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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hong May 04. 2020

네 번째- 아일랜드에서 코로나와 동거하는 법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요.

 지선 언니를 처음 만난 건 더블린의 한 독서모임에서였다. “저는 가끔 감사 노트를 써요. 예전에 수련회 가서 처음 시작했던 건데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내 귀에 나긋나긋하게만 들렸던 언니의 목소리가 힘 있고 단단하게 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한 번은 내가 외롭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한국에 가고 싶다고 그랬더니 그다음 주 모임 때 책 한 권을 건네는 손이 보였다. 승현 씨가 얘기할 때 이 책이 생각났어요. 사실 저번 주에 이야기 들으면서 너무너무 주고 싶었거든요.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선 언니는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더블린을 떠났을 때도, 그리고 한 번의 폭풍이 지나고 난 후인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는 코로나 관련 기사들과 주위의 혼란스러운 소음, 우리를 삼킬듯한 큰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언니는 무엇 때문에 더블린에 남아있을까? 왠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의 생각이라면 무조건 납득이 될 것 같다. 외유내강 더블러너, 코로나와 동거 아닌 동거를 하고 있는 지선 언니의 2020년 ver. 더블린 생활을 들어보자.


지선 언니는 2019년 9월부터 지금까지 아일랜드에서 워홀 생활을 하고 있다.

Q. 언니 잘 지내고 계신가요. 먼저 지금 아일랜드는 코로나로 인해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선: 현재 아일랜드의 코로나 확진자는 2만 명을 넘겼어요.(2020년 4월 29일 기준)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겠지만 아일랜드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네요. 정부에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락다운은 5월 5일까지라고 발표했지만 아무래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는 이 상황에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아일랜드는 유럽 문화 특성상 한 집에 여러 명이 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감염 위험성이 더 큰 것 같고 현재 코로나 검사받는 것 자체도 이틀 정도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안 걸리도록 몸조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전 세계 코로나 감염자 국가 순위 22위에 자리하고 있는 아일랜드. 한국은 35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0년 5월 1일 기준) 출처- Worldometer

Q. 락다운이 끝나도 예전처럼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기로 결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지선: 한 문장으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불안함보단 아쉬움이 컸어요. 여태까지 매일 비 오고 바람 부는 아일랜드에서 지내면서 날씨에 의해 쉽게 기분이 좌지우지당했었는데, 사실 그때는 일단 열심히 일하고 ‘날씨가 좋아지면'이라는 가정하에 다 미뤄둔 거였거든요. 날씨 좋아지면 가자, 날 좋으면 하자! 근데 막상 날씨가 좋아지고 나서 이제 좀 나가보려고 하니까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더블린에 오고 나서 못 해본 게 너무나 많은데.. 심지어 그 유명한 피닉스파크도 아직 못 가봤다면 말 다한 거 아닌가요. 이렇게 가기엔 너무 한이 남을 것 같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버텨보자고 생각했죠. 확실히 코로나 터졌을 때 바로 돌아갔다면 더블린 향수병이 너무 크게 왔을 거예요.      


Q. 저는 코로나 터진 후에 바로 귀국해서 그런지 말씀하신 대로 더블린 향수병에서 헤매고 있어요 하하. 하지만 결정하신 후에도 가족이 없는 곳에서 동양 여성이 혼자 남는 거에 대해 무서움은 없었나요?     

지선: 코로나 때문에 혼자 남는 두려움보다는 건강을 조심하자는 생각이 더 컸어요.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하자고 생각했고요. 일단 다행인 점은 다른 국가에 비해서 아일랜드는 인종차별이 그렇게 많이 심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Q. 그럼 언니는 실제로 인종차별을 당하 신적은 없다는 거죠. 아무래도 바이러스의 근원지가 동양권이니 걱정이 돼서요.  

지선: 저는 코로나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없지만 주변에 당했다는 사례는 들었어요. 제가 지내고 있는 지역(라스 마인)은 비교적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지만 시티에는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사람 앞에서 대놓고 코로나 노래를 부른다던가, 물건을 던지는 등의 식으로 인종차별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시티 갈 때는 일부러 이어폰 끼고 귀 막고 다녔어요. 아! 맞다. 한 번은 마스크를 끼고 버스를 탔는데 1층 맨 앞에 앉은 사람이 제가 지나가니까 쳐다보면서 갑자기 입을 가리고 구시렁대며 2층으로 올라가더라고요. 하 참 그럼 마스크를 끼던가...   


Q.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그런지 아이리쉬들이 마스크를 잘 안 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가요?

