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처음 보는 아트 컬렉팅> 리뷰
<처음 만나는 아트 컬렉팅>은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두 번째로 만나보는 이소영 작가의 책이다. 작가이자 미술 교육인인 이소영의 또 다른 면모는 아트 컬렉터로서의 모습이다.(그리고 사실상 이 세 면모는 이어져 있다) 저자는 1년에 200회의 전시를 관람하고, 15년간 200여 점의 작품을 수집한 아트 컬렉터로서 자기 지식과 경험을 정리해 초보 아트 컬렉터를 위한 책을 펴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두고 ‘결코 쓰고 싶지 않았던’ 책이라고 언급한다. ‘아트 컬렉팅’은 어쩔 수 없이 돈을 소비해야 하는 취미이다 보니 예민한 부분이 많고, 미술시장은 복잡하고 다양해 늘 변화하기 때문에 글로 정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p. 13)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 미술시장과 아트 컬렉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아트 컬렉팅에 건강하고 즐겁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본 도서는 저자가 직접 10년 넘게 운영한 미술 블로그와 3년간 운영한 미술 유튜브를 통해 받은 다양한 질문들을 추려내 그 응답을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질문을 거친다면 미술시장을 잘 이해하고, 초보 컬렉터에서 중급 컬렉터로 도약할 수 있겠다 싶은 질문들을 뽑았다’고 하니, 책을 잘 따라가다 보면 아트 컬렉팅을 시작해 보지 않은 사람도 미술시장과 미술품 수집에 대해 유효하고 실용적인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미술품의 세금 혜택 등으로 인해 요즈음 아트 테크 내지는 아트 재테크의 인기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저자 역시 아트 테크에 대한 강의 문의가 늘어난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강의 요청에 ‘아트 컬렉팅’이란 강의명으로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한다. 아트 테크와 아트 컬렉팅은 다르고, 그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사서 소장하는 것까지는 수집을 의미하기에 ‘아트 컬렉팅’이 맞다. 반면 미술품을 산 후 소장하고 있다가 리세일(되팔기)로 수익을 내면 재테크가 된다. ‘아트 재테크’는 리세일로 반드시 현금화가 되어야 재테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트 컬렉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값이 올랐다는 작품들을 팔지 않고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p. 67)
아트 테크가 미술품을 매개로 한 재테크라면, 아트 컬렉팅은 일반 재테크처럼 금전적인 측면의 투자 의도도 있지만 다른 수집 의도를 수반한다. 아트 테크와 아트 컬렉팅의 차이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아트 컬렉팅의 ‘심리적 재테크’ 측면이다. 다소 아리송한 말이지만 풀어서 쓰자면 다음과 같다. 미술작품은 주식 투자와 달리 작품 자체가 심미성을 가진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가진 작품을 자신의 공간에 두고 보는 만족감 등이 미술품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도 아닐뿐더러, 실제로 미술품을 리세일한다 하더라도 미술품은 환금성이 낮다. 신진작가의 경우 리세일을 할 수 있는 2차 시장이 아직 잘 마련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미술품은 팔고 싶다고 바로 팔리고 현금화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저자는 아트 컬렉팅을 하려면 미술품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술품을 산다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든, 작품의 주제가 주는 울림이든 간에 ‘가치’를 함께 사는 일이며,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잘 구입하여 잘 보존하는 것까지가 아트 컬렉팅의 과정이다. 따라서 저자는 아트 컬렉팅을 할 때는 다음의 질문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과연 아무도 사지 않는 작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용기 있게 그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가?’ (p. 49)
그러하면 아트 컬렉팅의 대상은 무엇일까. 우선 미술이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회화가 있겠다. 회화는 유화, 수채화, 아크릴, 과슈 등 재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회화 작품은 세상에 단 한 점이라는 의미로 ‘유니크 피스’라고 불린다. 이는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기에 ‘원화’에 해당한다. 한편 복수성이 그 매체의 특징인 판화는 초보 컬렉터들이 컬렉팅 입문으로 많이 도전하는 미술 장르다. 원화보다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고 작품이 단 한 점 있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접근이 쉬운 편이다. 다만 판화는 컬렉팅하면 할수록 공부가 필요하다. 오리지널 판화와 복제 판화, 리프로덕션의 차이도 중요하고 넘버링과 그 외 판화 특유의 표기가 다소 생소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책에서 판화를 다룬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판화라는 장르에서는 세심한 개념 구분이 필수이다. 그 외에도 아트 토이, 아트 포스터,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을 수집하고 소장할 수 있다.
