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ma hong Apr 20. 2020

두 번째- 국제연애는 뭐가 다를까, 지영편

언어가 안 통해도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우연히 본 유튜브나 영화에 나온 잘생긴 외국인을 보며 우리는 상상한다.

'아, 나도 해외 가면 저렇게 멋진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겠지?'

해외여행을 가서는 더 간절히 생각한다.

'드디어 이 몸이 이탈리아에 당도했느니라. (내가 상상하는 멋진) 외국인들아 나에게 다가와줘'


 하지만 옛말에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고 하던가.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이목구비가 주는 기쁨도 잠시,

 "응? 뭐라고? 날 사랑하는데 지금 사귀지는 않을 거라고? 섹스 먼저 해봐야 안다고?"

 "응? 뭐라고? 내가 네 영어를 잘 못 알아 들어서 답답하다고? 더 이상 대화가 힘들 것 같다고?"

 "응? 뭐라고? 한식은 나 혼자 있을 때 먹으라고? 우리 둘이 데이트할 때는 둘 다! 좋아하는 것만 해야 한다고?"

나와 그의 외모가 다른 만큼 그가 자라온 문화도, 그가 생각하는 연인관계의 모습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상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왜 진작에 고려하지 못했을까.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자란 나와 그의 간극은 대화를 나눌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생각한 연애는 이런 게 아니라며 우르르 무너지고야 만다. 국제연애는 그저 외모만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닌, 외모만큼 성격도 다른 인물들이 서로가 고수해오던 언어와 상식, 문화, 관습을 뒤집고 맞춰나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랑과 인내, 양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관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걸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던 국제연애 1년 차 커플 지영과 다니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이 인터뷰는 지영편, 다니엘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아일랜드는 Covid-19로 인해 전국에 락다운이 시행되어, 둘은 한 달째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영이의 시선

-

지영/ 27살, 한국인, 아일랜드에서 1년째 생활중 & 다니엘/ 21살, 아이리쉬, 아일랜드에서 21년째 생활중


Q: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

지영: 틴더로 만났어! 내가 아일랜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딱히 할 것도 없고 심심해서 틴더를 했었거든. 사실 다니엘만 만났던 건 아니고 영어도 늘릴 겸 다른 사람들도 만났었는데 그중에서 다니엘이 제일 괜찮다고 생각했었지.      


Q: 아, 그럼 첫눈에 뿅 하고 반한 건 아니구나.

지영: 응. 처음엔 그냥 친구로 지내려고 했었어.


Q: 근데 어떻게 하다가 남자로 보이게 됐어?

지영: 서로 뜨문뜨문 연락하다가 중간에 연락이 끊겼었는데, 내가 홈파티를 열었었거든? 그때 다니엘도 초대하려고 오랜만에 왓츠앱을 보냈어. 근데 다니엘은 홈파티 보단 본인한테 관심 있어서 연락했다고 생각한 거 같아. 그 이후로 자주 연락하면서 데이트로 영화를 보러 갔지. 근데 도중에 수줍게 내 손을 잡더라고? 하하. 그때부터 귀엽다고 생각했어.


Q: 한국에서는 틴더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자리 잡혀있기도 하고 사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거 같은데, 아일랜드에서는 어때?

지영: 아이리쉬들은 틴더 많이 해. 근데 비율은 반반인 거 같아. 진짜 가벼운 만남을 위해 하는 사람 반,  다니엘처럼 진솔하게 만나려고 하는 사람 반.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비율이 한국보다는 많은 편이라고 생각해.   

  

Q: 정확히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한 거야? 사귀자는 말은 누가 했을까.

지영: 음, 글쎄. 아이리쉬들은 사귀자는 말은 잘 안 하는 거 같아.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데 왜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하냐는 분위기랄까?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연인이 됐다는 걸 암묵적으로 느낀 거 같아. 그리고 사귄다고 체크한 기준은 처음 만난 날로 잡은 거고! 아, 오늘로써 338일 째네!

사귄 날짜를 체크해 놓은 지영이의 카톡 프로필


Q: 방금 카톡 프로필 배경 보고 얘기한 거야? 하하. 벌써 일 년이 거의 다 됐으니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다니엘이랑 사귀다 보니까 한국 남자와 아일랜드 남자의 차이점을 느낀 적 있어?

지영: 음, 성격적인 부분을 얘기하자면, 다니엘은 내 사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관대하다는 점? 남자 친구라고 해서 여자 친구의 일상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강요한다거나, 간섭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내가 저번에 게이 친구네 집에서 잔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게 오케이 하더라고. 이곳에서는 연인 관계이기 전에 상대방의 선택과 주체성을 먼저 존중해주는 거 같아. 물론 한국 남자가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야.


Q: 좋은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론 한국 정서랑 상반돼서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땠어?

지영: 초반에 그래서 싸운 것 같기도 해. 다니엘은 내가 뭘 하든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로 본인도 어디를 가든 얘기를 잘 안 해주더라고. 기본적으로 얘기해야 하는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몇 번 이야기를 했지. 나는 연인관계에서 남자 친구가 어디를 가고 뭐 하는지 궁금한 스타일이니까 혹시 앞으로 먼저 이야기해 줄 수 있냐고. 이런 식으로 계속 대화로 풀어나갔던 것 같아.     


