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와 감자꽃

마리 앙투와네트와 감자

by 와인생각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빵의 결핍으로 분노한 시민들의 혁명에 불을 댕긴 말이다. 사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라 태양 왕 루이 14세의 주책맞은 왕비 마리 테레즈의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혁명의 희생양과 선동이 필요한 누군가에겐 빵 반죽의 효모처럼 민중의 분노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 완벽한 모티브였다. 다 같은 밀가루로 만들지만 굶주림이나 결핍을 말할 때 가장 절실하게 와 닿는 건 케이크보다 절대적으로 빵이다. 그 당시 비싼 밀가루로 만든 빵이 없어서 옥수수와 거친 곡물, 대두, 도토리 등의 죽으로 연명하던 사람들도 굶주림 앞에선 하나같이 ‘빵’에 대한 결핍으로 뭉쳐서 반응했다. 굶주린 식구들에게 먹이려고 빵 한 덩이를 훔치다가 19년 동안 혹독하게 감옥살이를 한 ‘장 발장의 빵’과도 같은 은유의 것이다.

‘빵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배고픈 병사들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빵은 바로 그런 것이다. 베르사유 궁을 습격하여 왕과 왕비 일족을 끌고 파리로 향하던 그 전대미문의 행렬에서 국민군 병사들은 대검에 빵을 꿰어 들고

“ 빵집 주인과 빵집 여편네와 그 자식들을 데려간다. 이제 배고픔은 끝났다” 라며 조롱과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마치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상반되는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서 싸우며 100년이나 끌어온 소송을 속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혁명은 왕비를, 특히 왕비가 가진 여자로서의 면모를 공격해야만 했다.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문 법이고, 선동을 목적으로 어떤 인물을 그릴 때에는 막일꾼과 같은 사람에게 정의란 별로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하략”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서문의 머리말이다.

그는 흔히 역사책의 뒷장에 열거된 참고 문헌들과 같은 자료들을 이 책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혁명 기간에는 가장 단호하고 냉혹했던 시녀와 시종, 간수들이 다시 루이 18세 시대가 되자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기품 있고 순결하며 덕망 있는 왕비를 얼마나 남몰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를 알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증인으로서 ‘너무나도 안성맞춤의 기억력’을 갖고있는 그들의 비굴한 아첨을 참고로 할 수 없다고 이 책에서는 밝히고 있다. 더욱이 그 당시 유행하던 ‘회상록의 붐’에 편승하여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과장되게 쓰인 출판물들은 지극히 평범한 그녀에게 전혀 걸맞지 않다는 것도 그 이유라고 말한다. 특별히 기지가 뛰어나다거나 감정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 어찌 보면 무능함 마저 보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온순한 인물이기에 그렇게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일들을 결코 했을 리 없다는 역설로 그녀를 변호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어떤 인물들을 우상화하거나 신격화해서 독자의 감성을 흔드는 전형적인 위인전에 익숙해 온 나로서는 그의 말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흔히들 ‘마리 앙투아네트’ 라고 하면 빵과 케이크, 베르사유의 장미꽃을 떠올리지만 의외로 생각나는 꽃이 있다.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와 달리 우연히 읽은 일련의 문헌들을 통해 그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연민을 품기 시작했다. 빵과 식량의 역사에 관한 사료를 근거로 한 책들 속에서 만난 ‘마리 앙투아네트와 감자 꽃’이 그러하다.

베스트팔렌의 포로수용소에서 감자를 먹어본 뒤 그 진가를 알게 된 약사 출신의 파르망티에와 함께 마리 앙투아네트는 기근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해 감자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당시 감자는 포로들이나 짐승들의 먹이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기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감자의 홍보활동에 나선다. 시골 생활을 좋아했던 왕비는 왕가의 토지에 감자를 재배하고 착검을 한 근엄한 경비대가 밭을 지키도록 했다. 군대를 보내서 경비할 정도로 감자의 가치가 높다는 걸 일반 국민들이 인식하게 했던 것이다. 고급 도자기와 직물에도 감자꽃 문양을 의무화하고, 단추 구멍에 감자꽃으로 장식한 옷을 입은 루이 16세와 함께 감자꽃을 모자에 꽂고 패션의 유행을 주도했다.


파르망티에가 베르사유 정원을 산책할 때, 루이16세 커플에게 감자꽃을 건네주었다. 왕비는 머리에 몇 송이를 꽂았고 왕은 그의 단추 구멍에 꽂았다고 전해진다.


약사 파르망티에가 루이16세에게 감자를 보여주고 있다.


파르망티에의 초상화 ( Portrait of Antoine Parmentier painted by François Dumont)


감자꽃


순정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남장의 여주인공 오스칼의 매력에 가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와, 궁정의 연회에 가서 감자의 유용성을 알리기 위해 모자에 감자꽃을 꽂고 거울 앞에 선 마리 앙투아네트를 상상해본다. 反공화국적 상징인 장미 대신 감자꽃을 꽂았던 마리 앙투아네트다. 공화국을 수립한 뒤 파리 코뮌은 튈르리 궁전의 정원을 감자밭으로 만들도록 법을 개정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정원사 제르맹 슈베는 反공화국의 상징인 장미를 뽑아내고 애국적인 감자를 심어야 했다. 결국 감자꽃을 사랑한 그녀가 옳았음을 증명해주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만약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라는 말 대신에 “빵이 없으면 감자로 만든 빵이나 수프를 드세요” 라는 말이 저자거리에 퍼졌다면 혁명의 불씨는 지펴졌을까? 사형장의 문턱까지 가서 형리의 발을 밟을 리도 없었을 테고 또 그녀가 우아하고 의연하게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예요”라고 사과했다는 뒤늦은 아첨꾼들의 부풀린 충심의 증언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살아남은 권력자들의 소설’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위대한 시민혁명으로서의 당위성과 그 당시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혁명의 필연성에 대해 감히 의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빵과 케이크에 얽힌 그녀에 대한 오해는 장미와 감자꽃의 괴리처럼 생경스럽고 안쓰러울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백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혁명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그녀의 결백이 뒤늦게나마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감자가 땅속에서 뿌리 덩이를 키우는 계절이 오면 나는 소담스러운 하얀 감자꽃과 초여름 태양 빛에 서러운 청보라빛 감자꽃을 챙 넓은 모자에 꽂고, 왕가의 시골 마을의 별궁인 쁘띠 트리아농에서 소문과는 달리 소박한 식탁을 꾸미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추모하고 싶다.


* 참고 서적 : 《빵의 역사》 하인리히 E 야곱 著

《먹거리의 역사》 마귈론 투생-사마 著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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