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두 번째

기본학교 2주차 과제

나는 지금까지 소유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항상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삶에 대해 죽을 만큼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바꾸고 싶었지만 지적 게으름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제부터는 지적 수고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지금 여기서 시작해서 점점 그 영토를 확장해보고자 한다. 지적 수고를 중심으로 존재적인 삶, 사유하는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냥 고요함 대신에 지적인 고요함, 그냥 건강함 대신에 지적인 건강함, 그냥 부유함 대신에 지적인 부유함, 그냥 착함 대신에 지적인 착함, 그냥 강함 대신에 지적인 강함을 구축할 것이다.

여기서 지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이유가 나 자신에게 선명하다는 말이다. 왜 고요해야 하는지, 왜 건강해야 하는지, 왜 풍요로워야 하는지, 왜 착해야 하는지, 왜 강해야 하는지가 내 사유를 거쳐 분명하다는 뜻이다. 그 확신이 충분히 강해서 내 삶을 움직이는 경지를 말한다.


나를 안다는 건 무슨 뜻인가? 나는 나에 대한 나의 해석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떻게 해석하고 싶은가?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하지만 아무리 나를 살펴봐도 등불로 삼을 곳이 없다. 어찌할 것인가? 의지할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나는 유무의 개념에 갇혀있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없이 있음’이라는 개념을 만났다.

“없이 있는 것이 네 가지 있는데

여기서 무궁한 복이 나오네

없는 마음

없는 생각

없는 행동

없는 나라네.

이 네 가지 커다란 없이 있음으로

시대를 건너가는 배를 띄우세.”

나에게 없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미래의 나에게서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나, 의도하는 나, 꿈꾸고 탐험하는 나이다.

그럼 왜 없는 나인가? 없이 있을 때 나는 자유와 탁월과 자비와 공생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없이 있을 때 지적인 수고를 감내할 수 있고 꾸준히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과 애플은 모두 창업자의 없이 있음으로부터 탄생했다. 없이 있을 때 우리는 사유할 수 있고 없는 세계와 접촉할 수 있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다.


나는 ‘나에 의해서 일어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한다. 다른 말로 무위이무불위의 삶이다.

여기서 의지와 상관없다는 말은 내 의도나 방향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내 의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자꾸만 나를 끌어내리는 잡념과 본능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는 감각과 소유의 세계에서 질척거리지 않고 존재와 사유의 세계에서 날고 싶다.

지적인 수고는 어떤 모습인가? 왠지 지적인 수고다 하면 뭔가 내가 꽉 잡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반대다.

지적인 수고는 자연스러운 흐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만히 두면 의식의 흐름이 자꾸만 막힌다. 막히면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면 결국 하강한다. 자유와 탁월과는 먼 쪽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지적인 수고를 들여서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것이 ‘나에 의해서 일어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삶'이다. 자유와 탁월은 흐르는 삶이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지적인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나는 탁월한 나와 우리와 대한민국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 우선 생각하는 나, 생각하는 우리,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 생각하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선 착각을 수정해야 한다. 잡념이 생각이 아님을, 본능이 욕망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잡념과 본능은 일시적이고 충동적이고 그 안에 변화의 힘을 품고 있지 못하다. 반면 생각과 욕망은 전략적으로 판을 새롭게 짜려는 용기있는 자세다. 그것은 일시적이지 않고 꾸준하며, 충동적이지 않고 의도적이다.

용기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변화나 상승도 불가능하다. 잡념과 본능은 주어진 프레임을 의심하거나 넘어갈 용기가 부족한 상태다. 이에 대한 인식의 희미한 불꽃이 시작될 때 비로소 프레임 바깥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비로소 생각하고 욕망할 수 있는 용기의 씨앗을 얻게 된다.



나를 찾는 글인데 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F를 받았습니다. 나를 찾는 것이 고도로 지적인 작업임을 미쳐 몰랐습니다. 저는 언제쯤 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제 고질병인 지적인 게으름을 참회하고 부단히 지식을 쌓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