱 - 다우키 - 타마빌 - 실헤트 - 카치푸르 - 다카 - 제소레 - 베나폴 - 봉가온 - 콜카타 - 바리 - 칸푸르 - 아그라 - 뉴델리 - 아타리 - 와가흐 - 라호레 - 라왈핀디 (- 이슬라마바드) - 하싸나브달 - 페샤와르 - 토르캄 - 카불 - 칸다하르 - 딜라람 - 헤라트 - 이슬람 콸라 - 도그하룬 - 매쉬하드 - 샤브째바르 - 딤한 - 셈난 - 테헤란 - 콰즈빈 - 타브리쯔 - 에이보글리 - 바짜르간 - 구르불락 - 도구바야찌트 - 아스칼레 - 레파히예 - 시바스 - 앙카라 - 게레데 - 이스탄불 - 카피쿨레 - 불가리아 국경
현재 중국이 만들고 있는 일대일로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 중국은 아시안하이웨이 건설을 통해 아시아 지역을 자신들의 제국으로 만들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중국 판 팍스 로마나의 영광을 꿈꾸며 로마 식 도로망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로마의 도로망을 통해 유럽 전체에 전해졌다. 현대에는 이 아시안 하이웨이를 통해 마지막 미전도 종족들의 땅인 10/40 창에 복음이 전해진다. 모든 종족언어그룹에 복음이 전파되면 마지막 대추수가 있고 그 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부흥이 오고 모든 곳에 그 부흥의 불길이 번지려고 하면 모든 언어 종족에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사회 전체에 그 부흥이 스며들려면 3%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필요하다. 부흥의 불길을 전달할 인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전 세계 사람들이 부흥을 통해 전해지는 순수 복음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것 중 하나가 아시안하이웨이다. 아시안하이웨이가 지나는 길은 10/40 창과 일치한다. 이곳은 미전도 종족이 집중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전 세계의 하나님의 군대들은 지금 이곳에 집중하고 있다. IHOP의 설립목적은 미전도 종족 선교를 위해 24시간 중보하는 것이다. 영국의 24/7/365기도운동도 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24시간 365일의 연쇄기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순회선교단도 이곳 10/40 창에 집중하고 있다. 인터콥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집중해 왔다. 중국의 백투예루살렘도 마찬가지다. 랄프 윈터(Ralph D. Winter) 박사를 선두로 해서 세계선교협의회들은 전 세계 교회의 선교 역량을 이곳 10/40창에 집중한다. 미전도 종족 복음화 시계를 만들어 이미 1900년대 후반부터 10/40 창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죠이선교회는 이를 위해 세계기도정보를 번역해 발간해오고 있다. 위에 언급되지 않은 선교단체들 중 많은 단체들도 이미 10/40 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선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단기선교를 가는 곳도 이곳들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역량을 이곳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의 단체들이 서로 협의해서 계획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각기 통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시각으로 넓게 보면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안 하이웨이의 시작은 대한민국 부산이다. 지도상의 출발은 일본 도쿄이지만 아직 일본과 해저터널이 생기지 않았기에 육로의 출발은 부산이다. 열방을 휩쓸 마지막 대부흥은 이곳 부산에서 시작한다. 그 부흥이 전 세계 열방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중보 하기 위해 출발한 단기선교였다. 그 첫 기착지가 베트남의 하노이였다. 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대기하던 중 한국의 한 도로공사건설사의 CEO와 만나게 되었다. 교회 다니는 집사님이었다.
“여긴 뭐 하러 오셨어요?”
“아시안하이웨이를 따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세계선교를 하시는데 그 일을 위해 중보기도 하러 왔습니다.”
“아시안하이웨이가 뭡니까?”
