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프라블럼

- 튀 므 망크 ,너는 나에게 비어있어 -

by 와인생각

-와인이 있는 페이지-


17세기 프란체스코 수도사

돔 페리뇽은 와인에 효모와 설탕을 넣고 발효시켜 기포가 발생한 샴페인을 최초로 만든 양조자다. 이 톡 쏘는 묘약을 한 모금 마시고 그가 말했다.

“어서 와, 나는 별을 맛보고 있어.”

영화 《샴페인 프라블럼》 여주인공 시드니는 이 ‘돔 페리뇽’ 컨셉의 프리젠테이션으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샴페인 명가 ‘샤토 카셀’ 인수 건의 프로젝트를 따낸다. M&A 기업 임원인 그녀는 회사 대표에게 돔 페리뇽처럼 ‘별을 맛보게 해주겠다’고 야심만만하게 파리로 향한다.

일에 빠져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언니에게 동생 스카일러는

“언니는 모험을 너무 오래 미뤘어. 파리에 가서 딱 하룻밤만 일을 쉬겠다고 약속해.”라고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때마침 도착한 파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로 술렁인다.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거리를 나섰지만 그녀에겐 파리의 그 화려함이 번잡스러울 뿐이다. 동생에게 책을 선물하려고 인근 서점에 들른다. 2층 계단 층계에는 프랑스어로 “ J’ACCEPTE LA GRANDE AVENTURE D’ETRE MOI.”라고 쓰여있다. 그 문구의 의미를 처음 만난 앙리에게 물어본다.

“나는 나 자신이 되는 위대한 모험을 받아들인다.”라는 뜻으로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한 말이라고 설명한다.

몽환적인 조명으로 장식된 그 계단은 마치 책의 우주로 떠나는 타임머신 같다.

책 세상은 어떠한 안전장치가 없어도 ‘나 자신이 되는 위대한 모험’의 길을 떠날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 같다. 하필이면 ‘레제투알’이라는 파리의 유서 깊은 그 서점에서 시드니와 앙리가 만난 걸까? 앙리가 거의 매일 레제투알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와인바가 있는 ‘와인 서점’을 차리고 싶어서다. 와인과 책이 함께 은유하는 것은 무얼까?

와인이 오크통에서 익어가듯 책 또한 고전이 되어 오랜 시간을 지켜오는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변하는 숙성의 미학이 아닐까? 한 병의 와인과 한 권의 책에는 그것들이 지닌 고유의 세계가 담겨있다. 코르크를 따기 전의 설렘과 책장을 열기 전의 기대감은 닮아있다. 책 표지나 와인의 레이블만 보고 골랐다가 뜻밖의 감동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을 하기도 하는 그 우연성의 묘미도 그러하다.

와인과 책, 둘 다 모두 시간과 경험을 담고 있는 철학적이고 낭만적인 조합으로서의 ‘와인 서점’을 꿈꾸는 앙리.

‘별들의 웃음 속에는 달콤함이 있다’는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글귀를 그녀에게 건넨다. 그가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늘 읽어주던 책이라며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돔 페리뇽의 별’과 ‘어린 왕자의 별’은 와인과 책 속에 담겨있는 별이다.

시드니도 결혼생활 2년 만에 이혼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만난 지 몇 시간도 안 된 사람에게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책하는 그녀에게 앙리는 “와인이 들어오면 이성은 떠난다” 며 프랑스어로 속삭인다.

앙리가 샤토 카셀 오너의 아들이라는 것과 시드니가 샤토 카셀의 인수 병합의 목적으로 파리에 온 사실을 서로 모른 채 함께 밤을 보낸다. ‘와인이 들어오면서 떠난 이성이 다시 돌아온 아침’에 둘은 샤토 카셀의 회의실에서 맞닥뜨리고 당혹해한다.

시드니와 샤토 카셀의 인수 건을 놓고 경쟁하는 3명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시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중이 가장 좋아할 만한 맛’을 설계해야 한다며 ‘시드니의 감성적인 접근이 하우스를 망칠 것’이라고 독설을 내뱉는 독일인 오토.

