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리뷰
제인 오스틴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작가님이 남기신 작품을 몇 세기 뒤에 읽게 되는 미래의 독자랍니다. 작가님의 ‘아끼는 자식’들 중에는 <오만과 편견>을 가장 좋아하는 독자이기도 해요. 특히 다아시가 엘리자베스 베넷을 보며 신체의 균형을 깨는 부분을 두 군데 정도 찾았으나 그럼에도 자꾸 눈길이 간다는 식으로 그의 관심이 묘사된 부분을 재밌어해요. 작가님 특유의 섬세함, 약간의 능청스러움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제 관심을 작가님의 작품으로 이끕니다.
사실 작가님에 대한 관심은 작가님의 작품 그 자체보다도 작가님을 포함한 서구 여성 작가들을 다룬 아주 두꺼운 책에서 비롯되었어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강렬한 제목의 책인데 작가님도 읽어보셨다면 몹시 흥미로워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는 가부장적 위계의 문학계 안에서 자신만의 집필 전략을 만들어가며 작가 생활을 한 여러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작가님과 작가님 작품의 전략은 거의 초반에 나와요.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을 작은 상아 조각에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비유했으나 작가님의 작품은 200년 넘게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그 사랑의 크기는 매우 거대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작가님을 한 명의 작가이자 누군가의 사랑받는 가족, 친애하는 친구, 저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간 한 명의 여성으로서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저는 그 기회를 잡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 기회란 19세기에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보낸 당신의 편지 70여 통을 묶은 책을 발견한 것이었죠.
저는 이 책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퍼넬러피 휴스핼릿 저, 공민희 역)라는 책에서 작가님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것 같아 기뻐요. 비록 바다 건너의 독자인지라 번역을 거치긴 했지만 여러 번의 퇴고로 정제된 소설과는 또 다른 텍스트, 어쩌면 작가님의 손맛이 더 생생하고 날것으로 드러나는 편지라는 텍스트에서 작가님의 말투를 알게 된 것이 우선 하나의 큰 수확이지요. 그리고 작가님의 자매애를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저 또한 자매가 있기 때문인지 가족의 대소사로부터 길가에서 본 거즈의 가격과 품질을 얘기하는 일처럼 일상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공유하는 부분에서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곤 했습니다.
기쁘거나 신기하거나 좋은 것을 볼 때 내 자매도 여기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혹은 내가 일상 속에서 유심히 본 것을 같이 알고 싶은 마음을 저도 잘 알고 있거든요. 시시콜콜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 정도의 마음에서 기억에 입력해두고 펜이 움직인 게 아니란 것을 알아요. ‘쓰려는 마음’은 강력한 것이니까요. 팔 남매 중 일곱째인 작가님께서 유일한 자매 커샌드라 언니와 가장 많이 편지를 주고받은 마음과 같은 갈래에서 나온 것이지요. 애정어린 관심이요.
작가님의 가족 관계 구성도 이번 기회에 처음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 가계도와 인물 소개가 자세히 나와 있어 이해가 쉬웠어요. 그리고 역마차, 사륜마차, 당나귀 등 19세기 영국의 탈 것에 대해, 사교계와 무도회의 분위기에 대해 언급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책에 이런 것들에 대한 삽화가 많이 들어 있어 작가님이 살던 시대의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시대가 장단점이 있지만 자기가 편하게 타고 가고 싶은 탈 것을 마음대로 탈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답답해 보였어요. 특정 마차는 여성 혼자서 타기 적절치 않다는 사회 분위기 같은 것 말이에요.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면 세상 이곳저곳을 궁금해하는 작가의 영혼이 어떻게 버텼을지 상상조차 잘 되지 않아 제가 다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작가님 생전에 주거지를 여러 번 옮긴 경험이 세상에 대해 목마른 작가의 호기심에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물론 작가님의 편지에는 새로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일의 까다로움, 눈에 차지 않는 집 후보들을 보는 괴로움 등이 녹아 있고 스티븐턴에서 바스로 떠날 때의 마뜩잖은 감정도 드러나 있지만 말이에요. 바스라는 도시에서의 생활보다는 시골 생활을 더 좋아하던 작가님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사우스샘프턴에서는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하셨잖아요. 그래도 초턴에서는 집필의 황금기를 맞으셨고요. 좋든 싫든 다른 지역의 삶을 경험하신 것과 사우스샘프턴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며 맞은 손님들 같은 새로운 경험이 초턴에서의 문학적 황금기를 맞이하게 도운 것은 아닐지 혼자 짐작해보곤 합니다. 예전에 친구가 제게 한 말이 떠올라서요. 작가면 모든 경험이 소재가 되지 않느냐고요.