지선: 지금은 초기에 비해 많이 착용하고 다니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저 또한 코로나 초기에 시민들이 장갑은 열심히 끼면서 마스크를 안 쓰는 점은 이해가 잘 안 됐어요. 저 같은 경우는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꼭 끼고 나가지만,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은 않고 유독 실내에 들어가는 일이 있을 때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날이 좋아지면서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야외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은 여전히 보기 쉽지 않네요.   

2020년 4월 11일, 생선을 사기 위해 야외에서 줄 서 있는 사람들. 그러나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출처- The Irish times 인스타그램

Q. 마스크가 바이러스 전염을 막는데 효과가 있는데도, 문화 속에 오래도록 심어져 있는 인식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인가 봐요. 아까도 잠깐 코로나 검사를 받는데 이틀 걸린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아일랜드의 의료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선: 지인을 통해서 들은 건데 간호사조차도 아일랜드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을 보이더라고요.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것조차도 GP(한국의 일반 병원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에 연락한 후 자가 격리하면서 며칠은 기다려야 하고 확진 판정이 나서 중증이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경증이면 별다른 조치 없이 집에서 자가 치유하는 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초기엔 대처 정보가 없어서 외국인이 여기서 코로나 걸리면 아파서 죽던지 치료비가 없어서 파산하던지 둘 중 하나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검사부터 치료까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래나 저래나 모든 국가가 코로나로 인해 의료진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하하.  


Q. 그럼 아일랜드 현지 분위기 및 반응은 어떤가요. 락다운 이외에도 집 기준으로 2km 이내만 이동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생활하는데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한편,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최근 날씨가 좋아져서 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지선: 맞아요. 멀리 못 간다는 건 답답하죠. 그렇지만 최근에 제가 좋아하는 동네로 이사 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강가 옆 버드나무길이 있는 동네에 살고 있어서 크게 답답함을 느끼고 있지 않아요! 불편한 건 한국 음식 재료를 사러 갈 때인데, 한인 슈퍼가 시티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2km 밖을 벗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버스 타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경찰이 타서는 대뜸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고 묻더라고요. 본인 집 기준으로 2km를 벗어나면 과태료를 엄청 때린다는 사실에 순간 엄청 겁을 먹었지만 그때 사는 곳을 다르게 말해서 무사히 넘긴 에피소드는 있어요. 그리고 사실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이곳 일상은 매우 평안해요. 코로나 덕분이라면 뒷마당에 피크닉을 한다던지 그런 식으로 다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걸 느끼고요. 또 공원에 사람들이 있어도 서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리 제한 강화로 인해 검문을 하고 있는 아이리쉬 경찰(Garda) 출처- Rtenews 인스타그램

Q. 다행이에요. 버스에서의 에피소드는 듣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네요. 하하. 한국인으로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화두가 되면서 한국의 코로나 대응과 아일랜드의 대응을 비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렇게 직접 경험하고 계시니까요. 언니가 생각하시기에 아일랜드의 코로나 대응 중 한국의 대응과 달랐던 것이 있을까요?  

지선: 코로나가 터지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모든 게 락다운 됐어요. 아직도 충격적인 게 일하다가 갑자기 오늘 저녁 6시부터 다 중단된다는 속보를 듣고 '아니 너무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땐 아일랜드 코로나 확진자가 40명대였고, 사망자도 2명이었거든요. 한국(당시 확진자 8천 명 정도)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숫자여서 더 크게 충격받았던 것 같아요. 경제는 안 좋아졌지만 한국은 그래도 지금도 대부분의 가게들은 영업한다고 들었는데 아일랜드는 락다운이 시행되면서 정말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가 바로 문을 닫았어요. 마트에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고, 밖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죠. 당시에는 극단적인 조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리 예방차원에서 일찍 락 다운한 게 잘한 대처라고 생각이 듭니다. 필수적인 업종(약국, 마트)은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어서 들어갈 수 있는 인원 제한 규율에 따라 줄 서서 기다리며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관광명소로 유명한 템플바 거리. 그러나 락다운으로 한산해진 모습이다.

Q. 저도 그게 신기했어요. 심지어 심한 항의 없이 모두가 정부의 락다운에 수긍하는 분위기라 한국과는 정말 다른 문화구나 싶었거든요. 그럼 외국에 사는 입장에서 한국의 코로나 대응 중에 대단한 점을 느낀 게 있을까요?

