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 전지영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
세상을 살다보면 꿈에서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죽었다면 어떨까요? 이런 상황을 부모는 어떻게 이해하고 이겨낼 수 있을까요?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전지영 작)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 은 이처럼 감당하기 힘든 자식의 죽음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스콜성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자식을 잃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의 죽음 이후 부부의 삶은 지옥과 같습니다.
사고 당일 아내는 아들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나간 사실을 몰랐고, 남편은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수없이 전화한 아내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살릴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두고 자책감과 회한이 매순간 밀려들지만 그날에 대해 상대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말은 결국 칼날이 될 것을 서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이런 부부의 긴장된 상황은 아내의 클레이 사격을 통해 잘 묘사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과 잘 맞습니다. 결국 실수로 쏜 아내의 연습용 총에 플라스틱 총알을 맞은 남편은 폭발합니다. 놀란 아내도 주저앉아 꺽꺽 소리내어 웁니다. 그런 아내 옆에서 남편도 웁니다. 아이를 잃고 10여년 동안 말하지는 않았지만 둘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왜 클레이 사격을 취미로 하고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남편은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늦은 저녁에 들어오는 이유를 말입니다. 상대방이 죽도록 밉지만 한편으론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니 서로에게 측은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한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 기원이라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홀로코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소설 제목도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소설 속의 문장을 제목으로 정했는데요. '난간에 부딪친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 둘 중 누구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문장입니다.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책과 자기 기만없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끝도 보이지 않을까요? 불행은 끝을 알 수 없는 막힌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니까요
묵직한 주제를 섬세한 표현과 치밀한 구성으로 쓴 뛰어난 소설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