Q: 각자가 자라온 문화가 다르니까 이해심이 많이 필요하겠다. 그동안 네가 느낀 국제연애의 장점이나 단점은 뭐라고 생각해?

지영: 장점은 영어를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배울 수 있다는 것과 앞으로 결혼하면 아일랜드에서 살지, 한국에서 살지 정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단점은 아일랜드에 있으면 내 비자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 가졌던 직업을 계속하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장거리 연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인 거 같아.     


Q: 조금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서 둘이 싸울 때는 어떻게 풀어? 비슷하려나.

지영: 나는 싸울 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야. 내 감정의 보따리를 다 펼쳐놓고 솔직하게 표현했는데도 상대가 수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지만, 우선은 다 얘기해. 사실 터놓고 이야기하기 전에도 상대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마음먹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 근데 감사하게도 다니엘이 워낙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라 웬만한 건 다 수용해 주는 거 같아.


Q:그럼 국제 연애하면서 언어 때문에 힘든 적 있었어?

지영: 다니엘이랑은 영어로 대화할 때 딱히 힘들진 않아. 원래 익숙한 사람의 악센트는 잘 들리잖아. 근데 다니엘 주변 사람들은 몇 번 못 봤으니까 특히 다니엘 부모님이나 친구들 악센트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 근데 오히려 내가 원어민이 아니니까 장점 아닌 장점도 있는 거 같아. 내가 다니엘이랑 싸울 때 할 수 있는 욕이 ‘Fucking’밖에 없거든? 하하. 그럴 때는 내가 영어 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감정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한테 충동적으로 상처 줄 일이 없으니까.


Q: 하하.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뭔가 웃기다. 아주 어렸을 때로 돌아간 거 같네. 산뜻한 질문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했던 데이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데이트 있어?

지영: 호스 갔을 때, 그때 다니엘이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 호스는 바다가 있는 근교인데 거기 풍경이 엄청 아름답단 말이야. 그런 곳에서 수줍게 말하는 다니엘의 '아이 러브 유' 때문에 심장이 터질뻔했었어.     

더블린 근교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 Howth


Q: 지금은 밖에서 데이트를 못하니까 답답하겠다. 코로나가 끝나면 둘이 가장 하고 싶은 건 뭐야?

지영: 같이 한국 가는 거! 사실 작년 여름에도 같이 한국 한번 가고 싶었는데. 사정상 그러지를 못해서 이번에 코로나 끝나면 서울, 부산, 제주도 여행을 갈 예정이야.     


Q: 그럼 한국 여행 계획 짜고 있는 거야? 앞으로 둘의 미래 계획은 어떻게 돼?

지영: 일단 코로나 끝나면 같이 한국 가서 여행하고 그 이후에 다니엘은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가고 나는 한국에 남아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준비하기로 했어. 워홀 비자로 아일랜드 가면 1년 정도 다니엘네 집에서 같이 살면서 일하고 돈 모아서, 2022년에 결혼할 거야.

2019년 10월, 더블린의 한 펍에서


Q: 그럼 곧 장거리 연애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네.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다면 가장 걱정되거나 신경 쓰고 싶은 점 있어?

지영: 음, 사실 같이 살아보니까 장거리 연애해도 괜찮을 거 같은 생각이 들어. 24시간 서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파악되니까 크게 걱정되거나 신경 쓰이는 점은 없을 거 같은데, 둘 다 전화하는 걸 싫어해서 전화를 많이 안 하게 되면 예전보다 멀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까 싶네. 근데 아직 먼 이야기라서 실감은 안나.


Q: 그럼 여태까지 했던 연애들과 비교했을 때 국제연애의 난이도는 10점 만점에 몇 점일까.

지영: 영어를 잘하면 1, 영어를 잘 못하면 10. 이건 만나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른 것도 있는 거 같은데, 상대방이 내가 영어를 못해도 잘 이해해주고 설명해주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면 상대적으로 덜 힘들 거 같아. 그러니까 '언어가 안 통해도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관계를 지속하는 데 있어서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          


Q: 마지막으로 국제연애를 막 시작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혹은 이 여정을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영: 그냥 빨리 결혼을 하는 게 하하. 사실 결혼까지 가는 게 너무 힘든 거 같아. 빨리 결혼할 거 아니면 헤어지세요? 아니, 다들 빨리 결혼을 하세요!   


Q: 정말 마지막으로, 다니엘의 기분을 풀어줄 시간이 딱 5분만 남아 있다면 넌 뭘 할 거야?

지영: 비건 아이스크림, 비건 바닐라 글레이즈드 도넛 6개, 비건 컬렉션을 선물해 줄래. 하하. 그럼 분명 러블리 러블리하면서 풀릴 거야.           

비건인 다니엘, 비건 도넛을 보며 정말 흐뭇해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네 삶의 계획들이 다 틀어져 버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어째 지영과 다니엘 커플은 이 시기를 통해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고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네요. 곧 다니엘편도 이어집니다. 사랑스러운 커플, 지영이와 다니엘의 일상이 궁금하시다면  https://blog.naver.com/jiyeong940 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55개국을 여행한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