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은 다짐할 필요도 없이 내가 하게 되는 것에 연결된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와 생각에서 떨어질 수 없다. 나를 정화하고 성장시키는 것도 잃어버릴 수 없다. 나를 공동체로 확장하는 것과 공동체를 통해 꿈을 실현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버무리면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와 생각을 통해 공동체로 쑥 들어가고 싶다. 공동체로 스며들어서는 그 구성원과 공동체가 스스로 안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나 계기를 만들고 싶다.
여기서 내가 상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공동체의 범위다. 사실 공동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개념일 뿐이다. 공동체를 위하기 위해서는 우선 피부로 느껴지는 진짜 공동체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소망이 헛소리나 현실도피가 아닌 진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를 위해서 첫걸음이 내가 공동체의 일원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지닌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내 소망의 실현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길러내기 위한 조그맣지만 확실한 씨앗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내 주위에서 내가 실제로 접촉하는 사람들이 내 소망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서 내가 핵심으로 꼽는 이가 한 명 있다. 바로 나의 아내다. 따라서 내가 공동체를 상정하기 이전에 원하는 것은 아내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내 소망을 이루며 나아가기 위한 실질적인 수행으로 삼을 것이다.
그럼 공동체에 대한 나의 소망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에게서 동력이 생산되는 근원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의 자기 정화에 대한 끊이지 않는 갈망이다. 나는 나를 정화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랜 경험 끝에 알게 되었다. 나의 정화를 바로 목적해서는 절대로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공동체의 정화와 상승을 위해 꿈틀거릴 때 비로소 조금씩 내가 벗겨지고 본질에 다가가는 걸 발견한다. 내가 나를 위하거나 공동체를 통해서 나를 위한다면 나의 자기 정화 프로젝트는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화라는 개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자기 정화라는 갈망은 내 이익과 무관하게 공동체의 상승을 꾀할 때만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각을 위한 물질적 터전과 거기서 생산되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을 통한 공동체로의 확장, 이것이 내가 가고 있는 미래다. 이것이 나의 철학이고 나 자신이다.
나는 문화적 존재다. 나는 글을 만든다. 내 글로 어떤 변화를 야기하고 싶은가?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가? 나는 글을 가지고 세계를 확장하고 상승시키는 일을 하기를 원한다.
나는 최종적으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한다. 나머지 모두는 이것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나는 왜 고유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가? 그래야 자비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하는가? 그것이 나를 더 자비로워지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왜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가? 그것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내 안에 살고 있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나는 주식투자를 한다. 예전에는 내가 사놓은 종목들의 등락을 매일 확인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 종목들은 거의 보지 않는다. 대신 시장을 본다. 나의 시선은 주가에서 시총으로 그리고 시장으로 넓어졌다. 시선이 넓어질수록 마음은 편해지고 눈은 맑아진다.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주식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돌아본다. 시선이 나 자신에게만 머물러있다면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세계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세계를 보는 것이 나를 찾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세계에서 살아왔고 어떤 세계를 꿈꾸고 있는가? 내 세계를 구성하는 굵직한 개념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일단 잡념과 본능에 해당하는 것들은 떨쳐버리자. 생각과 욕망에 해당하는 것들만 챙겨서 내 세계를 이해해보자. 책, 글, 몸 씀, 공동체, 진아, 자비, 인식전환, 교육, 일, 인식의 평등, 자족적 생활, 왜. 이것들이 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씨알 굵은 놈들이다. 이놈들이 바로 나다.
한편 내 안에 있는 세계뿐만 아니라 내 안으로 넣을 세계도 자세히 살펴야 한다. 내가 보는 순간 그것은 내 안의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경산, 대한민국, 남한, 미국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의 사이, 정치와 교육과 직업의 수준이 심각한 곳, 왜 보다 어떻게에 생각이 집중된 곳,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 손가락 끝에 세계로 통하는 길이 나있는 곳.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세계다. 이런 곳에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세계는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세계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다.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나를 살리는 길이다.
내 기질의 강점과 특이점은 무엇인가? 나는 이끄는 자나 만드는 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보는 자로 태어났다. 나는 왕이나 장군이 아니라 책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약하지만 더 잘 볼 수 있다. 나는 세계를 자세히 보고 문제를 낚아채서 해결하기 위해서 돌진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소명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어떻게’에서 ‘왜’로 건너갈 수 있도록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