“아시안하이웨이는 ~~~(나의 긴 설명) “
“그 길은 불가능합니다. 도로공사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갑니다. 라오스 같은 나라가 무슨 돈이 있어서 고속도로를 만들겠습니까? 제가 도로공사만 수십 년입니다. ”
사실 이분의 말이 맞다. 우리나라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고속도로 건설이 소원이어도 그 고속도로를 건설할 돈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들의 현실이 동일하다. 당연히 동남아나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이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맞다. 우리나라도 첫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를 일본의 차관을 통해 건설했다. 그 돈도 빌릴 수 없었을 것인데 일제의 만행에 대한 대가로 일본에게 강탈해서 온 돈이었다. 위안부들과 강제징용 당한 사람들의 보상을 정부가 가로채서 협상을 한 것이다. 개인적인 피해 보상을 받으면 그 액수가 더 천문학적으로 나올 것인데 그것을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친일행각을[1] 가려주는 조건으로 작은 돈으로 대충 협상을 마무리하고 왔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한편으론 위안부 할머니들의 발목을 잡는 법적 근거를 일본에게 마련해 준 것이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투쟁이 저리도 힘들고 길어진 것이었다. 어쨌거나 라오스 같은 나라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것이 불가능이라는 집사님의 말은 타당했다. 사실 아시안 하이웨이 건설이라는 이성적으로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저자가 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마음에 감동이 몰려왔고 그것을 그분 앞에 선포하듯 말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그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셨다. 말이 안 되는 허튼소리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리고 15일 동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순으로 원을 그리며 육로횡단을 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그 지역 국가의 영들과 도시의 영들과 영적 전쟁을 하게 하셨다. 그리고 15일 후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신문의 일면 탑 기사에 내 눈이 집중되었다. 중국이 라오스에 아시안하이웨이 도로건설을 해주겠다는 기사였다. 15일의 기도 후 하나님은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여주셨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면 불가능은 없다. 중보기도 팀의 다른 일행들은 그 기사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그 일을 시작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중국은 아시안하이웨이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 이름도 자신들 식으로 일대일로라고 붙였다.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최 동단을 출발해서 유럽의 관문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도로망 시스템을 중국이 거의 혼자 건설한 것이다. 이 규모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함께 해야 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공사다. 그러고도 자금이 부족해서 실패할 수 있을 정도로 상상초월의 달러가 필요한 공사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인 일을 중국이 해냈다. 만리장성과 중국의 대운하 건설과도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역사다. 중국은 자신들이 직접 건설을 하거나 차관을 주고 건설에 참여하는 식으로 이 일들을 거의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추진해서 성공시켰다. 중국이 아시안하이웨이 건설에 성공한 것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기적이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셨으면 불가능한 기적이 중국의 아시안하이웨이 건설이다. 중국은 이 도로를 건설하면서 세계 최대 달러 보유국이 되었다. 미국과 세계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나라가 되었다. 10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카피제품도 질이 떨어지고 제대로 못 만들던 나라가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장악했다.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일인 아시안하이웨이 사업에 모든 돈을 쏟아부은 중국에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다. 도로건설을 위한 천문학적인 돈을 하나님께서 중국에 주셨다.
중국의 1억 지하교회 성도들이 선교할 수 있는 선교비를 하나님께서 공급하셨다.
2010년도에 아시안하이웨이 인도차이나 창 현장중보 때였다. 하나님은 라오스에 계신 선교사님을 통해서 중국 지하교회 선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하셨다.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의 선교사 파송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은 돈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쳐 희생했다. 지하교회 선교사 수 백 명이 터미널에 모이면 지하교회 지도자가 명령을 한다. 몇 명은 라오스행, 몇 명은 베트남행, 몇 명은 미얀마행 버스를 타시오. 그러면 그 버스를 탄다. 이름도 호명되지 않는다. 거창한 파송식도 없다. 단지 모여서 기도해 주고 이름도 없이 어디로 가라고 하면 간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선교비가 없어서 선교비로 주어지는 것이 한 달에 15일 치 양식이라고 했다. 그럼 나머지 보름은 굶어야 하는 것이다. 식비라는 것은 숙소비도 포함되지 않은 돈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감사하면서 그렇게 사역을 열정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갈 곳도 없는 중국 선교사 두 사람을 그 라오스 선교사님이 숙소 제공을 하고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자꾸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났다. 그 중국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 열정을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났다. 우리라면 그런 선교하라고 하면 시작도 하지 않으리라. 배부른 우리는 집 주고 살 수 있는 모든 기반을 다 주고 사역비도 지원해 주는 데도 힘들다고 안 간다. 그리고 가더라도 열정적인 사역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위험하다고 힘들다고 핑계하면서 요령을 피운다. 그런데 중국 지하교회 선교사들은 위험하고 굶고 노숙을 해도 감사하다고 생명을 바쳐가며 충성을 다한다. 하나님은 그런 중국 지하교회 선교사들에게 선교비를 주셨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가지게 하셨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도 학자들이 분석해 보니 박정희 대통령 때문도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도움도 아니었다고 한다. 정직한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 ‘하나님 우리에게 부흥을 주신다면 우리가 1만 선교사를 파송하겠습니다.’ 우리 선배들은 서원을 했다. 그리고 부흥이 찾아오고 그 부흥 이후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보냈다. 한 손에는 구호물자를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열방을 섬기게 하소서. 기도했던 그 50~60 년대 기도가 기적을 불러온 것이다. 70~80 년대 하나님께 한 서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하나님은 세계선교 하는 민족들에게 세계 최강의 국력을 가지게 하셨다. 영국이 그러했고 미국이 그러했고 한국이 그러하다 아직 한국의 시간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은 중국이 그렇다. 선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이다. 그 순종에 축복해 주시는 것이다.
