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남아있지 않은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지금은 역사가 된 가수 신해철은 내 삶을 많이 위로해주고 성찰하게 해 주었다. ‘민물장어의 꿈’이란 노래에서 한 단어, ‘자존심’이 내 마음에 걸렸다. 자존심은 무엇이고,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신해철은 왜 자존심이 성장의 좁은 문을 통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을까?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사전에서는 자존심을 이렇게 정의한다. 가만히 읽어보면 나쁜 말 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자존심을 보통 부정적인 맥락으로 사용한다. 고민을 하다 보니 문득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무인도에 홀로 사는 사람에게 자존심이 작동할 계기가 있을까? 잘은 몰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이 작동할 수는 있겠지만, 자존심이 필요할 상황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자존심은 그 바탕에 자기와 타인을 구분하고 비교하는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남과의 관계에서 지지 않고 자기 뜻을 내세워 우월한 위치에 서려는 마음이다.
자존심이 없는 마음은 어떤 느낌일까? 나를 힘들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지금까지 끌어다 썼던 다양한 이유들이 아니라, 그저 나의 자존심이 아닌가? 자존심 때문에 힘들다고 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이런저런 이유들을 꾸며 내었던 게 아닐까? 자존심 없는 마음에 다가가고 싶다. 자존심이 희미해질수록 감사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자존심은 어떤 마음의 구조에서 자랄 수 있을까? 자존심이 애초에 생기지 않을 수는 없을까? 우리는 보통 마음의 자세를 이기주의, 개인주의, 이타주의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눈다. 누가 이렇게 나누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이 구조에 입각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들어왔다. 이렇게 생각해본다. 마음을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는 구조에서는 자존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자 이제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자존심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자존심 자체가 아니라 자존심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관점을 문제 삼아야 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기주의, 개인주의, 이타주의를 제외하면 어떤가?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실패라는 말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의 사전에서도 나와 남을 분리하는 개체주의의 인생관인 이기주의, 개인주의, 이타주의라는 말을 없애 버리자. 대신 ‘존재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자.
“모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존재라는 관점”
나는 존재주의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나와 타인을 이기적이라거나 개인적이라고 평가하지 않고, 이타적이라고 칭찬하지도 말자. 우리는 그저 존재적일 뿐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