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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Dec 28. 2023

귀촌일기/ 3주차

떡돌리기

12월 11일 월요일. 떡 돌리는 날

맞춤떡이 나오는 날인데 비가 온다. 혹시 아직 나오기 전이면 내일 빼달라고 할까, 좀 일찍 가본 떡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떡을 기다리는 동안 면사무소에서 이력서를 프린트하고 등본을 뽑았다. 여러 군데 기관에 제출해 볼 요량이다.

떡상자는 작은데, 떡이 너무 많다. 한 번도 이렇게 많은 떡을 주문해본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처음부터 몇 집이나 돌릴 수 있는지 여러 번 물어봤는데, 허허 웃기만 하시고 그건 돌리기 나름이고, 돌리가다 떡이 떨어지면 딱 손털고 집에가면 된다는 말만 반복하셨더란다. 그래서 나는 떡이 몇 접시 안될 줄 알았다. 웬걸, 2장씩 나누면 48가구에 줄 수 있다고. 김 나는 뜨거운 팥시루떡 2장을 호일에 대각선으로 올려 귀퉁이를 착착 접어서 예시를 보여주신다. 

우리는 외딴집이라 이웃이 그만큼이 없는데… 이 많은 떡을 다 어떡하지. 우리는 떡을 서너 장씩 호일에 쌌다.


하필 비가 와서, 현관 앞에서 계십니까-를 외치며 비를 맞고 서 있어야 했다. 집간 거리가 있어서 차를 타고 한집 한집 돌아다녔다. 어느 집이 사람사는 집인지. 세컨하우스인지. 펜션인지 알기 어려웠다. 꾀를 내서, 인사한 집에게 다음 집을 소개 받으며 다녔다. 우리집이 맞은 편 언덕위에 있어서 저집이에요, 할 수 있는 게 편했다. 이웃 대부분은 남향 도로변에 살고 있다. 


다들 이런 떡을 받아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며,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이사온 게 신기하다며 반겨준다.

자주 놀러오라고 하시는데 진짜 가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전 이장님댁이 산에 염소를 키우고 있다고 해서 이집은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몇몇 집에서 답례로 간장 2리터, 사과 한 꾸러미, 동치미를 주셨다.

저녁에 오자마자 샤워부터 하고, 밥을 차려 먹는다. 


9시부터 물이 안 나오길래, 상수도공사에 전화해보니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고 마을전체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고 했다. 여기 상수도는 취수지로 모은 계곡물을 여과기로 걸러서 공급한다는데, 비가 많이 와서 부유물 때문에 여과기가 막힌 것 같다며, 기계가 들어가긴 늦어서 내일 오전에 봐주겠다고 했다. 지붕에서 모여 내려오는 수도관 밑에 커다란 대야를 놓고 물을 받았다. 변기물을 쓸 때마다 물을 옮겨서 채워 놓았다. 11시쯤 되니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여러 집에서 항의해서 고쳐 놓은 것 같다. 상수도공사에서 전화해서 물이 다시 나온다고 알려줬다. 참 친절하고 빠르다. 


