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의 외국인과 열병 같은 사랑에 빠진 저자가 입을 연다. 불구덩이에서의 생존나날을 뜨거운 기록으로 남겼다. 문학계에선 비난받고 독자들에겐 환호 받았던 극과 극의 평론을 가진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술문학으로 받아들이느냐,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치부할 것인가라는 논란 속에서 아니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다. 소설과 독백사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는 자신의 담담한 고백을 펼쳐 보임으로써 극대화된다. '단순한 열정'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의 사랑은 용암보다 뜨겁고 치명적이다.
>>르몽드: 단정하고 간결하고 차가운 문장들. 화해도, 양보도, 심리분석도 없다. 정확한 단어들만이 있을 뿐이다. 정확함에 대한 열정. 완전무결한 단호함 속에서 아니 에르노는 그 어느 때보다 훨씬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텔레라마: 불에 덴 상처와도 같은 소설. 이 작품은 당신 머릿속에, 살갗에 새겨진다. 아니 에르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간결한 고백 속에 시간을 제외한 모든 걸 의심하는 지독한 기다림이 있다.
>>리베리시옹: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녀는 미친 사랑을 만났다. 머리가 물속에 잠긴 듯한 숨 막히는 열정을 그녀는 이 사랑을 실험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거의 완벽한 그림으로 그려 보인다. '단순한 열정'을 읽으면, 사랑의 슬픔이 질병과도 같은 게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 감염되면 어릴 때는 가벼운 증세로 나타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위독해지는 병.
>> 이재룡(문학평론가): 가난이야 동정과 연대감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한 개인이 겪는 차마 고백할 수 없는 이별과 외로움은 그야말로 무익한 수난이다. 그 수난을 겪었던 사람들의 속내를 절절히 형상화된 '단순한 열정'은 이전 작품과의 단절, 배신이라고 단죄될 수 없다.
>> 진아: 아픈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은 예방접종을 하는 것과 같다. 아플걸 알면서 때맞춰 주사를 맞고 아픔을 완화하기 위해 우리는 또 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상처를 헤집고 끝내 적고야 만다. 첫 번 째 아픔은 교통사고처럼 준비 없이 마주한 상처라면 글은 그 상처를 두 번째 맞이하며 아프게 직시하는 것이다. 그런 글을 뱉고 난 날이면 아물지 않은 상처가 쓰라려 여러 날 뒤척인다. 쓰면서 응어리를 풀어낸다고 하지만 오히려 아픔은 더 선명해지다 격렬해진다. 새살이 돋기 전, 한 번 더 상처를 소독하는 과정이랄까. 다른 감정에 오염되지 않도록 소독을 한다. 순수한 아픔으로 존재하도록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쓰라릴줄 알면서 또 쓴다. 아픔을 모른 척 뛰어넘을 순 없다. 집요하게 써서 아무는 과정을 거친다.
비난받을 걸 알면서 내밀한 부분을 보인 작가는 어떤 마음일까. 후련해졌을까. 겨우 아문 상처를 헤집어 오히려 며칠밤을 뒤척였을까. 담담하게 그 감정을 수용했을까. 작가의 아린 듯, 덤덤한 듯한 문장을 곱씹으며 그마음을 헤아려본다.
>> 본문 밑줄 긋기
이제 재킷만 걸치면 저 사람은 떠나겠지.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 -17p
날이 밝아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다. --47p
이 기간 동안 나의 생각, 나의 행동들은 모두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현재를, 행복을 향해 열려 있던 과거로 바꾸어 놓고 싶었다. --49p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67p
프랑스어에서 'passion'은 남녀 간의 절절한 애정이란 뜻에서 우리말로 '열정'이라 번역하지만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겪은 '고통'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학시절 아니 에르노가 읽었던 사르트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의 삶은 '무익한 수난'이다. 작가는 사르트르의 용어에서 형용사만 바꿔 그녀가 겪은 한 시절의 체험을 '단순한 수난'으로 명명했으리라. --82p 해설 중
한 문장이 한 우주를 통째로 데려온다. 한 줄의 사건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는, 위대한 일을 '쓰는 사람'은 해내고야 만다. 아직은 우주를 향한 여정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한 우주를 창조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