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로 추행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싸워야
김판호(가명)씨는 건설 현장의 유지보수 일을 한다. 높은 구조물 위에 올라타는 위험한 일을 하기도 하고, 그런 곳은 보안관리구역이라 다른 사람들은 출입할 수 없어 외로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퇴근 후에 그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자 시원한 소맥을 마시는 것이 잦았다. 집 근처 단골 술집이 있어, 주 2회 거의 규칙적으로 그 집에서 동료 1명과 둘이 술을 마시는 것이 그의 퇴근 후 일상이었다.
하루는 그 단골집에서 술을 마시다, 앉은 채로 뒤로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술을 주문하느라 ‘여기요’하면서 허리를 뒤로 돌려 종업원을 부르려 하였다. 앉은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는 식으로 몸을 돌리다 보니, 손은 지나가던 종업원의 엉덩이 부분에 닿게 되었다. 여종업원은 주문하려면 벨을 누르라고 하면서 항의를 하였고, 그 광경을 옆 테이블의 다른 아주머니도 보게 되었다. 그렇게 대충 술자리는 파하였다.
김판호는 주문상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후에도 계속해서 그 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그게 종업원의 마음에 걸리게 되었다. 지난번 불편한 일이 있었던 손님이(단골이어서 인적사항은 몰라도 누군지는 알고 있던 손님이었다) 계속해서 아무 일 없이 찾아오는 것이 불쾌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종업원은 사건 후 두 달가량이 지나서 김판호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다.
경찰조사를 받게 되자 김판호는 당황했다. 사실 술에 꽤 취해 정확히 기억하기도 어렵다. 지난주에 자신이 화요일 먹은 점심메뉴를 기억해 보라고 질문을 받으면, 일반적인 사람들도 잘 기억해 내지 못한다. 계속해서 가던 술집에서 두 달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종업원은 자신이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목격자 손님도 엉덩이에 손이 닿은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조사되어 있어, 상황은 유죄로 몰려가고 있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실제로 추행을 한 적은 없는데, 법적으로는 피해자의 진술이 있는 경우 가해자에게 불리하다고 하던데, 자백을 하고 선처를 구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김판호를 당황하게 한 것은, 본인이 의도한 바 없는 행동 때문에 유죄를 받게 되었는데, 성추행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신상정보 공개’를 같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유죄도 유죄지만 이것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갈등하는 김판호와 함께 논의하다, 진실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증인신문을 적극적으로 하기로 했다. 통상, 피해자 여성을 법정에서 증인신문을 하는 것은 피해상황이 더 구체적으로 법정에 드러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김판호가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법정에 드러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또, 김판호가 종업원의 엉덩이를 만지는 행동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도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재판에서는 목격자와의 증인신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는 변호인 석에서 일어서 증인석 옆으로 가서, 앉아 있는 증인이 김판호라고 생각하고, 그 옆 통로 쪽을 지나가고 있는 내가 피해자라고 가정하고 김판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손으로 엉덩이를 만졌는지 재현해 보라고 주문했다. 내 엉덩이를 만져도 된다고 말했다. 목격자분은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뒤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우연히 엉덩이 부분에 손이 접촉되는 상황이 됨이 재현되었다. CCTV도 없던 상황에서, CCTV가 피고인 김판호를 위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재판장도 목격자의 재현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중간중간 질문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결과를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무죄로 나왔다. 수사기관이 적어놓은 조서의 문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증인신문과정에서의 재현과 적극적인 질문 때문에 억울함을 벗어날 수 있었던 사례다.
강제추행 사건은 피해자중심주의 수사지침에 따라 만약 억울한 사례가 있는 경우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당신이 억울하다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워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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