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 기타 리사이틀 리뷰
매년 새로운 레퍼토리를 대중에 소개하며 독보적 작곡 및 연주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클래식기타리스트 최인의 독주회가 오는 6월 24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다.
‘From here to everywhere…’라는 부제로 열리는 이번 음악회에서 최인은 2023년, 혼란과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예술가로서의 깊은 고민과 성찰,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무대에 올린다.
모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기타리스트 네 명으로 구성된 무대를 본 적이 있다. 베이스, 드럼, 건반 없이 정말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기타 네 대와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하는 연주는 매력이 흘러넘쳤다. 그 무대를 본 이후로 기타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타만으로 된 공연도 꼭 한번 가보자고 동생과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당시 본 무대의 악기 구성은 프로그램의 규칙에 따라 개인 출연자들이 자유롭게 팀을 짜다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기타만으로 된 공연’을 볼 기회가 요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시간이 지나며 그 약속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기타만으로 된 공연에는 당연히 기타 독주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접하기 쉬울 터였다. 6월 말의 열기 있는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 클래식 기타리스트 최인의 리사이틀이 열린다는 소식을 보고 나서야 기타를 오롯이 체험-감각-할 수 있는 시간에 기타 독주회도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리사이틀은 기타리스트 최인이 직접 작곡한 여덟 곡을 선보였다. 연주회는 1부와 2부로 나뉘었다. 리사이틀 소개에 따르자면 ‘1부의 구성은 자연을 통한 삶의 은유들로 우리의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이다. 2부에서는 방황하고 흔들리는 시대적 혼란에 맞서 양심을 가지고 차차 소망을 품어가는 이야기이다. 변화의 시작이 내 안에서 또 여기서부터라는 메시지로 음악회를 마무리한다.’ 특히 첫 곡 [숲]과 마지막 곡 [From here to everywhere]은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정진희와의 협주로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클래식 기타와 바이올린의 듀엣이 낯설고 새로웠지만 사실 클래식 기타와 바이올린의 듀엣은 이미 ‘파가니니, 피아졸라, 등과 같이 유명한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들이 있고, 수많은 음악가와 음악애호가들에게 널리 사랑받는다’고 하니 전통이 있는 조합인 것이다. 바이올린이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따금 그 안에서 날카로운 긴장의 감각을 일깨웠다면 기타는 바이올린과 함께일 때 다른 강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초반에 바이올린 연주를 뒷받침해주는 듯하다가 어느새 감상자의 마음에 기타의 낭만적인 멋을 쑥 들여놓은 것이다. 두 악기의 다른 면이 서로의 장점을 새삼 도드라지게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 날의 연주에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곡이 연주되기 전에 이 리사이틀의 주인공인 기타리스트 최인은 그 곡을 짓게 된 배경이나 곡에 담긴 주된 심상을 설명해 주었다. 그의 창작 동기는 주로 어떤 경험에 대한 소회에서 비롯되었는데, 특히 자연 속에서 직접 받은 이미지나 감상이 작곡의 시작점으로서 자주 언급되었다. [숲]의 경우 숲속에서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느끼다가 ‘자신의 자리에서 아름답게 서 계신 분들이 많다면 푸른 숲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만들어진 곡이라 한다. 한편 창작의 계기가 된 경험을 하기 전까지 갖고 있었던 편견에 대해 감추지 않고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1부의 후반부를 맡은 [서]와 [수풍석]의 경우 서양 악기인 기타로 한국, 동양의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구현하는 시도가 보였다. 서예를 의미하는 [서]에서는 붓의 성격과 필법, 호흡 등을 다양한 기타주법으로 표현하였고 선비의 기개를 나타냈다. [석풍수]는 재일동포 건축가 고 유동룡(이타미 준)이 제주에 지은 석풍수 미술관(혹은 수풍석 미술관) 건축물을 기타리스트 최인이 경험하며 느낀 심상과 상징들, 동양적 아이디어들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선입견에 대한 성찰, 우리 것을 돌아보며 체험하는 마음가짐 등은 그의 곡이 하나의 이미지에서 발아하여 곡 자체의 형태를 갖추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을 맡고 있는 듯하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그의 성찰 과정에서 흘러간 감정, 생각 등이 곡의 전체적인 형상을 빚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점이 잘 느껴진 곡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을 받았던 곡이 바로 [섬]인데, [섬]에 대한 곡 소개는 다음과 같다.