지선: 아무래도 빠른 대처 및 탄탄한 의료 체계겠죠? 한국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하면 이동 동선을 공개하고, 방역소독을 바로 실시하는데 여기선 어디서 어떻게 확진자가 나왔는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유럽에서는 개인정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실제 확진자 발생 시, 확진자의 이동 동선을 조사하긴 하지만 공개는 하지 않고 밀접접촉자에 한해서만 개인적으로 통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일랜드 라디오나 기사에서 한국의 코로나 대처법에 대해 여러 번 접했어요. 우리나라의 대처법이 확진자 수치로 직접 증명되고 있는 걸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미국, 유럽과 비교했을 때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Q. 이제 전반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벗어나서 언니에 대한 질문으로 드리고 싶어요. 코로나 사태 전에는 아일랜드에서 무슨 일을 하셨나요?     

지선: 저는 아일랜드 내 한식 스타트업에서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대형슈퍼마켓에 김치도 납품하고 푸드마켓에 나가서 일하는 게 주된 일이었고, 손님들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좋아서 즐겁게 일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다 중단됐어요. 하루 만에 갈 곳이 없어진 거죠. 저뿐만 아니라 주위 대부분의 워홀러들이 일을 못하게 됐어요.   

지선 언니가 일하던 한인 음식점 'Jaru' 출처- 자루 인스타그램

Q. 일을 그만두게 되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계를 이어 나가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선: 다행히도 아일랜드 정부에서 실직한 사람들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 학생 상관없이 3개월(12주) 간 실업수당을 주고 있어요. 사실 여기 있겠다고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정부에서 일정 생활비를 보조해주기 때문이었죠. 아마 돈을 받지 못했더라면,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갔을 거예요.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5월부터 다시 일을 나가게 됐어요! 정부에서 주는 급여는 못 받게 됐지만,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감사해야겠죠!


Q. 와, 언니 너무 축하드려요! 이런 힘든 상황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너무 기쁜 소식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같이 일하고 있던 동료들 혹은 주변에 한국 친구들이 많이 떠났을 텐데, 외롭지는 않으세요?

지선: 초기엔 주변 사람들이 순식간에 떠나가는 마법?을 경험하고 나서 마음이 많이 심란하고 착잡했어요. 나도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긴 했는데, 언젠가 코로나는 종식되겠지라는 단순한 생각과 가게 사장님이 믿음을 주셔서 안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다들 떠나가는 상황에서 아일랜드로 돌아왔던 믿을 수 없는 동료 2명이 저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두 명 다 워홀 비자가 만료되고 2월-3월간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가 코로나 심각해졌을 때 학생비자 연장을 위해 돌아온 동료들.... 어메이징) 여기서 잘 남아 생활할 수 있었던 건 사장님과 회사 동료들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Q. 역시 주변 사람들이 중요하네요. 그래도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타국에 있으니까요. 외로움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지선: 그럴 땐 나중엔 분명히 지금 있는 공간과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해요. 지금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시간인지 계속 깨닫고, 읊조리고 기록하고 거기서 힘을 얻습니다. 예전에 했던 경험들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인 줄 모르고 그냥 무심히 흘러 보낸 시간을 무척 후회했었거든요. 지금도 후회하고 있고요. 하하.    


Q. 오, 그래서 이 인터뷰도 기록 겸 추억 겸 신청해주신 건가요? 그렇다면 영광이에요. 늘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지선: 네. 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코로나가 극성으로 시작될 때쯤 트윈룸에서 싱글룸으로 이사를 왔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입에서 단내가 나고 혼잣말이 늘어나더라고요. 이렇게 외로운 상태에서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연락하고 나면 보고 싶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어 져요. 그런데 상황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남자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응, 난 아직 갈 생각이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지경에 올랐습니다. 희망고문은 더 힘든 거예요. (그렇지만 너무 보고 싶어요. 다들!)

         

Q. 하하. 언니 너무 웃겨요. 단호하시네요. 반면에 남기를 잘했다 생각이 들 때는 언제였나요?

지선: 더블린에 봄이 왔을 때요! 제가 작년 9월 말, 더블린에 처음으로 도착한 주부터 날씨가 안 좋아지는 시기였어요. 그러니까 6개월 내내 패딩만 입고 다니다가 지금 두꺼운 외투 없이 햇볕 쐬며 걷는 것만 해도 너무 행복한 거죠. 가끔 나가서 파란 하늘과 구름, 좋아하는 장소, 알록달록한 대문, 온기 있는 햇빛, 연두색 어린잎들, 무성한 잔디와 민들레,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면서 그 속에서 걷고 책 읽는 시간들이 행복해요.

작년 이맘때, 아일랜드의 봄을 즐기러 나와 있는 사람들.

Q. 아, 아일랜드의 자연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 슬프네요. 더블린에서 봄을 만끽해본 사람은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것 같아요. 언제쯤 귀국 예정이세요?

