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내가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조연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이 한편의 연극이라면 극이 재미있던 지루하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여야만 하는데, 다른 주인공들이 드라마를 만드는 동안 이야기가 잘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조연, 그것이 나인것만 같다.
내가 속해져 있는 드라마는 총 3편인데, 그중에 첫번째는 직장에서 고군분투 하는 가장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거기서 나는 아내의 역할이다. 주인공인 남자의 스케줄에 따라 수시로 스케줄을 변경해야 하며 회사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정된 살림을 하고 두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볼 책임이 있다. 아내라는 역할은 조연이기 때문에 그녀의 중요한 일정이나 심경의 변화는 곧 주인공의 역경을 뜻한다. 곧 갈등의 요소일 뿐이다.
두번째 드라마는 8살 남자아이의 성장 드라마. 예민한 성정의 한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을 하면서 겪는 갖가지 우여곡절과 사건들이 중심이다. 여기에서 나는 엄마의 역할이다. 아이의 성장을 돕고 있다. 중요도는 상당하나 역시 조연답게 엄마의 우울이나 욕망은 아이의 성장에 방해요소가 된다.
세번째 드라마 또한 한 아이의 성장극인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6살 여자아이다. 사랑스럽고 밝은 한 아이의 성장 드라마는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앞으로 흥미진진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여기서 나는 역시 엄마의 역할인데 중요하지만 나의 이야기가 개입되는 순간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조연은 조연답게, 개인의 서사를 펼쳐서 주인공들이 드라마를 만들어 나가는데 방해가 되서는 안된다.
방해를 하는 순간 빌런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엄마란 중요한 거라고. 아이들은 엄마의 양육태도나 성정에 따라 가치관이 바뀌고 성격이 달라진다고. 집안 관리를 잘해야 남자들이 신경 안쓰고 회사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 그것또한 가정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큰 역할이라고.
참 이상하다.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왜 내가 중심인 서사는 없을까. 생기는 순간, 갈등의 요소가 될까.
주인공들이 고군분투하여 제각기 나름대로의 성장을 이루며 합쳐서는 한 가정의 행복이라는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달성하는 동안 나는 각 드라마의 충실한 조연 역할을 하면서 나를 지우고 누군가의 조력자로 그렇게 8년을 살았다.
그런데 가끔은, 아무일도 없는 일상속에서 통곡이 터진다. 지독히 외롭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소스라치는 불안을 느끼며 선잠에서 깨기도 한다.
나의 편안한 컨디션은 주인공들의 서사에 꼭 필요한 요소인데 내가 내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해 주인공들이 겪지 않아도 될 슬픔이나 불편을 겪는다.
그 이유를 나는 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주인공이였던 찬란한 시절을 여전히 내가 기억하기 때문에.
20대 때의 나는 정신없이 바쁜 사람이었다.
낮에는 신문사 기자가 되어 경찰서, 시청, 사건 현장들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했고 밤에는 오디오북 작가가 되어 드라마 대본을 썼다. 중간중간 의뢰받은 방송 대본들도 썼으며 사람도 만나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여행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온갖 곳을 다니며 경험했던 수많은 감정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었다. 그렇게 나는 살아있다는 걸 느끼며 에너지 가득한 20대를 살았다.
엄마가 된 후, 나는 이것들을 다 잊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거라고. 가정주부가 되어 두 아이를 잘 키우는데 열정을 쏟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이것또한 나의 최선이 될 수 있고 나를 벅차오르게 할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그랬기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힘든일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말로 표현못할 기쁨과 환희를 느끼기도 했기에.
기꺼이 조력자의 삶을 살아가야지.
주인공인 내 아이들과 남편의 성장 드라마를 도와주고 응원해야지.
하지만 이것이 정말, 나를 이루는 전부일 수 있을까. 드라마의 엔딩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가슴속에 해갈되지 않는 울음 하나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조력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봐. 그건 충분히 가치있고 멋진 일이지. 하지만 생각해봐. 내가 주인공인 서사가,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