이제 수집의 대상을 알았으니 미술품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작가에게서 직접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미술계 역시 미술시장이 성립되어 있다. 책의 2부는 이 미술시장에 대해 다룬다. 미술시장은 작가와 컬렉터 사이를 이어주는 존재들이다.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와 전시 기획을 하는 갤러리(마더갤러리, 대관전시갤러리), 아트 페어, 대안 공간이 1차 시장으로 분류되고 미술품 유통만을 하는 위탁갤러리, 옥션(오프라인, 온라인), 개인 거래, 아트 딜러는 2차 시장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갤러리(상업 화랑)는 크게 두 가지 성격이 있다. 1차 시장인 전시 기획 화랑과 2차 시장인 유통 화랑이라고 구분하면 이해가 쉽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갤러리와 미술관을 다른 개념으로 사용한다. 미술품 판매 목적이 아니라 전시, 보존, 연구 목적이 있는 국공립 및 기업 미술관은 작품 판매가 중요 사업인 갤러리와 다르다.
그런데 갤러리의 역할은 작품 판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작가를 찾아서 홍보하고, 전시하고, 성장시키고 컬렉터들이 잘 구입할 수 있도록 중간에 매개를 해주는’ 것이 바로 갤러리의 역할이다. 따라서 좋은 갤러리는 작가를 캐시 카우로 치부하지 않고, 작품 판매에 있어서도 작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작가의 미래를 위해 많은 계획을 세운다. 갤러리의 역할이 다양하고 큰 만큼 작품이 팔리면 작가와 갤러리가 50 대 50의 수익을 나눠 가진다.
아트 페어는 아직 다양한 갤러리들 사이에서 자신과 맞는 갤러리를 찾기 힘든 초보 컬렉터들에게 미술품과의 좋은 만남의 장이 되어준다. 아트 페어란 미술품 판매를 목적으로 모인 수많은 갤러리들의 한시적 백화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 장소에서 100~200개 갤러리의 수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아트 페어는 공간이 넓고 복잡하니 입구에서 지도를 챙기는 것이 필수다.
옥션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경매이다. 코로나 19 이후 온라인 경매 시장도 커졌다. 경매는 현장성과 오락성이 강한데, 낙찰가가 바로 시장의 가격은 아님을 아는 것과 비딩을 하다 과열되어 예산을 초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옥션에도 프리뷰 전시가 있어 경매 전에 직접 예술품을 보고 작품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어떤 작품을 얼마 정도 예산으로 도전해 볼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이외에도 요즈음 다양한 대안 공간이 생겨나 작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또한 컬렉터 간의 개인 거래도 존재하며 아트 딜러를 통해 작품을 찾고 매입할 수도 있다.
미술품을 사고 파는 루트를 알았다고 해서 컬렉팅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무엇을 모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좋은 컬렉팅에는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안목이 높은 컬렉터 본인 역시 필요하다.
생각보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있다. 사는 게 바빠 자기 감정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면 더 그럴 것이다. 초보 컬렉터라면 투자 가치가 유망한 미술품,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라는 주변의 의견에 떠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컬렉션이야말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의 방식이자 취미 중 하나’로, ‘자신의 취향을 믿고, 결정해야 한다.’(p. 211)
게다가 작품을 사면 최소 5~10년은 보기 때문에 남의 취향이나 안목으로 고른 것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야 한다. 그러나 취향도 안목도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시각적인 매체이니만큼 많이 볼수록 취향이 가려지고 안목도 자란다. 그렇다. 그 무엇보다 전시를 많이 볼수록 좋다. 많은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의 심미안에 맞는 작품을 계속 가려보자. 취향이 반복되고 깊어지면 자신의 컬렉팅 테마가 되기도 한다.(p. 217)
한편 작품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의 종류도 참 다양한데, 나는 이소영 작가가 말한 ‘추함의 미학’이 인상 깊었다.
