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1.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각.
112신고가 들어왔다.
녹취를 들어 보니 나이 드신 아주머니 또는 할머니로 추정됐다.
'집에 남자 둘이 있는데... 집에서 안 나가~'
녹취 속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의 말도 들렸다.
'아이! 하지 마, 하지 마!'
대개 이런 신고는 나와 같이 아래의 추정을 하기 마련이다.
남편이 밖에서 친구들과 술 한 자리를 하다가 2차, 3차 이어지다 보니 친구들을 어느새 집 안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대충 술상을 봐주고 분위기 맞춰 주다가 '언제쯤 가나~'하고 있는데, 같이 왔던 남편 친구들이 술에 취해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쯤으로 이해된다.
이런 신고는 난감하다.
법적으로 처벌하기도 애매하고, 신고자 역시도 그런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남자들이 모여서 술을 부어라 마신 상황에서는 경찰의 개입이 더욱 어렵다.
장소 역시 술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이다. 본인들의 홈 그라운드.
아주 경찰에게는 유리한 점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 빨리 도착해서 이야기나 들어보자.
조원과 함께 해당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에도 머리가 아프다.
'아, 술 가득 됐을 텐데 살살 달래야겠다.'
마음속으로 포지션을 정했다.
일단은 어르고 달래보고 귀가조치 시키는 쪽으로.
오래된 복도형 아파트였다.
복도형 아파트는 경찰이 진입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
집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가 난다면 창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음이 복도에서 쩌렁쩌렁 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리를 들어보고 사람은 몇 명인지, 어떤 상황인지 대충 감이 온다.
'어라? 너무 조용한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새 남편의 친구들이 가버린 건지 조용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홀가분하다. 어서 그 집 벨을 눌러보자.
"경찰입니다. 문 좀 열어보세요." 탕! 탕! 문도 괜히 두드려본다.
할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조심히 문을 열어주었다. 표정에서는 근심? 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음... 이러면 안 되는데, 홀가분한 표정이어야 하는데...'
"할머니 신고하셨죠. 무슨 일이세요?"
"아니... 남자 둘이 집에 와서 계속 떠들고 놀고 안 나가는 거야. 그래서 신고했지."
"남자 둘이 어딨 는데요?"
"아이 저기 방에 있잖아 지금"
아... 갑자기 머리가 하얘진다. 단순히 정신이 좀 안 좋으신 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 둘 없는데 지금 어딨 다는 거예요. 집도 너무 조용하잖아요 할머니~"
"아이! 지금 작은 방 쩌그, 쩌그에서 둘이 여기 보면서 시시덕 대고 있잖아."
아... 소름이 쫙 돋는다. 이 할머니 귀신이 들린 걸까. 치매인 걸까.
할머니가 가리킨 쪽을 고개만 빼꼼 내밀어 봤다.
방 1, 거실, 방 2 구조의 집이었는데 방 1에는 행거로 옷만 잔뜩 걸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옷을 걸어놨던 것인지 걸어 놓은 옷 위로 오래된 보자기들을 펴서 또 걸어놓았다.
그 보자기들이 정말로 십 수년은 되어 보였는데 그게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겁은 나지만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할머니, 아무도 없잖아요. 자꾸 그러지 마세요."
"지금도 웃고 있잖아... 가서 봐봐 쫌"
안 되겠다. 경찰이 귀신 따위에게 겁먹을 수 없지. 그래도 할머니에게 물어봐야겠다.
"할머니, 지금 귀신 있다고 신고한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는 갑자기 표정이 무섭게 돌변하며 또 '귀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 공격할 듯이 말했다.
"무슨 귀신!!!! 귀신같은 거 없어!!!!"
그 시간 동안 조원과 나는 현관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이미 몸은 얼어붙어 있었다.
할머니에게 방 1에 남자 두 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려면 직접 방 1에 들어가서 행거를 막 흔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우리가 저 행거 흔들어 볼 테니까 잘 봐요."
"응... 가봐 얼른"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방 1로 가는 그 짧은 2m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났다. 조원은 어딨 는 거야. 한 번 더 살펴보고 같이 들어갔다.
조원과 나는 방 1에 들어가서 우물쭈물 서 있었다. 차마 보자기로 둘러 쌓인 행거를 흔들어 볼 자신이 없었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더욱 오버하며 행거를 흔들었다.
"거기 누구냐!! 나와라!! 아무도... 없네!!! 없어!!! 남자 두 명 없다!!! 할머니 남자 두 명 없다!!"
정말 다행이었다. 쭈그리고 있던 사람도 없고 바닥에는 쌀 포대만 있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 순간.
"아이 총각, 지금 옆으로 옮겼네 바로 옆에서 또 웃고 있잖아 둘이서."
으악!!! 정말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너무 무섭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는 나로서는 하나님이 나의 빽이다. 어서 주기도문을 외워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 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뜸 할머니에게 화를 내고 자리를 피하고 싶다.
"할머니! 이거 거짓신고예요! 남자 두 명 없으니까 우리 그냥 갑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웃고 있다며 현관까지 따라 나와 돌아가지 못하게 실랑이를 벌인다. 그때 방 2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도대체 몇 번째 식은땀과 소름인지 모르겠다. 조원과 나는 바로 경계태세를 갖췄다.
"거 누구요? 아 경찰이오. 아 저 여편네 맛이 갔다니까 그냥 돌아가요 괜찮아 괜찮아."
남편이었다. 우리는 사람의 말투와 눈빛을 보면 대충 감이 온다. 남편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다. 절대 무서워서 그 남편을 믿고 싶은 게 아니다. 정말 남편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다.
"선생님, 혹시 할머니 정신이 좀 안 좋으신가요?"
"응. 그래. 그래. 요새 밤만 되면 저러네"
"그럼 저희 갈게요. 귀신이라도 보셨나 보네요"
"응. 가. 괜찮아. 괜찮아."
조원과 나는 할머니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할머니 저희 갑니다."
"가지마소. 쟤네 좀 데리고 가소."
"할머니, 저거 귀신이야!!! 귀신!!!"
나도 모르게 또 뱉어버렸다. 할머니가 막 물어뜯을 듯이 달려들자, 남편이 제지하였다.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또 나도 모르게 이 말을 뱉어 버렸다.
"예수 보혈!!! 예수 보혈!!! 애비~~ 썩 물러가라!!!"
그러자 할머니는 더욱 흥분하여 달려들자 조원과 나는 문을 얼른 닫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1층으로 내려와 안전이 확보되자 내가 먼저 입을 뗐다.
"김순경... 예수 보혈이라고 하길 잘했지?"
"와 소까니 주임님 앞으로 저도 이런 사건 있으면 예수 보혈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근데 무슨 말인가요?"
"응 있어. 나도 잘 몰라.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
지구대로 복귀하는 동안 그 할머니의 말투, 달려들던 눈빛, 보자기에 둘러싸인 냉기 가득한 방. 모든 게 꿈같이 느껴졌다.
사건이 있은 후로 꽤 지난 시간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겨드랑이 밑으로 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시원한데, 웬 땀이지.'
식은땀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질어질 너무 무섭다.
앞으로도 미스터리 한 사건이 있으면 외쳐야겠다.
"예수 보혈, 예수 보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