자신의 사교적인 능력을 이용해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미리 파악하고 정보력에 취약한 시드니를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는 프랑스 여인 브리지트.

세계적인 파티 명소 스페인 이비자(Ibiza) 출신의 억만장자이자 클럽의 소유주로 비즈니스 미팅보다는 파티와 샴페인을 즐기고 자유분방한 쾌락주의자 로베르토. 경쟁자 중에서 가장 샴페인과 와인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인물이다. 막대한 재력으로 고급 샴페인과 와인을 두루 섭렵한 그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샴페인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지만, 정작 심사과정에서는 시드니가 가진 직관과 진심에 공감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장면에서 그가 표현하는 와인의 묘사에 와이너리의 오너 ‘위고 카셀’도 압도될 정도다.

오토의 완벽한 데이터, 로베르토의 완벽한 기술, 브리지트의 완벽한 평판 사이에서 시드니는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맛’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완벽한 맛은 없다. 오직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맛이 있을 뿐”이라고.

결국 이 사건을 통해서 그녀는 경쟁자들을 이기는 법이 아니라, 그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서점 계단에 쓰인 글귀처럼 ‘나 자신이 되는 위대한 모험’을 받아들인 것이다.

경합 과정에서 생긴 오해로 앙리에게 결별 통보를 받은 시드니는 그에게 배운 프랑스어 ‘튀 므 망크 ’의 의미를 절감한다. 영어로 ‘ I miss you’, ‘보고 싶어’ ‘네가 그리워’라는 의미다. ‘너는 나에게 비어있어’ ‘너라는 존재가 나에게서 빠져나가 있어’ ‘ 네가 없어서 내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버렸어’라는 뜻의 프랑스어, ‘튀 므 망크 Tu me manques’.

영어로 ‘나는 너를 그리워해’가 아니라 ‘네가 나에게서 결여되어 있어’라는 프랑스식 사랑의 정의.

어느새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 그녀는 그의 부재로 텅 비어 버린 가슴이 아프다. ‘너라는 조각이 내게서 빠져나간 상실의 아픔’.

뒤늦게 오해였음을 알게 된 앙리와 시드니는 처음 만났던 그 서점 계단에서 재회한다. 그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이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며 망설이다가 ‘튀 므 망크’라고 고백한다. ‘돔 페리뇽’과 ‘어린 왕자’의 별이 샴페인의 기포처럼 반짝이는 순간이다.

차갑고 어두운 지하 저장고에서 긴 시간 압력을 견디며 만들어진 샴페인 기포의 '별'의 맛.

"별들의 웃음 속에는 달콤함이 있다."라는 상실의 아픔을 견디게 하는 어린 왕자의 다정한 기억.

‘샴페인 프라블럼’은 타인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배부른 고민 같지만 나를 짓누르는 절박한 결핍의 문제다. ‘튀 므 망크’는 내 마음의 빈 곳을 채워야 할 결핍이 아니라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기 위해 비워둔 공간이다.

결국 시드니는 자신의 결핍을 인정함으로서 그 사소한 고민들이 사실은 ‘인생이라는 샴페인’을 가장 맛있게 터뜨려 주는 기포였음을 증명해준다.

나를 괴롭히던 고민은 ‘별의 맛’이 되고, 외로운 밤하늘이 '별의 웃음'이 되는 심리적 연금술을 발견한 것이다.

May your only pain be champagne!


* 와인 팁 하나 !

영화 속 ‘샤토 카셀’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성과 포도밭은 샤토 콤테스 라퐁 ( Château Comtesse Lafond )이다.

샴페인의 수도라 불리는 에페르네(Épernay)의 유명한 '아비뉴 드 샹파뉴(Avenue de Champagne)'에 위치한 유서 깊은 샴페인 하우스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그곳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과 12월의 축제의 거리는 마치 움직이는 영상의 크리스마스 카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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