저자의 건강 상태를 아는 주변의 나이 많은 목사님들은 내가 아시안 하이웨이 길을 가는 것을 만류했다. ‘가지 마라 너는 출발하는 비행기 기내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저자의 혈당 수치는 300~700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면 당뇨성 혼수나 쇼크가 와야 하는 수치다. 보통 이 정도 수치면 걸어 다니기도 힘든 상태다. 폐의 기능은 저하되어 중증 페색성폐질환으로 진단되었다. 일반인들의 정상 폐 기능의 42% 수준으로 기능이 떨어졌다. 폐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보다도 못했다. 심장도 협심증으로 언제 멈출지 몰랐다. 온몸의 뼈의 마디마디가 다 아팠다. 몸의 어떤 부분을 사용하면 마디마디마다 염증 소견이 나왔다.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몸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라 이런 염증이 생긴다고 했다. 젊어서는 달려도 괜찮았는데 늙으면 쇠약해져서 달리면 몸의 여기저기에 염증이 생기고 다치게 되는 원리라고 했다. 어떤 분은 내 신체의 나이가 80이 넘어서 죽기 직전의 상태라고도 하셨다. 요추와 경추는 디스크 소견이 나왔다. 소화기능도 떨어져서 의사가 쌀밥 반공기만 소화시키면 살 텐데 그걸 소화를 못 시키고 설사를 한다고 한탄을 했다. 설사를 8년 넘게 했다.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온몸이 정상인 곳이 없었다. 뇌는 뇌위축이 와서 70~80대 노인의 뇌와 같다고 했다. 그 좋던 머리가 전화번호 하나 외우기도 힘겨운 수준이 되었다. 기운이 너무 떨어질 때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당뇨합병증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라고 감동하시니 출발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해서 일주일을 아파서 앓았다. 그 와중에도 중보기도 가라면 뚝뚝이를 빌려서 타고 앙코르와트나 가라고 감동하시는 곳으로 기도하러 갔다.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독수리와 같은 청춘의 힘을 잠시 허락하셨다. 며칠을 앉아서 버스에서 보내고 기차에서 보내도 거뜬했다. 기적이었다. 4차 선교여행에서는 하나님께서 힘을 부으셔서 한 달을 좀 넘게 5~7개 나라를 다녔다. 그런데 병원에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시안 하이웨이 1번 도로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을 5차례의 선교여행으로 육로와 항공로를 통해 다녀오게 하셨다. 그리고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하셨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세계선교의 역사가 달라졌다. 중국은 아시안 하이웨이를 건설하는 기적을 통해 로마의 도로망과 같은 복음의 통로를 만들었다.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은 그 길을 따라서 아시안하이웨이의 최 서단인 터키 이스탄불까지 진출했다. 미국이 세계패권과 경제패권이라는 욕심으로 방해하려고 시도했지만 중국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인 아시안하이웨이 건설을 성공시켰다. 자신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인 줄 몰랐지만 그들은 로마가 그랬듯 자신들도 모르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길을 닦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1900년대 초반 부흥의 시기부터 중국에 부어졌던 하나님의 비전인 백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도하며 위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을 때 동시에 나의 삶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몸은 아파서 병들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저자를 죽이기 위해 일심 단결하여 괴로움을 더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인 전처도 나를 버렸다. 그리고 대법관이었던 처삼촌의 권력을 이용해 거짓죄명을 씌우며 7년 이상을 법적 소송에 시달리게 했다. 버리고 간 것이 부끄러웠나 보다. 그래서 버리고 간 이유를 가공하여 거짓말을 했고 심지어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는지 소송을 했다. 전처의 행동은 일반적인 사람의 행동이 아니었다. 