저는 작품 이야기가 많은 초턴에서의 편지들이 제일 흥미로워요. 개인으로서의 ‘제인 오스틴’에게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역시 근본적인 관심은 ‘작가로서의 제인 오스틴’에 있는 모양이에요. 조카 애나가 보내온 소설에 피드백을 해주시는 편지들을 저 또한 유의 깊게 읽었는데요. 인물 행동의 일관성, 인물 심리의 개연성을 지적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실제로 작가님 작품의 인물들은 그 탄탄한 독특함 때문에 오래오래 사랑을 받는 것 같아서요.
이건 잠시 사우스샘프턴에서 보낸 편지의 일부지만 저는 작가님의 작업과 관련한 이 부분도 정말 좋아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그 부분을 인용해도 될까요?
하지만 패니의 안목 있는 비평에 노출되어 내 문체가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고독을 아주 많이 즐겨야 하거든. 이미 전보다 더 단어와 문장에 비중을 두고 감상, 삽화, 모든 은유를 살피고 있어. 저장 창고에 내리는 비처럼 아이디어가 빠르게 샘솟을 수 있다면 참으로 근사할 텐데. -1809년 1월 24일의 편지 중에서
작가님의 편지에서 작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부분에 시선을 오래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는 김에 또 한 부분을 인용하고 싶어요.
작업물은 아주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 그래서 그늘이 필요해. 여기저기 더 긴 챕터로 늘려야 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럴 수 없다면 침통하고 허울 뿐인 헛소리가 되겠지. 이야기와 결합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야 해. 글 속 에세이나 월터 스콧에 대한 비평 혹은 보나파르트의 역사 혹은 뭐든 대조를 이룰 수 있는 걸로. 그래서 독자들에게 흥겨움과 일반적인 풍자의 즐거움을 같이 알려 줘야 하니까. - 1813년 2월 4일의 편지 중에서
작품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고가 보여서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았어요. 작품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 애정과 노고를 받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누군가의 창작물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에는 결국 누군가에게 잔뜩 사랑받은 무언가를 나도 내밀하게 볼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랑에는 힘이 있어요….
잔뜩 사랑받은, 이라고 하니 작가님이 생전에 누구보다 아낀 조카 패니 나이트 양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작가님의 애정이 담긴 편지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참 신기하게도 패니 양을 만난 적 없는 저까지 그녀를 아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네 몸무게만큼의 금화 혹은 새로 나온 은화만큼 특별’하다는 표현이라니요. 이런 표현은 도대체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걸까요. 전 이 편지에서 패니 양에 대한 작가님의 사랑이 비치는 곳곳에 밑줄을 쳐두었어요. 역시 사람은 사랑을 받을수록 반짝이는 걸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프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내가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사랑 한 점으로 더 빛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 가서도 더 예쁨 받을 수 있도록, 이왕이면 걷는 걸음 하나 더 수월할 수 있도록…. 내가 그런 식으로도 도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아끼고 아끼다 보면 이런 마음까지 드나 봐요. 작가님의 사랑도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지 멋대로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더 사랑한다 함은 결국 더 표현하겠다는 결심이겠죠.
이외에도 참 할 얘기가 많아요. 작가님이 갖고 계신 단호한 결혼관이라던지-‘사랑 없이 한 사람에게 속박되고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은 어디에도 없어.’(1814년 11월 30일의 편지 中)- 작가님 사후에 작가님이 가장 아끼던 형제 커샌드라 언니가 패니에게 쓴 두 통의 편지 같은 얘기요. 하지만 이번 기회에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 번 더 작가님의 편지가 엮인 이 책을 음미하며 읽어보고 싶거든요. 못다한 이야기에 대해선 두 번째 편지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가족과 지인을 향한 작가님의 애정을 보며 저 또한 제가 사랑하는 사람, 제가 만들고 있는 중인 작품에 어제보다 더 애정을 부어주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참 얼마나 멋진 편지이고 글인지요. 부디 작가님을 향한 독자들의 사랑도 고스란히 느끼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편지를 마치며 존경을 담아 보냅니다.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