12월 12일 화요일

아침에 또 물이 안 나왔다. 상수도공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못 씻고 대기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통화만 해 본 이장님이다. 어제 찾아갔었는데 집은 비어 있고, 개 울타리안의 한 두 살쯤 된 잘생긴 개 한 마리가 우리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사람손을 몹시 좋아하는 아이. 이장님은 농한기라 그런건지, 농민이 아닌건지 골프복을 입고 세단을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 이사 온 집은 마을회비 백만원을 내야 한다고 젠틀하게 이야기했다. 백만원? 우리가 묻기도 전에 회비는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런저런 마을행사와 이장활동비 등으로 쓴다고 했다. 알았다고 했지만 모르겠다. 솔직히 우리는 면사무소와 직통으로 일하는 게 편하고, 군이나 읍에서 나오는 공지도 인터넷으로 읽고 있다. 어제 떡 돌릴 때 사람들이 이사를 온 사람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사람도 없는 마을에서 입회비 100만원은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뉴스에서만 보던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는 나가는 길이라며 떡을 받지 않고 갔다. 이장님에게 도움받을게 있지 않을까해서 면사무소에서 따로 연락처를 받아두었었는데, 앞으로 도움을 받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12시까지 물은 나오지 않는다. 배고파서 물을 안 써도 되는 요리를 만들었다. 어제 물이 나올 때 식수를 약간 받아 두었는데 바로 다음 날 안나올 줄이야. 야채만 간단히 씻어 다지고 캔토마토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쌀 씻을 물이 없고 스파게티 삶을 물이 없으니 잡곡 빵을 데웠다. 시골에 오래 살면 원팬 요리가 늘 것 같다. 캠핑하는 기분이 든다.


어제 비가 오고도 날이 춥지 않아서, 땅이 촉촉하게 풀렸다. 이런 날은 많지 않으니 밭에 있는 검정비닐을 걷기로 한다. 검정비닐은 지난 봄, 땅에 작물을 심을 때 제초 목적으로 이웃 할아버지가 깔아 놓은 것이다. 볕이 잘드는 빈 땅이라 옥수수 등을 심으셨다. 흙을 붓고 비닐을 까는 작업을 하는 기계를 로터리라고 하는데, 비닐을 끼우고 기계를 들고 움직이면 그 방향대로 이랑과 고랑을 파고 비닐을 까는 것까지 한 번에 완성된다. 이걸 없애는 기계도 같은 것인 모양인데 우리는 이 곳을 밭으로 쓸 계획이 아니라서 비닐을 손으로 걷어냈다. 비닐이 날리지 않게 양쪽 끝은 흙으로 덮어두는데 거기에 풀들이 자라서 걷기가 힘들었다. 힘없이 찢어지는 비닐을 보며 농사쓰레기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은 옥수수대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썪는 비닐을 만드는데 농사용으로 나오면 일도 덜도 환경파괴도 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생산단가가 높아서 상용화될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농사는 남기기 어려운 사업이니까.


<멧밭쥐>

아침에 정원을 거닐다가 멧밭쥐 둥지을 발견했다. 멧밭쥐는 아주아주 작아서 (5cm정도) 둥지를 억새잎, 나뭇잎으로 나뭇가지에 얹어놓 듯 짓는다. 집 근처에 멧밭쥐가 살다니 조만간 실물도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후에 밭에 쌓아놓은 잡초더미를 치우다가 멧밭쥐를 발견했다.

멧밭쥐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과 들에 널린 흔한 들쥐였는데, 논밭이 줄면서 서식환경이 좋지 않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작은 곤충, 곡류, 씨앗을 먹는다. 잡초더미에 먹을만한 것이 많았나보다. 서울에서는 멧밭쥐둥지를 수거해서 진열한정도로 이젠 귀해졌는데, 집 정원에서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한강야생탐사에 실습 나갔을 때 진열된 둥지를 보고 얘는 얼마나 작기에 집도 이렇게 작을까, 했는데 이렇게 작았구나. 이 정원에서 다람쥐도, 뱀도 보았다.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사는 정원으로 잘 가꾸어야겠다 다짐해본다.


12월 16일 토요일

3일간 서울에 다녀왔다. 오늘은 눈보라가 친다. 눈이 쌓여 집으로 올라오는 길을 차가 버거워했다. 주도로는 깔끔하게 치워져있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는 스스로 치워야 한다. 우리는 주도로에서 집앞도로로 오는 곳 구석에 세워두고 걸어올라 오는 걸 택했다.

눈발이 수평으로 날리고, 앞산의 나무들 틈으로 눈회오리가 보인다. 한동안 기온이 -15~-18정도 된다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오래 쌓일 것이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앞산 풍경이 흑백의 수묵화로 바뀌었다.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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