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언제 권력을 부추기는가
1. “나는 계몽되었다”
한 변호사가 말했다.
“나는 계몽되었다.”
그는 자신이 옹호하는 권력자를 향해, 그가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사회의 질서를 위한 용기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국민이 모두 이성적이지 않기에, 때론 누군가는 결단해야 한다.”
“나는 그 결단이 옳았다고 믿는다.”
“나는 계몽되었다.”
그 말은 낯설지 않았다.
아니,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2. 계몽주의는 누구의 것이었나
계몽주의의 중심엔 이성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며, 더 이상 신이나 왕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
하지만 그 이성은 때때로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가 대표로 ‘생각해주겠다’는 권력의 언어가 되었다.
“우리는 계몽되었고,
너희는 아직 미성숙하다.”
그때부터 이성은 도구가 되었다. 정당화의 근거가 되었고, 폭력의 가면이 되었다.
3. 계엄령과 ‘합리적 판단’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야당의 선거를 부정하고, 국민의 반발을 ‘혼란’으로 규정하며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 옆에서 변호사는 말한다.
“사회적 질서를 위한 불가피한 판단이었다.”
“국민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에, 대신 판단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계몽되었다.”
과연, 그 계몽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4. 악은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악은 괴물처럼 오지 않는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질서를 말하며, 법과 이성을 말하며 온다고.
“나는 단지 내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법을 따랐고, 질서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말한다.
“나는 계몽되었다.”
5. 질문 없는 이성은 폭력이 된다
계몽되었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어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이 옳은가?
내 판단은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가?
나는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구조에 빌붙은 것인가?
그 질문이 없다면,
‘계몽’은 오만이다.
그리고 오만은 곧 권력이다.
질문 없는 이성은 언제나 폭력을 부추긴다.
6. 나는 계몽되었다고 말한 그 변호사에게
그대는 정말로 계몽되었는가?
그대의 이성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
그대의 언어는 질서를 말하지만,
그 질서의 밑바닥에 깔린 공포를 그대는 보았는가?
나는 계몽되었다고 말하는 그 변호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