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은 죄악이었으며,
결론 없는 대화는 자원 낭비였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성과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둔 채
쉼 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퇴사 후 맞이한 화요일 오후 2시, 아파트 단지 벤치에 앉아 있는 나는 조직의 문법으로 보자면 명백한 '불량품'이다. 생산하는 수치도, 달성해야 할 KPI도 없다. 처음 몇 주간 이 텅 빈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무언가 적지 않으면 손이 떨렸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세상에서 지워진 것 같은 불안에 시멘트 바닥을 서성였다. 유휴 상태의 엔진이 내는 소음은 생각보다 비참하고 시끄러웠다.
그러나 멈춰 서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생산성이란 사실 '타인의 욕망을 대리 배송하는 일'에 불과했다는 것을. 내가 밤을 새워 만든 기획안은 회사의 매출을 높였지만, 내 영혼의 고갈은 막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유휴의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위한 '진짜 생산'을 시작했다.
그것은 엑셀 시트에 담기지 않는 것들—바람의 방향을 읽는 감각, 아이의 웃음소리에 섞인 음절의 변화,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유휴는 정지가 아니라 '심연의 복구'다. 과부하가 걸린 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냉각의 시간. 나는 이제 생산성의 정의를 새로 내리기로 했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숫자를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햇살 아래 앉아 존재의 무게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산적일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은 나태가 아니라,
15년간 타인에게 내어주었던
'시간의 주권'을 되찾아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찌질하게도 나는 한동안 노트북을 켜고 가짜 업무를 만들곤 했다. 무언가 바쁜 척을 해야만 내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수하고 싶었다. 나를 '유효 기간 지난 인력'으로 분류한 세상의 잣대에 대해.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그들에게 내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고, 오롯이 내 것으로 누리는 평온함을 보여주는 것.
오늘 나의 복수는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길가에 핀 잡풀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일에서 완성된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부장'이 아닌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 유휴 인력이라는 딱지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밀도 높은 '자기 대면'이라는 업무를 수행 중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