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항아리와 포도주-
<와인이 있는 페이지>
너는 아직도 순결한 정적의 신부
너는 침묵과 기나긴 시간 속에 자란 양자이다.
너는 숲속의 역사가,
우리 시인의 노래보다 더 꽃다운 이야기를
이처럼 전해줄 수 있다니
네 둘레에 감도는 것은 어떤 전설인가?
죽음에 관해선가, 영원한 것인가? 그 모두에 관해선가?
템페 골짜기인가, 아르카디아 언덕의 일인가?
사람들의 일인가, 신들의 일인가, 신과 인간 모두의 이야긴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신들일까? 도망치려는 것은 어떤 소녀일까?
이 얼마나 미친 듯한 구애인가, 도망치려는 몸부림인가?
어떤 피리이며 어떤 북인가? 얼마나 미친 듯한 환희인가?
(......)
오 아티카의 형체여! 아름다운 자태여!
대리석에 새겨진 젊은이와 아가씨들
숲의 나뭇가지와 짓밟힌 갈대도 있구나.
너는 침묵하는 모습, 차가운 전원이여!
사람이 나이 들어 한 세대를 마감할 때도 너는 남아서 이렇게 말하라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너희들이 아는 것 전부이고, 알아야 할 것은 이뿐이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존 키츠(1795~1821)의 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첫째 연과 마지막 연이다.
키츠는 일찍이 신화에 대해 탐독하고 그리스 예술 특히 조각과 그림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 시는 키츠가 대영 박물관에 있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항아리에 그려진 그림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피리 부는 젊은이와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과 신비로운 사제들의 제사 행렬을 담은 그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항아리는 오랜 세월을 견뎌내며 인간들의 역사를 목도해왔기에 ‘숲속의 역사가’라고 부른다. 또한 디오니소스의 축제처럼 항아리에 새겨진 젊은 남녀들은 피리와 북을 연주하며 광란의 춤과 음악을 즐기는 신화 속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이 시의 원제(原題) ‘ Ode on Grecian Urn ’에서 ‘그리스 옛 항아리’는 고대 그리스 문화권의 지중해 여러 지역에서 제작된 도자기다. 주로 물, 술, 기름, 곡식을 저장하고 제사용, 장례용 등으로 사용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암포라’다. 그리스 항아리에는 주로 신화와 전설, 디오니소스 축제 장면들이 그려져 있는데 로마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Dionysos)를 바쿠스 (Bacchus)라고 하며 ‘포도주의 신’과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1세기경 나무통이 등장하기 전까지 와인을 발효시키고 저장하고 운반할 때 가장 널리 쓰인 용기가 암포라였다. 그 당시 그리스 와인이 진출한 범위는 유럽 전 지역에 산재하는 수천 개의 암포라를 보면 알 수 있다. 암포라는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고 지역과 만든 이에 따라 특징이 있고 대부분 25리터에서 30리터짜리 용량이었다. 외형은 바닥이 뾰족하고 몸통은 위로 갈수록 넓어지며 손잡이는 두 개로, 와인을 가득 채우면 한 사람이 들기에는 무거워서 두 사람이 양쪽에서 같이 들고 운반하게 되어있다.
시진 :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항아리
이 대용량의 암포라에 들어 있는 포도주를 물에 희석할 때 사용하는 항아리가 ‘크라테르’이다. 그리스인들은 보통 와인을 물과 희석해서서 마셨는데 와인에 섞는 물의 양을 정하는 것이 심포시아르크라 불리는 좌담회 주최자의 역할이다. 좌담회를 의미하는 심포지엄(symposium) 은 심포시온 (symposion)에서 나온 말인데 , 함께 마신다는 의미다. 그리스인들은 좌담회에서 와인을 마시면 꾸밈없고 솔직해진다고 생각했고 “와인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격언을 신봉했다. 대화를 부드럽게 만드는 한도 내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와인에 취하지 않는 좌담회’를 교양의 극치로 간주했다. 그리스식으로 물에 희석해서 여러사람들과 함께 약간 기분 좋을 정도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교양인이었다. 반면에 와인에 물을 섞지 않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야만인이었다. 교양 있고 세련된 음주 문화와 자제력을 잃고 폭음하는 교양 없는 음주 습관이 대조적이다.
사진: 크라테르
당시 어느 문인은 “ 와인 한 크라테르를 비우면 좌담회 참석자들의 건강에 좋고, 두 번째 크라테르를 비우면 사랑을 나누기에 좋고, 세 번째를 비우면 잠이 오고, 네 번째를 비우면 자제력이 약해져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와인이 ‘신과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의 전유물’이던 고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전래된 것은 ‘와인을 소수가 독점하는 문화에서 다수가 공유하는 문화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는 와인에 물을 섞어서 팔다가 들키면 수장(水葬)되는 반면에 그리스는 물 탄 와인을 마셔야 교양인이다. 그리스의 포도 재배법의 발달로 인한 와인의 생산량 증대와 함께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시는 문화‘는 모든 신분 계층의 와인 음용량의 확대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물은 王도 노예도 불가촉천민도 마신다‘는 말처럼 물 대신 마시는 , ’와인에 물을 섞는 그리스식‘ 음용법은 ’와인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고대 그리스에 걸맞은 문화양식이다.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시던 음용법은 로마시대에도 이어져, 와인은 쾌락을 위한 기호품이라기보다 물과 함께 일상적으로 마시는 필수 음료가 되었다.
※참고 도서 :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로드 필립스著,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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