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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밀 Aug 28. 2023

디지털 기술로 미지를 유영하기

파장의 생성을 즐기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테크놀로지를 껴안고 삶의 전부를 예술에 바친 프랑스 디지털 아트의 거장, 미구엘 슈발리에.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그의 최신 작품들을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만나볼 수 있는 첫 서울 개인전이 "아라아트센터"에서 2024년 2월 11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약 70여 점 이상의 독창적인 작품들로 구성된 미구엘 슈발리에의 개인전 중 최대 규모이다.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디지털 뷰티> 전시의 동선은 다소 독특하다. 지하 1층에서 전시가 시작되고, 지하 4층까지 전시장 내 계단으로 내려가며 관람을 한 후 지하 4층의 엘리베이터로 1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1층과 5층에도 역시 <디지털 뷰티> 전시의 일환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에 대한 본격적인 소감을 쓰기 전에 전시 동선에 대해 한 문단을 할애하는 이유는 이 전시를 찾은 모두가 전시의 일부를 실수로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디지털 예술의 선구자인 미구엘 슈발리에는 신기술의 ‘변화하는 성질’이라는 본질에 탄복하는 작가다. 뛰어난 디지털 기술을 수단이자 재료로 삼아 자신의 우주와 그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시 <디지털 뷰티>. 자, 이제 그가 마련하고 우리의 움직임이 개입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미지의 아름다움을 엿보러 갈 차례이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삼 면의 벽에 설치된 인터랙티브 아트 <그물망 복합체>이다. 서로 다른 가상의 색을 띤 네트워크, 즉 그물망은 천천히 자기 형체를 갖추며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그물망의 자체적인 움직임 위로 관람객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그물망은 후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갈라지고 이동한다. 


<라이좀>은 천장에 매달려 지하 1층으로 펼쳐지는 조각 설치 작품으로, ‘공중에서 구현된 우주’를 표방한다. <라이좀>과 <그물망 복합체의 벽>에는 형광실과 UV 라이트가 재료로 쓰였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의 VR 영상은 물론이고 이런 설치 작품의 ‘어둠 속 형광색’이 효과적으로 보이도록 전시 공간의 대부분은 어둡다. 이는 디지털 우주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는 작가의 의도에도 잘 맞아떨어진다. 우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무한정의 어둠 속에 저 멀리서 달려온 별빛이 총총 박힌 것이므로.


이렇듯 어둑한 전시 공간 안에서, 여러 층의 계단을 내려가는 동선은 관람객에게 그 우주로 더 깊게 파고들어 가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미지의 우주를 탐구하는 마음에는 우리의 기원을 알고자 하는 동기가 깔려 있을 테다.


층계를 이동한 다음 만날 수 있는 한 작품의 이름은 <세상의 기원>이다. 이는 작가가 생물학과 미생물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증식과 분열을 거듭하는 세포의 영상에 관람객의 움직임이 개입하면 세포의 궤적이 흐트러진다.   



감상자의 몸은 <세상의 기원>에서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 작용하는 미지의 요인 같이 쓰였다가, 그다음 작품 <리퀴드 픽셀>에서 춤추는 붓이 된다. 이 작품이 있는 공간에서는 가시광선의 모든 색채를 품은 가상 회화가 전시장 벽 표면에 흐르는데, 관람객의 몸 움직임에 따라 화면에 새로운 색이 묻어난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리퀴드 픽셀>에는 1950년대의 액션 페인팅 등에 대한 미구엘 슈발리에의 해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지하 3층의 일부 공간에는 특별한 드로잉 작품들이 걸려 있다. 그림들은 디테일이나 색이 다 다르지만 전반적인 형태나 테크닉이 흡사하다. 이 드로잉 작품들은 다섯 개의 로봇 팔들이  데이터 뱅크에서 추출된 패턴에 따라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로봇 팔들이 그림을 그리는 현장은 그 자체로 퍼포먼스적인 성격이 강한 하나의 작품(<어트랙터 댄스>)으로 전시되고 있다. 다섯 개의 팔을 가진 이 드로잉 로봇의 퍼포먼스는 미구엘 슈발리에와 페트릭 트레셋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본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지하 4층에 있는 <매직 카페트>가 아닐까 한다. 작품 규모와 전시장에서의 위치, 관람객들의 몰입도를 생각하면 그렇다. 이 전에 전시된 다른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작품들과 달리 <매직 카페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상적인 패턴을 사용하여 관람자-참여자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도톰한 카펫 위로 투영되는 인터랙티브 VR은 몇 가지 패턴이 돌아가며 반복되었는데, 그중에는 벽돌 바닥이 관람객의 발걸음에 따라 무너져 내리는 효과의 VR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착시를 일으키는 이 VR 위에서 열심히 움직이며 작품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편 지상 공간으로 올라와서는 자화상 개념을 탐구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작품들(1층)과 디지털 패턴으로 창조한 꽃들로 이뤄진 일종의 새로운 정원(5층)을 만날 수 있다.   




전시 <디지털 뷰티>의 수준급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는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영향이 어떤 시각적 형식으로 구현되는가(지하 2층의 <리퀴드 픽셀>) 혹은 어디까지 뻗어나가는가(지하 2층, <세상의 기원>/ <지하 4층 <프랙탈 줄기>)를 흥미롭게 탐구하게 만든다. 또한 각 작품마다 컨셉이 뚜렷하여 미지의 세계를 다양한 모습으로 접하게 한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외에도, 미구엘 슈발리에는 조각 설치 작품, 드로잉, 그리고 퍼포먼스 등 한정되지 않은 매체 내지는 수단을 사용하여 자신의 상상력이 디지털 패턴을 기반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고루 보여주었다. 


이처럼 점, 선, 공간이 펼쳐내는 무한대의 디지털 우주 세상에 잠시 동안 우리 몸의 움직임으로 개입하고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실시간으로 작품에 내가 반영되는 재미는 물론, 새로운 세상에의 유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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