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건 아닌데 아프지도 않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어 | EP.06

by 마리엘 로즈


예전엔 분명히 아팠던 일이다.


그 말을 들은 날,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 하고
한참을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괜히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장면으로 돌아가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혼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씩 되뇌던 시간.


그땐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일을 떠올려도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기억은 또렷한데
이상하게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다.


잊은 것도 아니고,
이해한 것도 아니고,
용서했다고 말하기엔
조금 애매한 상태.


그저
마음이 예전만큼 반응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게 더 낯설다.



나는 아직 그 일을 기억한다.


누가 어떤 표정으로 말했는지도,
그때 내가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도
다 안다.


그런데
그 기억 위에 얹혀 있던
아픔이나 분노가
이제는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감정이 조금 옅어진 걸까.


예전엔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일들이 있다.


꼭 짚고 넘어가야 했고,
설명받고 싶었고,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지금은
굳이 꺼내 들지 않는다.


괜찮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의 마음을
다시 쓰고 싶지 않아서.


그 선택이
어른이 된 건지,
조금 무뎌진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쉽게 말한다.


“사람이 변했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은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다.


말투도,
생각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감정을 쓰는 힘이
예전 같지 않을 뿐이다.



기억은 닳지 않는다.


다만,
그 기억을 꺼낼 때
함께 따라 나오던 감정이
조금씩 마모되어갈 뿐이다.


그건
차가워졌다는 뜻이라기보다
이미 충분히 써왔다는 뜻에 가깝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기보다
같은 사람이지만

조금 덜 아파지는 쪽을 선택한다.


어느 날
예전처럼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잊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이미 지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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