사탄이 그리고 귀신이 씐 상태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실과 하나님의 뜻보다 거짓을 더 사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대법관과 교수 그리고 독립운동가 집안의 말과 아파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기초생활 수급자의 말 그 둘 중 사람들은 어느 말에 더 신빙성을 둘까? 사람들은 그 거짓에 휘둘려 나의 괴로움을 더했다. 온 세상이 나를 버린 시기였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나의 어머니가 되셨다. 아침에 나갈 때면 ‘오늘은 비가 온다. 우산을 챙겨라’ 또 어떤 날은 하늘이 흐려서 비가 올 것 같은 데도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가방에서 무거운 우산을 꺼내 놓고 가거라’ 때로는 ‘그 길로 가지 말고 이 길로 가서 복음을 전해라.’라고 좌우로 길을 지시하셨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하루나 이틀 안에 누군가를 통해 그 음식을 공급을 하셨다. 대부분 배가 불러서 그 음식이 다시 생각나지 않을 만큼 공급하셨다. 궁핍했지만 필요한 재정은 늘 채워졌다. 그렇게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
가라고 하시면 비행기를 타고 아시안하이웨이의 길들을 다녀왔다. 저자는 아시안하이웨이 길을 아프기 전에 세 번과 아파서 쓰러지고 나서 두 번을 합해 총 다섯 번 나누어서 다녀왔다. 자비량으로 다녀왔다. 내가 아파서 쓰러지고 난 후 2번을 다녀올 때 사람들이 후원한 금액은 100만 원 정도였다. 내가 사용한 금액은 700만 원씩 두 번이었다. 1,400만 원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공급하셨다. 주변의 헌금이나 후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채우셨다. 온 세상이 버리고 병들어서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았던 그 기간에 그 금액이 내 삶 안에 타인의 공급 없이 주어진 것은 기적 자체였다. 그 고난의 기간 동안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가 되셨다.
저자는 기도하면서 태풍이 소멸되는 것도 보았고 그 진로가 변경되는 것도 보았다.
나는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원래 성향이 좀 그렇다. 범죄와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매일 보아야 그 행태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괜히 마음만 힘들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중요한 것만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고 만다.
그런데 이상하게 TV뉴스를 볼 마음이 생겼다. 보던 중 일기예보를 보게 되었다. 태풍이 온다는 것을 들었다. 태풍의 이름을 지금은 잊어버렸다. 그런데 태풍의 경로를 기억하고 있다. 그 시기와 경로를 고려해 기상청에서 태풍자료를 찾았는데 카눈인 것 같다. 카눈의 처음 경로는 북한의 평양을 지나기로 되어있었다. 그 소식을 듣는데 마음에 반공교육의 영향인지 ‘저 원수 놈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이었다. 내가 원래 좀 생각이 많이 모자라다. 그걸 만회하려고 하니 늘 조심하고 생각한 것을 되짚어보고 점검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늘 순간순간 하나님께 물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하셨다. 저 헐벗고 가난한 저 땅에 태풍이 온다면 저 땅은 어떻게 되겠느냐. 나는 양심에 가책이 들었다. 그때 책망으로 인한 명령이 감동으로 왔다. 회개하고 태풍의 경로가 서울을 향하도록 기도하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어쩌지.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청을 했다. 태풍의 경로가 서울을 향하지만 그 태풍이 상륙해서 빨리 소멸되게 해 주세요. 서울을 구해주세요. 간절한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뉴스에서 태풍이 경로를 변경해서 평양으로 가지 않고 서울로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태풍이 상륙하자마자 금방 약화가 되어 저기압 세력으로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서울 옆을 관통해서 동해에서 결국 소멸되었다고 한다. 태풍이 세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서울을 관통했으면 큰 피해가 있었을 것인데 다행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하나님은 바보의 기도를 사용하신다.
