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답이 나의 답이 되지 않는다.
자기 계발 영상을 듣는데 채널에 게스트로 나온 변호사 분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그래서인지 그 영상의 주는 청자들에게 뭘 하고, 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차지했다. '해외여행을 경험이라 생각하며 돈 쓰지 말고, 그 돈을 아껴서 주식을 사라'는 등의 말이었다. 그분의 의도는 '청자들이 각성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였지만, 듣는 동안 내 마음에는 영상을 그만 듣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좋아하는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을 하라고?' 나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해 왔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여야 몰입이 가능했다. 그 몰입의 경험은 행복으로 이어졌다. 몰입하지 못한 채 뭔가를 하게 되면 중도에 그만두거나 노력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난해 펫쇼에서 선보인 신발에서 보완할 점이 발견되고, 그 후 3개월 동안 새로운 샘플 계발에 주력했다. 수정은 지지부진하게 계속되었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속으로 서두르지 말자고 하면서도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나에게 몰입의 즐거움을 준 것은 일이었다. 출근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처졌던 기분이 다시 좋아진다. 가시적인 성과가 있지 않아도 언젠가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품게 된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은 일상을 유지함에 있어 중요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몰입의 힘이다.
의무감에 의해서 뭔가를 했을 때는 몰입을 할 수 없다. 몰입을 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만족하기가 어려우며 성과도 썩 좋지 않다. 일례로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를 연재하기로 했는데, 10화를 넘긴 이후 의무감에서 글을 쓰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작가는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써야만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썼을 때 오히려 더 만족스럽지 못한 글을 발행하고는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몰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시간제한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에 몰입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한 번은 두 시간 안에 강아지 집에 달아줄 커튼을 만들었던 경험과, 또 한 번은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새로운 요리를 시도했던 경험이다. 마음에 조급한 상태에서 정말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일을 할 때의 집중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두 번의 경험은 내가 일이나 음악 외에도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몰입하는 순간에는 마치 명상을 하는 것과도 같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해야 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겠다.
누군가의 정답이 꼭 나의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내 말이 누군가에겐 정답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월요일에 발행할 글을 화요일에 발행해도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월요일에 썼던 글은 발행을 하지도 못한 채 서랍 속에 있다.)
다른 생명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가 원하는 순간, 진실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도 된다.
어쩌면 그것이 더 괜찮은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