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나는 왜 시민으로 살고 싶어졌을까」 – 한국과 독일에서 배운 삶의 기준

by 그냥쉼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국민’이라는 단어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역사 교과서에도, 교실 벽에도, 국가대표 경기 중계 화면에도 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내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민국 국민이죠”라고 대답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20살 무렵 독일에서 1년간 워홀을 하며 살아보니 나는 완전히 다른 언어, 태도, 시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을 국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 도시의 시민이다.”

이 짧은 말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어디 출신이야?’에서 벗어나


한국에서의 삶은 묘하게 출신지로 나뉘는 느낌이 강했다.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 일반고와 특목고.

대학교에서도, 소개팅 자리에서도, 심지어는 알바 면접에서도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은 필수처럼 따라왔다.

그 질문 안에는 은근한 위계와 편견이 담겨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반면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디서 왔든 지금 어떻게 사느냐" 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작은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조차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수도(베를린)에 대해 열등감도, 우월감도 느끼지 않았다.

"여기서도 충분히 괜찮아. 우린 우리 방식대로 잘 살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묘하게 부끄러웠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만든 프레임


돌이켜 보면 한국의 ‘국민’이라는 말에는 국가 중심적이고 수직적인 감각이 짙게 깔려 있다.

국가는 보호자이고, 국민은 도덕적으로 충성해야 할 대상처럼 느껴졌다.

교육도 그랬고, 뉴스도 그랬고, 어른들의 말투에도 그 감각은 뚜렷이 존재했다.


하지만 독일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시민(citizen)’이라는 단어가 훨씬 자주 사용된다.

그 말은 단순히 국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국가와 계약을 맺고 권리와 책임을 함께 가지는 자율적 주체”를 의미한다.

여기엔 '비판할 수 있는 자유', '참여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자기 삶의 결정권'이 전제되어 있다.


나는 그 차이를 체험하며 내가 지금껏 '살고 있다'기보다 '소속돼 있다'고만 생각해왔구나하는 자각을 하게 됐다.




삶의 기준이 달라지다


독일의 삶은 ‘좋아 보이는 인생’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인생’을 중심에 둔다.

작은 마을의 가게 사장도, 농장을 운영하는 청년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당당함이 있었다.

도시에 있든 시골에 있든, 그곳에 사는 사람이 시민이었고,

그 시민이 지역을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에 반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의 “나 자신도 포함해”는 늘 어디론가 가야 하고, 더 올라가야 하며,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차이를 경험하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비교당하고, 길들여지고, 판단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이제 시민이고 싶다


내가 시민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건 단순히 ‘외국처럼 살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가 정한 기준에 내 삶을 맞추고 싶지 않다.

지방에 산다고 덜 중요하지 않고, 수도에 있다고 더 옳지 않다.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내가 내 삶을 결정하고 살아간다는 감각,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이다.


언젠가 나는 "나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말 대신,

"나는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민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국가의 보호를 기다리기보다는, 내 삶을 내 손으로 만드는 주체로서 살아가고 싶다.



맺으며


시민이 되는 것은 제도를 바꾸는 일만이 아니다.

자기 삶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걸 독일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삶이 아니라,

내가 괜찮다고 여기는 삶, 내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진짜 시민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