그 이후 태풍이 하나 더 올라온다는 뉴스를 봤다. 그 태풍의 경로가 변경되어서 중국으로 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는데 그대로 중국으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내 마음에 “나는 중국 선교사였는데 중국으로 태풍이 향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다니”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참 모자라는 사람이었다. 성경 속 요나의 수준이나 나의 수준이나 참 모자라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후에 교회 기도모임이 끝나고 그 일을 나누게 되었다. 매일 참석하는 기도모임이었다. 9시 기도였는데 2시간을 했다. 그날은 2시간 기도 후에 교회 전체 주간 중보기도 모임이 있었다. 11시 기도였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그 입구에서 온 교인들이 다 듣는데 그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오후에 강한 태풍이 한국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풍 볼라벤이었다. 그때 기도모임을 인도하시던 집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 이번 태풍도 놓고 기도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내 입에서 갑자기 말이 나왔다.
“이번 태풍은 비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볼라벤은 한국을 강타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교회 전면에 1~5층 전 층을 잇는 대형 창이 부서졌다. 유리창들이 부서져서 쏟아졌다. 창틀이 뜯겨 나가는 것을 목사님이 밧줄을 묶어서 밤이 새도록 붙들고 계셨다고 한다. 나도 걱정이 되어 거의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태풍 하나가 더 올라온다는 감동이 있었다. 태풍 덴빈이었다. 덴빈은 그 경로가 기이했다. 이는 내 말이 아니고 뉴스와 매체들의 평가였다.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볼라벤보다 일찍 발생했고 약화와 강화를 반복했다. 그리고 대만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태풍이 이렇게 중국 대륙으로 가다가 돌이켜서 대만으로 왔다 갔다 한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약화되었다가 또 강화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강화되면서 북상해서 한반도에 상륙해 많은 비를 뿌리며 피해를 주었다.
그런데 그 일 이후 사람들은 저자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하나님을 떠났으니 회개하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은 수 차례 저자를 통해 교회에 경고하셨다. 한 번은 담임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모임에서 감동을 나누라고 해서 감동을 나눴다. “광풍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감동을 이렇게 해석하고 적용하셨다. ‘광풍이 와도 뿌리 깊은 나무는 그것을 견디고 그 위용을 자랑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 날 순간적인 회오리가 교회 입구에 세워둔 철제간판을 거꾸로 내동댕이쳐서 찌그러졌다. 남자 네다섯 명이 들어도 들기 힘든 철제 간판을 순간적으로 불어온 바람이 휩쓸고 간 것이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찌그러트릴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꼭대기가 거꾸로 바닥에 박혀서 뭉그러진 것이 그대로 표시가 났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정도 바람이면 주변에도 다른 피해를 입혀야 하는데 다른 곳은 아무 피해가 없었다. 오직 교회 입간판만 부서졌다.
그리고 그 해 한반도에 피해를 준 태풍이 많이 왔다. 광풍이 많이 온 것이다. 저자가 감동을 처음 말할 때만 해도 나도 어떤 결과가 올지 세세하게는 몰랐다. 단지 믿음에 의한 확신과 그 감동을 전해야 교회가 다가올 징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때 기도하면서 주어지는 감동을 따라 교회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듣지 않았다. 무슨 말이든 정상적으로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일이든 곡해해서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신들은 자신들이 그런 상태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사실 교회 전면의 전 층 연결창도 약해서 파손의 우려가 있다고 태풍 이전에 말을 했었다. 나는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이 보여서 걱정이 되어서 말을 했는데 듣지 않았다. 싫어했다. 그 전면 전 층 연결 창이 태풍에 부서졌다.
그리고 그 창에 연결되었던 방송실의 창문도 다 부서졌다. 나는 당시 교회 직원으로 있는 사역자가 아니었다. 사역을 하지 않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했다. 학원 강사들은 늦게 까지 일하고 밤늦게나 새벽에 들어오기 때문에 오전에 자야 한다. 그런데 그 잠을 포기하고 매일 7시에 일어나서 9시면 교회에 기도하러 갔다. 그런데 그 오전 기도하는 시간이면 기도하지 못하도록 불러서 교회 허드렛일을 시키는 전도사님이 계셨다. 소위 질서라는 명목 하에 복종하라고 명령하셨다. 한 번은 방송실 창문에 아크릴을 덧대어 붙이는 일을 시켰는데 내가 출근해야 하는 시간까지 공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공 방법이 정상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어려운 시절에 실리콘 시공하는 것(코킹)을 2년 정도 직업으로 삼은 적이 있는 전문가였다.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일을 시켰다. 그래서 반복해서 참다가 감동이 있어서 “이것은 질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방식의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출근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 강행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질서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성도도 나를 질서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책망을 했다. 정상적인 일들이 아니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창문이 태풍에 박살이 났다.
