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기계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이죠. 그 결과 세상이라는 커다란 공장 속의 작은 톱니바퀴와 같은 삶을 선택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매트릭스를 깨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죠. 이제 거의 다 왔어요. 한 발짝만 더 넘어서면 모든 것이 생각보다 더 빨리, 그러나 쉽게 진행될 거예요.”
나는 나를 두려워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실수가 있을까 봐 두렵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비난을 받는 것이 두렵다. 나는 왜 나를 두려워할까? 말하고 행동하는 나와 그것을 살피고 두려워하는 나는 다른 나인가? 가만히 보니 나는 내 안에서 나를 조종하는 프로그램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이서윤 작가가 말한 ‘매트릭스’가 아닐까? 내가 마침내 탈출해야 할 감옥 말이다.
병 속의 흙탕물을 정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가만히 두는 것이다. 물속의 불순물이 모두 가라앉아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방법에 중심을 두어왔다. 하지만 이 방법은 복잡한 일상에서 한계가 많고 설사 맑아졌다 하더라도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다시 흐려졌다. 이젠 두 번째 방법으로 가려고 한다. 병 속으로 맑은 물을 계속 부어주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흙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격렬하게 섞이면서 회전한다. 결정적으로, 병 속의 물이 밖으로 흘러나오며 불순물을 조금씩 희석시킨다. 불순물의 농도가 점점 낮아지다가 종국에는 맑은 물만 남게 된다. 이 방법을 쓰면 당장 맑아지지 않고, 더 흐려지는 것 같고, 불안해지기 때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 방법이 빠른 길이라는 걸.
내가 맞닥뜨리는 일상의 불편한 기분은 세상에 수많은 불편함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자. 내 문제에만 집중하면 그것이 세상을 덮는다. 하지만 세상의 문제들 중에 하나로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 산뜻한 마음으로 맑은 물을 채우자.
맑은 물을 채우는 삶의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동양적 방식과 서양적 방식이다. 무엇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나는 서양적 방식이 효과가 있다. 동양적 방식은 마음을 비우는데 초점을 두고, 서양적 방식은 마음을 채우는데 중심을 둔다. 결론적으로는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지만 접근 방식이 사뭇 다르다.
동양적 방식은 생각을 내려놓고 비우기를 강조한다. 여기서의 생각은 현실을 창조하지 못하는 과거에 묶여있는 생각이다. 동양적 방식의 한 모범으로 도덕경을 들어 보자. 도덕경의 권위자인 최진석 교수는 도덕경에 대한 오해가 심하다고 지적한다. 도덕경은 문명을 부정하거나 성공을 도외시하는 게 아니다. 그저 기존의 문제를 일으키는 문명과 성공에 대해 다른 접근법을 제시할 뿐이다.
“위무위 즉무불치 爲無爲 則無不治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도덕경은 단순히 무위를 강조하는 게 아니다. 초점은 무불치에 있다. 모든 걸 다스릴 수 있는 것, 이 효과를 위해 무위를 할 뿐이다. 자신을 뒤에 두고, 아래에 두고, 흐릿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들도 결국 자신이 앞서게 되고, 위로 가고, 선명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효과는 보지 않고 단순히 자연으로 돌아가고 성공을 등한시하는 게 옳다고 오해한다.
동양적 방식을 그 표현방식 때문에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살아있는 생각들로 채워야 한다. 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기지 못한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훌륭한 나무가 자라고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서양적 방식은 있음을 강조한다. 동양에서 없음을 강조하는 것과 반대다. ‘있는 자는 더 가질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다.’ 성경의 이 구절은 서양적 방식을 아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있고 없는 것은 생각이다. ‘살아있고 창조적인 생각’이다. 마음을 창조적인 생각으로 채운 자는 원하는 삶을 더 얻을 것이고, 마음이 창조적인 생각 없이 텅 빈 자는 기존의 삶 마저 흔들릴 것이다. 이것은 동양적 방식과 그 표현방식을 달리할 뿐이다. 건강한 에너지로 삶을 가득 채우라는 가르침은 같지만, 동양에서는 과거에 집착하는 마음을 비우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현재에 깨어있는 생각으로 채우라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가지고 적지 않은 시간을 전전긍긍했다. 여러 곳에서 지혜를 구했지만 하나로 꿰뚫지 못했다. 이제 조금씩 실마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를 알고 지혜를 알고, 내게 적합한 지혜를 택해 내 삶에 녹여내야 한다. 자신이 비우는 스타일인지 채우는 스타일인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삶의 좌표를 설정하자. 제 아무리 사자라도 바다에서는 물에 빠진 생쥐일 뿐이고, 거대한 백상아리도 뭍에 올라오면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