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루는 차원이 달라진다.

나는 거의 서른이 됐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독서는 항상 힘들었고 늘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렸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삶은 변하지 않았다. 절망과 좌절만 커져갔다.

예전에 독서하면서 삶을 바꾸려면 움직이는 독서를 해야겠다는 자각을 얻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책 쓰기가 바로 움직이는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책만 읽어서는 그야말로 망한다. 나는 이것을 정말 뼈저리게 경험했다. 독서는 책 쓰기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읽은 것이 살아 숨 쉬며 삶을 변화시킨다.

조선이 낳은 최고의 독서가이자 집필가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초서의 방법이다. 먼저 자기 생각을 정리한 후 그 생각을 기준으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어느 정도 자신의 견해가 성립된 후에 선택하고 싶은 문장과 견해를 뽑아 따로 필기해서 간추려놓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뽑아서 적어 보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재빨리 넘어가야 한다. 이렇게 책을 다루면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이면 다 처리할 수 있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 다산 정약용 ‘두 아들에게 답함’


처음에 이 글을 읽었을 때는 가슴이 벌렁거렸다.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백 권이라도 열흘 만에 처리하고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실패였다. 이유는 ‘먼저 자기 생각을 정리한 후, 어느 정도 자신의 견해가 성립된 후에’ 책을 보라는 부분 때문이었다. 이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몰라서 읽는 건데 먼저 내 생각을 세우라는 게 와 닿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하루 몰입 책 쓰기를 하면서 책을 보니 다산 선생의 말씀이 이해를 넘어 체험이 된다. 다산 선생은 아들들에게 하루 몰입 책 쓰기를 가르치고 계셨던 것이다. 이에 대해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식의 단련법에서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자.


“입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출력의 목적이 분명하여 그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한 입력이라는 점이 확실한 경우, 둘째는 입력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등은 전혀 생각지 않고 그저 즐겁게 입력하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다. ‘출력선행형’과 ‘입력선행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지적 생산형’과 ‘지적 생활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자의 경우, 입력은 수단이고, 후자의 경우 입력 그 자체가 목적이다.

내가 일삼아 정보를 쌓는 것은 모두 전자에 해당한다. 우선 주제가 있고 다음으로 그 주제를 전개해가는 데에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여 찾아낸 다음 그것을 입력한다.

한 권의 책을 즐거움을 위해 읽는 경우라면 기껏해야 하루 두 권 정도다. 그러나 특정한 정보를 찾아 문헌을 섭렵하는 경우에는 하루에 열 권 스무 권을 해치우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여기서 ‘책을 해치운다’라는 말은 ‘책을 읽는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책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 것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가 필요하고 어디가 불필요한가를 어떻게 분간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인식해두는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만 확실히 인식하고 있으면 목차, 작은 표제, 색인만을 활용해도 대체적인 감을 얻을 수 있다. 대체적인 감을 바탕으로 쓸모 있어 보이는 페이지를 펼쳐서 단락마다 몇 행씩 훑어보노라면 필요한 내용인지 아닌지 짐작이 선다. 필요한 부분을 찾으면 그곳을 정독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표현에 따르면 하루 몰입 책 쓰기는 출력 선행형 또는 지적 생산형 독서를 이끈다. 그래서 차분히 한 자 한 자 읽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책을 처리하거나 해치울 수 있게 된다. 하루 몰입 책 쓰기는 독서의 질과 양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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