그분이 일을 시키면 항상 그런 자신의 고집으로 일을 시키셨다. 목사님 집안 장판 테두리에 실리콘 작업을 하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장판을 본드로 붙이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실리콘을 작업을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데 그래도 무조건 하라고 하셨다. 고정되지 않은 곳에 실리콘 작업을 하면 실리콘이 떠버리고 울어버려서 그 모양이 참 보기 좋지 않다. 장판을 고정하는 기본적인 기능도 없어서 오히려 모양이 추해진다. 그런데 그렇게 작업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질서라는 것이다. 교회 성도는 전도사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질서라고 했다. 교회 직원도 아닌 사람을 강제로 일을 시키고 그 방식도 일이 될 수 없는 방식으로 시켰다. 그리고 그 모든 명령의 구실은 소위 질서였다. 교회 안에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반강제 노역을 말 없이했다. 보수를 못 받는 일인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죄인을 구원하신 은혜에 봉사는 감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도하러 가서 기도도 할 수가 없었다. 잠도 포기하고 기도하러 갔는데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학원 강사들은 저녁 늦게 10시나 12시까지 일해야 해서 오전까지 잠을 자야 한다. 그것을 포기하고 아침 9시면 교회에 기도하기 위해 갔다. 그런데 시키는 허드렛일을 하다가 학원 출근 시간에 쫓겨서 점심 먹을 시간도 부족했다. 급하게 먹다가 체하는 일들이 늘 반복되었다. 내가 기도하려면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았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려고 하는데 교회 전체가 계속해서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심지어 전처까지도 방해를 했다. 기도하러 갈 시간이 되면 이상하게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기도시간 전에 부탁하면 될 일도 기도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부탁했다. 꼭 기도시간에 늦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해주고 기도하러 나섰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방해를 했다. 이성적인 말이나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이 없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너무 많이 보았다. 교회가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소경 되고 귀머거리가 되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대적하는지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그리고 거짓에 선동이 되어 어떻게 대적하는지 보았다. 눈이 멀고 귀가 먹은 교인들은 사실보다 거짓을 더 잘 믿었다.
심지어 판사들과 검사들 경찰들도 그랬다. 처삼촌이었던 대법관의 권력 앞에서 거짓도 사실로 만들었다. 모두 그 일에 시중을 들었다. 모두 권력이 시키면 무엇이든 하는 하이에나 같았다. 거짓의 아비의 종노릇을 하는 시종들이었다. 나도 정확하게 어떻게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대법관의 권력의 힘이겠지’하고 짐작했다. 단지 내 앞에 권력의 힘이 압력을 가하면 그것을 당할 뿐이었다. 그렇게 7년을 넘게 짓지도 않은 죄목으로 소송당하는 세월을 보냈다. 몸은 병들고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은 시기였다.
