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이름 맞추기 사건

로얄드달의 《맛》

by 와인생각

<와인이 있는 페이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의 작가로 알려진 로얄드 달의 단편집 표제작이다.

런던에 사는 증권 중개인 마이크 스코필드는 저녁 식사 자리에 그의 지인 부부와 유명 미식가 리처드 프랏을 초대한다. 리처드는 포도주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조신한 포도주로군. 약간 수줍어하고 망설이는 듯하지만, 어쨌든 아주 조신해.”

“명랑한 포도주로구먼. 자비롭고 명랑해 .약간 외설적인 것 같기는 하지만 , 어쨌든 명랑해.”

이런 식이었다.

마이크는 리처드가 올 때마다 클라레(보르도 산 붉은 포도주)의 품종과 연도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했는데 매번 프랏이 이겼다. 하지만 마이크는 유명한 미식가가 알아맞힐수 있을 만큼 좋은 포도주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프랏은 프랏대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며 즐거워했다.

버터로 파삭파삭하게 구운 뱅어에 모젤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가 시작되었고 큼지막하게 구운 쇠고기 요리와 함께 클라레를 마실 시간이 왔다. 마이크는 서재에 보관해둔 포도주를 바구니에 넣어 레이블이 보이지 않도록 들고 왔다. 프랏은 포도주의 이름 맞추면 마이크의 18세 딸 루이즈와 결혼하고, 맞추지 못하면 마이크에게 자신의 대저택 2채를 주겠다고 한다.


“ 음 , 그래 아주 재미있고 귀여운 포도주로구먼. 상냥하고 우아하고 뒷맛은 거의 여성적이네...생테밀리옹이나 그라브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진한 맛이 너무 약해...마르고산 특유의 강렬항 향이 없고 포이야크라고 하기엔 너무 연약하고 너무 상냥하고 수심에 차있지...오만하고 약간의 심이 들어 있는 힘찬 포이야크는 아니야. 상냥하고 새침을 떨고 수줍어 하는 첫맛, 두 번째 맛은 우아하고 약간의 교활함이 느껴져...뒷맛이 유쾌해 위로를 해주는 여성적인 맛...약간 경솔하다 할 정도로 너그러운 기분...이건 생쥘리앵의 포도주요...생쥘리앵의 포도밭 중에서 분명 일등급 포도밭은 아니오... 이등급 삼등급도 아닌것 같아...아주 좋은 해에 사등급 포도밭이야...생쥘리앵 코뮌의 사등급 포도밭은 어디일까?...중간 맛의 탄닌 . 순간적으로 혀를 휘어 잡는 떫은 맛... 베슈벨 근처의 작은 포도밭...강과 작은 포구. 포구 바닥에는 흙이 쌓여 이제는 포도주 배들이 들어오지 못하지. 하지만 베슈벨과 아주 가까운 곳이야. 샤토 탈보일까? 탈보의 것이라면 이 포도주보다 약간 더 빨리 앞으로 튀어 나오지. 열매가 표면에 더 가깝단 말야 ...베슈벨과 탈보 그 둘 사이쯤일 게 틀림없어...아!..찾았어...이건 귀여운 샤토 ****-***, 연도는 1934년이오.”


“ 아버지!” 딸이 괴로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완벽한 테이스팅 퍼포먼스다. 보르도산으로 우안의 생테밀리옹이 아닌 좌안의 메독, 메독 중에서 생테스테프와 포이약, 마고가 아니라 생쥘리앵 4등급 포도밭으로 정답을 좁혀가며 펼치는 퍼포먼스가 엄숙하기까지하다.

물론 이야기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하녀의 표정에는 열여덟살 딸 루이즈가 50대 초로의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 비극이 일어날지 어떨지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다.

과연 딸의 인생을 걸 정도로 내기에 이길 자신이 있었던 마이크의 와인에 대한 식견은 옳았던 것일까?

“ ...라피트나 라투르처럼 유명하고 훌륭한 포도주가 아닐 경우에는 어떤 일정한 방법을 사용해서 포도밭을 맞출 수밖에 없어...생테밀리옹이냐 포메롤이냐 그라브냐 메도크냐 ...각 지역에도 코뮌들...이 행정단위 밑에는 작은 포도밭들이 수도없이 많아...한 사람이 맛과 냄새만으로 그 포도밭을 다 구별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오히려 프랏의 대저택 2채를 받아서 딸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이다.

이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 다른 단편들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전개되는 이야기들에 푹 빠져든다. 천재적인 이야기꾼 로얄드 달은 와인에 관해서도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미각을 가진 것 같다. 와인에 대한 사기도 이정도면 거의 예술이다. 떼루아, 호브( robe), 꼬달리 ,에이징,빈티지 등 와인에 대한 지식을 오감을 총동원하여 탐색한다. 수많은 그랑크뤼 와인들 중에 1등급도 아니고 4등급 와인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사기 스킬!


<책속의 와인>

*가이어슬라이 올리그스베르크,1945.

*샤토 브라네르-뒤크뤼 ,1934

*샤토 라투르 /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베슈벨 / 샤토 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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