추도 미에 포함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해보라. 추함을 받아주는 건 예술이 유일하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추함을 수용하지 않지만, 오직 예술은 추함을 수용한다. 인테리어나 디자인은 예쁘거나 기능성이 있어야 하지만 미술 자체는 추를 허용한다는 뜻이다. (p. 215)
확실히 추함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는 분야는 예술뿐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 난감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에 주목해보라고 말한다. 눈에 익숙한 예쁨이나 귀여움, 멋있음은 이미 과거의 미학인 경우가 많고, 우리에게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끌어내는 작품이야말로 새로운 미학을 품은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소 5년에서 10년을 두고 보는 컬렉팅 대상으로서 후자의 작품이 더 흥미롭고 희소하며, 곁에 둘 즐거움이 크지 않을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작품을 봤을 때 난감한 기분이 든다면, 되려 그 작품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작품이 예쁘다, 귀엽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감정이면 과거의 미학인 경우가 많다. 반면 도대체 무슨 느낌인지 아리송하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을 작품일수록 새로운 미학일 때가 많다. (...) 미술품을 다 이해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보자마자 오묘한 감정이 들고, 아무리 봐도 이해가 잘 안 된다면 그 작품에 눈길을 더 오래 머물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세상에 없던 미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pp. 223-224)
초보 컬렉터에게 걸맞은 첫 컬렉팅 예산 규모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산의 성격은 비슷하다. 이를테면 향후 5년간은 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 자금이자, 없어도 일상에 큰 지장이 없는 돈이다.(p. 226) 이 두 가지를 감안하여 각자에게 맞는 예산안을 짜면 된다.
아트 컬렉팅 입문자에게 또 한 가지 어려운 것은 미술 관련 정보와 지식을 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길 권한다. 이외에 미술·전시 관련 유튜브 시청과 미술관 및 갤러리의 뉴스레터 구독, 미술 플랫폼의 칼럼 읽기 등의 방법이 있다. 또 하나,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하지만 하는 만큼 감각과 안목이 세련되어질 방법은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현대미술을 공부하기’이다. 인상 깊게 본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누구인지 확인한 후 그가 기획한 다른 전시 또한 공부하고, 그가 팔로우한 미술계 인사들은 누가 있는지를 눈여겨보자. 큐레이터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수준 높은 공부가 될 것은 자명하다.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출품 작품들을 주시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책의 마지막 4부는 독보적이고 지속적인 아트 컬렉팅을 위한 실용적인 제언들이 들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트 컬렉션은 컬렉터들의 ‘정신적 지도’이자 세계관’이며 ‘아트 컬렉팅도 결국 수집이기 때문에 격과 질로 나눌 수 있다.’(p. 332) 그러므로 컬렉션을 유의미하고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테마가 있을수록 좋다고 한다. 컬렉션의 테마를 만드는 방법 중에는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모으거나 장르를 통일해 수집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호세 무그라비는 앤디 워홀의 작품만 800여 점을 소장했고, 이제는 사람들이 앤디 워홀 하면 워홀의 빅 컬렉터인 호세 무그라비를 떠올릴 정도이다. 한국의 조재진 컬렉터의 경우 한국 민중미술 작품을 200점 넘게 모아 민중미술 소장품으로 전시를 열기도 했다.
물론 처음부터 어떤 장르, 어떤 작가의 작품을 모으겠다는 결심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컬렉팅을 하다 관심이 다른 장르로 옮겨가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초반에는 다양한 작품을 모으다가 어느 기점부터 테마가 컬렉션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점차 선호하는 주제가 생기고, 해당 컬렉션을 하면서 계속 공부를 하게 되므로 전문성이 높아지고, 꾸준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그 테마 안에서 소장품이 연결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신진작가나 훗날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이 있더라도 테마 안에서 가치가 유지된다. (p. 334)
마지막 문장의 내용이 특히 마음에 든다. 이것이 컬렉팅의 힘이자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뭔가의 모음이 아니라 내가 애써 구한 대상들이 저마다 연결되며 서로를 빛나게 해주고 든든하게 엮이는 것. 기록으로 뭔가를 모으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부분이 책에서 제일 감명 깊었다.
