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나 찾았어.”
“우와! 대단해.”
아내는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와서는 네 잎 클로버 6개를 꺼내놓았다. 첫째는 바로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않고 보통 잠시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그 짧은 동안에 네 잎 클로버가 마구 아내의 눈에 뛰어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작년 7월경부터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휴직하고 아내와 함께 첫째 아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직장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운행버스가 없다. 다른 이점이 있는 반면 출퇴근은 부모 몫이다. 처음에는 정말 운이 좋아야 네 잎 클로버를 찾을 수 있는 줄 알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들만의 방법이 생겼다. 일명 ‘툭튀’라고 부르는 우리의 접근법이다. ‘툭 튀어나온다’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잎들을 모두 보면서 네 잎을 찾았다. 이렇게 하니 에너지도 많이 쓰이고 눈도 아프고 머리도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관점을 바꿨다. 어차피 세 잎은 같으니까 마지막 한 잎에만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어느 순간 마지막 네 번째 잎이 돋보기로 비추듯 툭 튀어나와 보이는 게 아닌가. 이런 신기한 경험은 이제 어느 정도 뇌구조로 자리 잡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우리에겐 네 잎 클로버가 나태주 시인이 읊은 풀꽃과 같았다. 관심을 가진 지 일 년쯤 되어 가니까 클로버가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가끔씩 책 속에서 꽂혀있는 네 잎 클로버를 만날 때면 어찌나 귀엽고 반가운지 모른다.
자세히 관심을 갖고 봐야 보인다. 뭐라도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너무 무거워 주위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대상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을 보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결코 세상을 알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다. 이제는 주위에 관심을 갖고 잘 보고 싶다. 삶과 사람들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보고 싶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한다. 둘의 공통점은 뭘까? 수많은 세잎들 속에서 네 잎을 찾으려면 자세히 그리고 오래 봐야 한다. 자기를 내려놓고 클로버에게 마음을 주어야 한다. ‘빈 마음으로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기’,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비밀이 아닐까? 네 잎 클로버 자체보다 그 하나를 찾기 위해서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집중하는 아이 같은 순수함, 이 속에 이미 행운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