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
네이버 사전에서 자본주의를 검색한 내용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싫든 좋든 돈에 대해 말하고 듣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돈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자본주의의 정의 안에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 자본가뿐이다. 근로자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중심이다. 나는 이 점을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다. 궁금한 게 생겼다.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자본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까?
“돈은 피와 같다. 잘 흘러야 건강하다. 평소에 피에 대해 생각하지 않듯이, 돈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건강을 챙기듯이 돈이 잘 흐를 수 있도록 신경 써주는 게 중요하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간혹 돈에 대해 이야기하시곤 했다. 나는 돈 감각이 아주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돈이 주는 영향력에서 많이 자유로운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에 어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빠 이 책 읽어주세요.”
첫째 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책 한 권을 들고 나를 불렀다. ‘사자와 생쥐’였다. 사자는 생쥐를 무시하지만 결국 생쥐의 도움으로 사냥꾼의 그물에서 풀려나 목숨을 구하게 된다. 나는 시야가 무척 좁은 편이라 힘의 의미를 다양하게 보지 못한다. 항상 사자 같은 삶을 동경해왔고 생쥐의 강점이나 삶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가끔씩,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책에서 내 삶의 통찰을 얻곤 한다. 낭독을 하고 싶었지만 잘 안되던 것이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또한 동화 속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지혜가 가득하다. 예전에는 동화가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여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아이들을 키우며 읽어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그 반대다.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아주 리얼하게 보여준다. 동화 속에는 돈문제, 성공 문제, 인간관계 등의 핵심 지혜들이 아주 쉬운 말로 쓰여있다.
사자와 생쥐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다양한 힘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자는 육중한 몸과 날카로운 발톱이 있고, 생쥐는 가냘프지만 어디든 타고 오를 수 있는 기동력과 그물을 잘라낼 수 있는 튼튼한 이빨이 있다. 이 이야기의 메시지를 어렸을 때 이해했으면 분명 내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늘 나보다 여러모로 강하고 성공적인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과 비교하며 나에게 불만족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들을 닮고 싶어 했다. 결국 얻은 건 열등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각자의 길이 다를 뿐이라는 걸. 새들의 길은 하늘에 있고, 물고기의 길은 물속에 있을 뿐, 누구의 길이 더 나은 게 아님을, 나는 참 늦게 알게 되었다.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니 20위권 안에 돈을 주제로 한 책이 8권이나 된다. 내용까지 살핀다면 더 많은 책이 포함될 것이다. 돈이 화두인 시대다. 이런 시대에 돈은 우리의 자존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면서 마음이 든든하기는 어렵다. 마음이 불안하면 덩달아 자존감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것저것에서 돈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의 집단 무의식은 우리의 자존감을 조종한다.
자존감은 없는 게 아니라 단지 가려진 것뿐이다. 손에 쥐고도 보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자존감은 보지 못한 채, 돈이 흔들어대는 가짜 자존감을 쫓고 있었다. 이젠 깨달아야 한다. 눈빛을 저 멀리에 있는 신기루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진짜 자존감으로 돌려야 한다. 진짜 자존감은 돈과 전혀 상관이 없다. 돈이 많든 적든, 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알고 지켜야 한다. 진짜 자존감은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자각할 때 생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일상에서 돈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바라보자. 요즘 내가 하는 일을 보면 가끔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주식을 거래하는 정도다. 돌아보니 정말 돈으로 하는 일이 얼마 안 된다.
모든 걸 돈으로 바라보아선 안 된다. 예를 들면, 이 전기도 돈이고, 전등 빛도 돈이고, 집도 돈이고, 수돗물도 돈이고, 옷도 돈이고, 먹는 것도 돈이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이 몸도 돈이고 마음도 돈이라는 결론이 난다. 이건, 비극이다. 돈은 실제로 돈이 거래될 때만 돈으로 인식하자. 최소한 우리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자. 물질을, 나아가서 사람을 돈으로 인식하지 말자. 돈의 안경을 벗고 일상을 있는 그대로 접촉하자.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억압을 자각하고, 돈의 한계를 이해하고, 생명의 다양성과 전체성을 인식하고, 내 존재가 돈으로부터 독립적임을 분명히 보자.
사자와 생쥐는 힘의 세기가 동일하다. 다만 힘을 쓰는 기술이 다를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힘의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많은 비극들을 접할 수 있다. 이때도 우리는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일지라도, 힘의 모습이 다를 뿐임을 상기해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신의 기술을 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색깔로 이길 수 있다. 그 어떤 누구도 나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는 항상 나밖에 있을 수 없다. 한 자리에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똑같이 소중하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내가, 우리 모두가 자존감을 양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