섬: 클래식 기타 독주 - 서해의 섬들을 여행하면서 느낀 인상들을 적은 곡이다. 바다 위의 외딴섬들이 멀리서 볼 때 고독하고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는 길은 어려워도 섬 속 이곳저곳에는 아름다운 비경들과 생기 넘치는 식생들로 가득했다. 아직 마음속에서 먼 대상은 우리가 가 보지 못한 섬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섬은 외딴곳이고 섬에 가면 고생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은 직접 서해의 섬을 여행하기로 한 이 창작자에게 새로운 성찰의 소재로 거듭났다. 육지와 다른 섬의 식생이 준 심상에 그의 성찰이 더해지며 섬은 하나의 지형지물에서 심리적인 거리감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최인의 [섬]은 그 유려한 연주를 통해 짙푸른 바다 위에 동동 떠 있는 저마다 외로운 섬들을 떠올리게 했다가, 듣는 이로 하여금 점점 그 섬에 가까이 가게 잔잔한 파도처럼 감상자의 등을 밀어주었고, 마침내 우리 마음속에서 먼 대상인 섬이 가진 풍부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성찰은 창작의 동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더 큰 논의를 불러오기도 한다. 최인에게 그것은 예술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세계시민으로서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실제로 일곱 번째 곡 [Prayer]는 여전히 전염병과 전쟁의 위협으로 신음하는 세상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위한 곡이다.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술은 저마다의 세계관 속에서 창작자의 생각을 들려주거나, 그 예술을 향유한 이들이 저마다 떠올릴 수 있는 답을 꺼내는 데에 크고 작은 자극을 준다. 리사이틀의 마지막 곡이자 두 번째 이중주 곡인 [From here to everywhere]의 창작 의도 소개에서 최인은 또다시 자연에서 끌어낸 자신의 해답-내지는 지향점-을 들려준다. 그가 어느 날 오른 산에서 본 민들레 군락은 산의 한 부분에만 있지 않았다. 민들레 홀씨가 날리고 날려 산 중턱에, 혹은 산의 더 높고 낮은 곳에 몇 개의 민들레 꽃밭이 생긴 것이다. 그 풍경을 본 최인은 소망한다. 우리 모두 꽃이 되기를. 외적인 기준으로 가치를 정하기 쉬운 세상에서 ‘외적인 소음이 아닌 내적인 고요와 평화 작은 사랑의 마음들’이 우리 마음에 깃들기를. 그 마음들이 한 곳에 가만가만 있지 않고 민들레 홀씨 날리듯 더 너른 곳으로 울려 퍼지기를. 그렇게 피어난 마음들이 세상을 조금 더 포근하게 만들기를.
이 리사이틀은 정말로 감상자들이 마음에 민들레 홀씨 하나씩 가져나가는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그 씨앗이 정말로 싹을 틔울지, 각기 다른 토양과 수질에서 어떤 빛깔의 꽃으로 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예술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보고 감동 받아 다시 내 식으로 빚어낸 꽃을 사람들의 앞에서 재현하여, 감상자들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때면 자기 해석이 들어갈 꽃을 피울 가능성 하나씩 가져가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경험한 클래식 연주회 중에서 가장 몸과 마음이 이완되었던 이 공연에서, 나는 내가 틔우고 키울 홀씨 하나를 받아왔고 이렇게 한 편의 글로 그 꽃씨의 모양을 되새겨 보는 중이다. 마음에 받아둔 꽃씨는 언젠가 다른 빗방울을 만나면 아무도 예상 못 한 모양으로 다시 태어나겠지.
나는 그렇게 새로운 가능성을 수집하고 세상 보는 눈을 환기하기 위해 또 예술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