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화제성을 불러 모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세계적인 아이돌로 거듭난 블랙핑크의 후광을 등에 업고 야심차게 발매한 데뷔곡 <Batter Up>은 채 3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1억 뷰를 돌파하였다는 화제성 외에는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화제성에 비해 음원 차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였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평론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지금, 베이비몬스터는 멤버 아현의 합류 소식과 함께 과거의 데뷔 사실을 번복하며 새로이 데뷔 앨범 발매 소식을 전하였다. 졸지에 프리 데뷔 싱글이 된 <Batter Up>과 두 달 전 먼저 공개한 <Stuck In The Middle>의 아현 합류 후 재녹음 버전이 수록된 앨범으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베이비몬스터의 '올라운더'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 포부만큼이나 프로듀서진도 화려하다. YG를 대표하던 프로듀서였던 더 블랙 레이블의 수장 테디가 불참하였지만 CHOICE37, DEE.P, BIGTONE 같은 베테랑들과 트레저의 리더이자 앨범 제작 참여의 폭을 넓히고 있는 최현석, 첫 번째 곡이었던 <BATTER UP>의 작사가로 참여한 악뮤 이찬혁, 그리고 유명 싱어송라이터 찰리 푸스가 멤버 아현과의 인연으로 참여하였으며, 이를 YG의 총괄 프로듀서인 양현석 PD가 직접 작곡과 편곡에 참여하며 진두지휘하였다.
하지만 앨범 제목을 팀의 이름을 내건 셀프 타이틀로 정하면서 드러냈던 강한 포부는 그저 허상이었던 걸까? 막상 공개된 베이비몬스터의 데뷔 앨범은 기시감 투성이일 뿐이다. 베이비몬스터라는 팀의 뚜렷한 정체성은 보이지 않고 단지 오래 접하여 익숙한 YG식 스웨그만 넘칠 뿐인 인트로 <MONSTERS>도 그렇거니와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다크 컨셉을 소화했다는 타이틀 <SHEESH> 또한 블랙핑크의 마이너 카피 혹은 차마 앨범에 실리지 못한 B 사이드 트랙을 고쳐서 낸듯한 인상으로 가득하다.
뻔한 가사와 더불어 이어웜을 기대하고 삽입하였지만 되레 피로감과 거부감만을 유발하는 훅 'Sheesh', 그리고 두 번째 벌스부터 시작되는 랩과 급격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브릿지와 탑라인의 흐름을 전환하고 유니즌까지 동원하며 호응을 유발하는 아웃트로까지, 새로운 아이돌 그룹에게 기대할 만한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은 물론이거니와 신곡의 신선함조차 없이 기시감으로만 가득하다 보니 되레 데뷔 서바이벌로 증명된 일곱 멤버들의 역량만 낭비시키는 듯하다.
특히 혹평을 면치 못하였던 데뷔곡 <BATTER UP>과 그 구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연 데뷔곡의 공개와 아현의 합류까지 약 4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개선 없이 과거의 영광만 되풀이할 뿐이다 보니 베이비몬스터를 위해 새로이 프로듀서진을 4~5배 늘렸다는 양현석 PD의 자신감 넘치던 코멘트 역시 무색해진다.
블랙핑크의 <Stay>가 그랬듯이 어쿠스틱 연주로 곡을 이끌며 멤버들의 보컬이 어우러지다가 브릿지를 기점으로 감정이 폭발하는 선공개곡 <Stuck In The Middle>과 서바이벌 프로그램 선공개 후 약 1년 만에 정식으로 발매된 <DREAM> 역시 멤버들의 역량에만 기댈 뿐 사운드 측면에 있어서는 결코 새롭지 않다. 흔한 댄스 팝 타입으로 편곡한 <Stuck In The Middle>의 리믹스 버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체적으로 기시감투성이인 앨범 속에서도 유독 빛나는 곡이 있다는 점이다. 싱어송라이터 찰리 푸스가 선물한 곡으로, 미니멀한 구성에 다소 힘을 뺀듯한 전개로 비로소 베이비몬스터의 진가를 발휘하는 3번 트랙 <LIKE THAT>만큼은 다른 이들에게도 청취를 추천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이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기에 그 이상으로 암담하다. 지난 <Stuck In The Middle> 싱글 리뷰 당시 다음으로 내놓는 결과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는데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아이돌 그룹 구성원의 문제가 아니라 애매한 프로덕션의 방향과 이전에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번에도 잘 되리라는 안일함이 낳은 결과이다.
이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 막대한 자본과 선배 아이돌 그룹의 후광에 기댈 수 있는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일지라도 정체성 없는 과거의 반복만으로는 지금의 케이팝 생태계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케이팝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소속사 선배 아이돌 그룹들처럼 올가을에 예정된 베이비몬스터의 신보에는 부디 지금과는 다른 베이비몬스터만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By Latte (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