한편 좋아하면 모으고, 모으면 당연히 늘어나기 때문에 점점 벽이나 방에 작품을 놓을 공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 작품이 이 정도로 늘어나면 저자는 이제 아트 컬렉팅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라고 말한다. 작품의 양이 방대해지면 단순히 공간만의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내게 어떤 작품이 있는지, 그것들이 서로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파악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래서 ‘나의 아트 컬렉션이 어떠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내가 소장한 작품의 시대와 분류를 퍼센테이지화 해서 생각하는 사고의 시간’이 필요하다.(p. 347) 작품을 살 때부터 엑셀 파일에 작품의 가격, 구매 이유, 배송료, 갤러리의 담당자가 누구인지 등 소장품 관련 기록을 자세히 메모해놓는 것도 매우 좋은 습관이다. 아트 컬렉팅 포트폴리오를 잘 정리하며 예술성, 완성도, 희소성의 가치를 이룩한다면 뛰어난 컬렉션이 될 것이다. 뛰어난 컬렉션은 자신만의 고유성을 구현한다.
4부의 후반부는 아트 컬렉팅에 대한 보다 실용적인 정보들이 모여 있다. 예를 들어 작품의 보관법, 액자 하는 법, 작품 파손을 복구하는 법 등이 작가의 실제 사례와 함께 세세하게 나와 있다. 작품 구매 후 컬렉터가 보관해야 할 문서의 종류는 무엇인지, 소장품을 전시에 대여해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과정과 필요한 서류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소장품을 기증하고 싶을 때 그 방법까지 모두 책에 정리되어 있다. 이는 초급 컬렉터는 물론 중급 컬렉터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보인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마지막 충고를 잊지 않는다. 책에서 4단계로 나눈 아트 컬렉팅에 대한 소개가 진행되는 동안 저자는 자기 취향을 만들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데, 에필로그에서는 취향이 곧 안목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즉, 취향을 찾게 되면 그 취향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고풍스러운 화풍의 그림을 좋아해 그런 그림만 주의 깊게 보고 다닌다면 다른 매체, 다른 미학을 가졌으나 내게 맞는 작품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언제든지 자신이 ‘이런 작품을 좋아할 수 있다니’라며 미처 발견되지 않은 자아를 만날 준비를 해 보면 어떨까.
우리 집은 책이 무척 많기 때문에 벽에 장식을 걸지 않는 편이다.(액자를 맞춘 좋은 글귀를 걸어놓긴 했다) 이미 집 안의 여러 벽면 앞에 책꽂이가 놓여 있고, 색색의 책등으로 집이 꽉 찬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내 방에도 감명 깊게 본 영화의 포스터가 문에 붙어 있는 것 빼고는 벽면에 장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가구가 적게 놓인 가상의 방을 상상하며 어떤 그림을 벽에 걸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책에 나온 다른 컬렉터의 사례처럼 나만의 수장고나 뷰잉 룸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상상하니 비로소 방이 도화지처럼 보이기도 했고, 다채로운 작품을 거는 즐거움이 예상되기도 했다. 나는 종교적인 도상을 현대적이고 키치하게 풀어낸 작품이나 색상의 아름다움을 유려하게 뽐내는 작품을 집에 놓아보고 싶다. 그러려면 적절한 예산과 깔끔히 정리된 공간이 선행되어야겠지만. 그래도 아트 컬렉팅의 대상이 값비싼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멀게 느낄 필요도 없을 듯하다. 예를 들면, 이 책에 소개된 을지 아트 페어(미술품을 균일가 10만 원에 판매하는 컨셉으로 유명하다)를 방문해서 작품들 사이를 거닐어도 풍요로운 재미가 있을 것이다.
내 공간이 도화지처럼 보이는 경험은 아마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일 테다. 내가 고른 미술품들이 있는 공간에서 아침잠을 깨고, 작품 주변을 걷고, 작품 근처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기분이 궁금하다. 삶을 예술로 물들인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삶의 일부를 예술로 만드는 창작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우선 창작의 괴로움이 바로 내 것이 아니니…) 내게 아트 컬렉팅이 단숨에 실행될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런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에 나온 미술 플랫폼들, 갤러리 및 미술관의 계정들, 뉴스레터 정보 등이 매우 알차서 이것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보람이 톡톡할 것 같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예매해 둔 전시를 더 주의 깊고 즐겁게 관람하는 것으로 내 취향과 안목을 더 성장시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