지선: 글쎄요. 이번 코로나를 겪고 나니까 앞날은 정말 예상 못하겠어요. 하하. 원래 예정은 1년(9월)을 다 채우고 가는 거였지만 여기서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돌아가야겠죠. 아마 여름쯤엔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Q. 그럼 평소에는 주로 뭐 하고 지내세요? 데일리 루틴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지선: 최근 책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으면서 아침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얼마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리하고 명상을 하고, 감사한 것이나 오늘의 다짐들이 들어간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 아침밥을 먹고는 뉴스를 읽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나 행동들 경제, 영어공부나 영화보기, 산책하기, 브런치나 책 읽기 등을 해요. 일 못하고 나서는 글쓰기도 매일 쓰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기왕 먹는 김에 건강하고 맛있게 먹자며 저녁엔 요리하고 먹는 시간도 2시간 이상... 하하. 사실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하다가 한 가지를 다 못 끝낸 적이 많아요. 지금 저에게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전부 주어졌지만 그래도 저 많은 것을 하기엔 하루가 참 부족하답니다.

지선 언니의 데일리 루틴 속 기록들.

Q. 그렇다면 저 많은 루틴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지선: 늦잠을 자는 날엔 의지가 떨어져서 그냥 영화 한 편, 핸드폰만 봤는데 하루가 끝나버리더라고요. 하루가 완전히 뭉개진 거죠.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아침시간을 활용해서 하나라도 끝내면 남은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때문에 아침 시간을 잘 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저도 동의해요. 하하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아져서 앞으로의 계획도 짜 놓으셨을 것 같아요.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지선: 첫 번째는 여행, 두 번째는 노래방 가기


Q. 여행하니까 생각나는데 지금 가지는 못 하지만 나중에 아일랜드로 오실 분들을 위해 아일랜드에서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 혹은 자주 가는 곳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선: 하하. 가본 곳이 별로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추천하자면 링 오브 케리, 딩글이요! 링 오브 케리는 제가 갔을 때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도 자연경관이 멋있었고 여름 성수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휴가 올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링 오브 케리 투어는 보통 킬라니나 코크에서 출발하는데 저는 킬라니에서 하루 묵었어요. 킬라니는 엄청 큰 국립공원도 있고, 도시도 아담해서 제 취향이랑 잘 맞아서 기억에 남네요. 무엇보다 더블린에서 킬라니로 가는 기차 안의 설렘이 참 좋았어서 추천합니다!

Q. 오, 링 오브 케리와 딩글 기억할게요! 예전 일상들이 그리운 것처럼 이번 사태를 통해 깨달은 점, 배운 점 혹은 본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지선: 일단 코로나 사태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얻었어요. 한동안 앞으로 여행 못 간다는 사실에 우울하긴 했었지만 저에게 진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고 관점을 바꾸니까 뭐든 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거든요. 그리고 한 번 결정하고 나니 스스로 잘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다들 이번에 한국 못 가면 영영 못 갈 수도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남겠다고 결정해버리니 마음이 편했어요. 그리고 못 가면 하늘 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요! 언젠가는 열릴 테니.


Q. 멋있네요. 그런 중심을 닮고 싶어요. 지금 언니에게 가장 소중한 3가지는 무엇일까요.    

지선:

시간-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살면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이렇게 오래 보낼 수 있을까요?

기록- 나에게 집중한 시간 동안 들었던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기록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왜곡되지 않게 진실하게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꾸며내서 기록하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속을게 분명해요!

건강- 건강하지 않으면 위의 것들이 무슨 소용일까요. 요즘 밖에 나가기가 부담스러워요. 평소 잘하지도 않던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까지 신경 쓰고 있어요. 여기 있는 동안은 아프지 않으려고 매일 4가지의 영양제도 챙겨 먹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2021년, 이맘때쯤을 살아가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부탁드려요.

지선: 후회 없는 더블린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할게. 고마워, 몸도 마음도 건강히 있어줘서! 응원해, 너는 뭐든 해낼 수 있어!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않았으면 해.








 지난 5월 1일 아일랜드 정부는 5월 5일부터 자택으로부터 이동 허용 거리를 기존 2Km에서 5Km로 확대 및 적용할 것이며 기존 락다운 정책 또한 5월 17일까지 유지 후 18일부터 단계적으로 완화 해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들 인터뷰 잘 보셨나요? 전 세계를 삼킨 코로나 속에서도 타국에서 중심을 지키며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찐! 더블러너 지선 언니의 아일랜드 일상을 댓글로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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