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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Dec 29. 2023

귀촌일기/ 2주차

기린목욕탕

12월 4일 월요일. 기린목욕탕 

하늘이 엄청 파랗다. 파란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운이 있었다. 오래도록 머물렀다. 전투훈련이 있었나 보다.

오늘은 공중목욕탕에 가기로 한 날이다. 이름도 너무 귀여운 기린목욕탕. 옥상에 태양열보일러가, 주차장에 태양광패널이 보인다. 친환경에너지 사업으로 군에서 지은 공공시설이 목욕탕이라니. 게다가 입장료 3천원은 정말 최고의 복지다. 옥상을 셀프로 수리할 때와 집 리모델링하는 동안 짝꿍은 따끈한 물에 몸을 뉘려고 이곳을 애용했다. 이렇게 좋은데 이용객이 많아야 다섯 명 정도라고. 그렇게 기대하고 갔는데 여탕은 웬 걸. 평균 20명 정도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다들 사우나를 더 좋아하시는 지 사우나와 냉탕만 붐비고 온탕은 한산하다. 탕 안에서 몸을 푸는 할머니들의 여리고 늘어진 살들이 푸딩처럼 흔들린다.

물이 좋은지 피부가 매끈해졌다. 기분이 좋다.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좀 일찍 나왔는지 짝꿍이 눈삽을 사 놓았다. 눈 소식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둔다.


12월 5일 화요일. 쓰줍

집을 공사할 때 바람이 많이 불던 며칠이 있었다. 그때 날아가 계곡 낭떠러지에 매달린 스티로폼과 박스를 수거했다. 짝꿍이 계곡으로 내려가 주웠다. 볼 때마다 아 저거 우리집에서 날아간 건데라며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 아주 깔끔하다. 날이 추우면 쓰레기가 얼어붙어 손 닿은 곳만 부서질 뿐 떼어낼 수가 없다. 요 며칠 날이 따뜻해서 줍기 클리어. 


12월 6일 수요일. 기름 채우기

주유소에 전화해 기름 채운 날. 1톤 트럭만한 작은 기름차가 왔다. 가득 넣으면 넣으면 두 달 정도 쓸 수 있다고. 난방비로 한 달에 30만원은 쓰는 것 같다. 기름보일러로 난방과 온수를, 실내용 기름난로, 컨벤션 히터를 쓰고 있다. 서울에 살 때는 겨울 난방비가 7-8만원선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시골 기름보일러는 비싸다. 올겨울은 이렇게 지내보고 내년 겨울엔 꼭 화목난로를 설치해야겠다. 기름을 다 넣더니, 주유소 기사님이 인제카드로 하면 기름도 할인 받을 수 있다고 팁을 주셨다. 카드기계에서 51만원 영수증을 탁 떼어내고, 차에 타면서 던진 팁이다. 7프로나 할인인데 코베인 느낌. 부들부들…


12월 7일 목요일. 가장 가까운 편의점

과자가 너무 먹고 싶다. 오전 오후 1시간씩 나무꾼으로 살다 보니 운동량이 높은 건지 산소흡수량이 높은건지 아무튼 당이 떨어진다. 게다가 오늘은 목요일, 싱어게인을 보며 맥주와 과자가 간절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가보기로 한다. 1.7km 떨어진 인제스피디움의 콘도에 있는 GS다. 에코를 차에 태우고, 새삼 깜깜한 시골길을 운전했다. 우와, 여긴 다른 곳 같네. 이런 산 속에 4성급 호텔이… 나중에 스피드경주가 있는 날에도 와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경기장이 꽤 웅장한 곳이었네. 숲에서 나무를 정리하고 있으면 멀리서 벌이 나는 듯한 웅웅 소리가 난다. 그러나 경기가 없는 날엔 아주 한산한 듯, 도착한 호텔과 콘도는 우리가 투자자(강원도?)를 걱정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콘도 1층 로비엔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다 괜히 바깥에 있는 내 개에게 시비를 걸었다. 숨막히게 조용한 편의점에선 내 발걸음 소리와 봉지 만지작거리는 소리 뿐이었다. 직원은 몹시 나른하게 바코드를 찍어준다. 이 곳 편의점은 11시면 닫는다. 


12월 8일 금요일. 서울행

서울에 다녀왔다. 아직 업무가 남아있어 금요일엔 출근을 한다. 7시에 일어나 7시 45분 버스를 타기위해 현리터미널로 간다. 앞유리에 낀 서리를 카드로 긁어 내고 차에 탄다. 차가 얼어 있어 시동을 거는데 시간이 걸린다. 아직 차고가 없다. 눈이 많이 오기 전에 차고를 만들면 좋은데… 

현리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는 하루 2 번 직통버스가 있다. 밀리지 않을 땐 1시간 30분이면 동서울에 닿는다. 심지어 우등버스다. 올해 5월에 생겼다고 하니 정말 운이 좋다. 서대문에 살 때보다 잠실사는 엄마집 가는게 더 편해지다니. 버스이용객 30여명중 5-6명을 빼고는 전부 군인이었다. 휴대폰을 보는 그들과 다르게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눈뜨니 강변…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1시간 반만에 서대문에 있는 직장에 도착한다. 지쳤다!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따스한 사람들이 ‘인제 안추워요?’ 라고 물어준다. 


지난주까지 4년 간 살던 곳인데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 이 곳에 집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 

인제 마을 하나를 다 합쳐도 이 한 골목에 사는 사람수보다 적을 것이다. 사람이 참 많은 동네다.


12월 10일 일요일. 달빛

유난히 어두운 밤이다. 그동안은 달빛이 아주 밝아서 에코와 산책할 때 손전등이 필요 없었다. 달빛 아래 산책을 마치고 달이 지고 난 후 다시 나와서 별구경을 하곤 했다. 달모양을 검색해보니 이사 온 날 보름달이었고, 그 이후로 달이 기울었다. 그믐달 구간이 되자 정말 한치 앞도 안보이게 깜깜하다. 도시에선 몰랐던 달빛의 위력이 새삼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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