다시 태풍이 휩쓸고 간 교회이야기로 돌아가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창틀은 부실시공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들었다면 그런 피해는 없었을 것인데, 건축비를 아끼려고 교회가 설계도면대로 시공하려는 건설회사에 저렴한 창틀로 시공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작은 돈을 아끼려다 정상적인 시공비의 배 이상이 들어가게 생겼다. 건설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교회 스스로 도면대로 원칙대로 시공하려는 건설사에 부실시동을 부탁했다. 그러니 건설사 책임도 아닌 것이었다. 그런데도 건설사가 수리비용의 절반을 부담해 준다고 했다. 건설사 사장님이 어느 교회 장로님이라고 했다. 참 감사한 분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교회가 또 그 부실한 창으로 공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부교역자들에게 말해도 듣지를 않았다. 그래서 담임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성질을 내면서 소리를 지르셨다. ‘우리가 알아서 하니 상관하지 마시오.’ 그리고 그 이후에 또 일들이 일어났다. 새로 돈을 들여 수리를 한 교회 유리창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부실시공의 결과들이었다. 그것을 처음 발견한 것도 이상하게 저자였다. 심지어 교회 북카페 쇼파에서 쉬고 있는데 저자가 보는 눈앞에서 유리창에 금이 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는데 멀쩡해 보이던 유리가 쩍 하고 금이 갔다. 그런데 그 일들로 인해 사람들은 저자를 더욱 미워했다. 누명을 씌우고 거짓 죄명을 붙여서 비방을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버리신 것처럼 병으로 눕게 하셨다. 그 상태에서 온 세상의 공격을 혼자 받아야 했다. 온 세상이 버린 것 같았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벽에 붉은색으로 쓴 글, 찬송가의 한 구절이 마음을 울렸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님 날 안 버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 중 하나는
“비방받는 표적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고난에서 죽음 그리고 부활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보시고 그 결과를 아시기에 도와주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안타까운 마음도 모르고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심지어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그런 태풍이 휩쓸고 갔어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신앙의 본질에 서 있다고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다. 이미 하나님을 천리나 만리나 떠났는데 소경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서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 말을 토시도 틀리지 않고 설교하는 분들도 자신들이 자신들이 설교하는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감동이 있어서 말을 했다. 감동을 말하는 저자를 미워했다. 저자를 너무 미워해서 감동을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교회 북카페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 중에 간접적으로 교회 사람들이 들으라고 크게 말했다. "십자가의 복음이 자기들의 전유물인 줄 착각하고 있다. 역사 속 도도한 물결로 흘러내려오고 있는 십자가의 복음을 자신들만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자기 의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다. 교회가 자기 의에 빠지면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자기 의는 교만이다. 교만해지면 쉽게 자신의 상태를 인정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임재가 걷히고 교회가 생명을 잃어가도 눈치채지 못한다. 심지어 다른 영들이 그곳을 차지해도 하나님의 임재인 줄 착각할 때가 많다. 교만해져서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도 하나님은 교회를, 성도들을, 영혼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말씀하신다.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 우리가 죄성을 가진 뿌리까지 죄에 저려진 죄의 장아찌라는 것을 아시는 것이다. 그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셔서 끝까지 오래 참으시고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우리 자신에게도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을 것이다. 교회가 교단이 국가가 개인이 들어야 할 감동이 있다. 돌이켜 회개하라고 하시는 감동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그리고 역사를 움직이고 계신다. 그리고 그 역사를 움직이는 일을 사람을 통해 하신다. 사람의 믿음을 통해 그리고 사람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사람에게 피조물의 통치를 맡기셨다.
사람의 기도와 선포를 통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책은 그 감추어졌던 비밀을 밝히 드러내고자 쓴 것이다. 누군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는 아담의 권세가 있다.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 권세는 회복되고 더 확장되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그 권세를 깨달아 알고 그 권세를 사용해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서 수종 들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발적 노예가 되어 일할 준비가 되었는가? 금생의 핍박과 함께 금생과 내생에 하늘의 상급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과의 말로 다할 수 없는 비밀한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경을 통해 아담의 후손 즉 인자인 우리 자신의 권세에 대해 함께 알아보기로 하자.
[1] 이 내용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이다. 이름만 거론하면 알 수 있는 아주 거물급 인사다. 버마 아웅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목숨을 구한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전 전 대통령이 15분 늦게 도착한 것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전 전 대통령과 군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였던 자신의 바지가 터져서 수선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도 이 분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15분이 전 전 대통령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 외에도 이분의 이력이 화려해서 지나간 한국 현대사에 대해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일본 천황궁을 방문했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 몇 시간 후에 들어가 보니 벽들이 모두 삼베로 된 천으로 가려져있었다고 했다. 그 벽들을 가리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게 한 것 같았다고 했다. 천황을 보기 전 대기실에서 상당시간을 기다렸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몰래 벽을 엿보았다고 했다. 그곳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각이 기록된 문서가 있었다고 한다. 관동군 소위로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졌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인체 실험을 했던 731부대에 조선인들을 수백 명을 잡아다가 바친 기록이 문서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해방된 조국을 다스렸던 세력들이 왜 일본과의 외교에서는 계속 참고 불평등과 무시를 참아왔는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약점을 일본이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협박을 당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의 자손들도 여전히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현재 사회의 기득권층들도 그 협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