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짬뽕> 후기
짬뽕하면 ‘웃기는 짬뽕’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내 기억 속 ‘웃기는 짬뽕’이란 말은 왠지 앞에 ‘하여튼’이란 말이 붙고는 했다. 왠지 지금은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인데, 과거에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용례를 돌이켜 보면 얼토당토 않게 웃기거나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소 혼란하여 어이 없는 순간에 이 표현이 나왔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얼척없을’ 때! 이런 상황을 ‘하여튼’ 그럴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비교적 사사롭고 사소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는 게 또 하나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랬다. 반면, 그 사안이 중대한 일은 결코 가벼운 말로 넘어갈 수가 없다. 아니, 그저 넘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기억에서 지나쳐갈 수가 없다. 연극 <짬뽕>에서 조명하는 1980년 광주의 5월이 그렇다.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된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극단 산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2004년 초연을 올린 연극 <짬뽕>은 극단 산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작품으로, 올해로 공연된지 20주년을 맞았다. 계절이 돌아오듯 5월이면 극장으로 돌아오는 이 연극은 80년대 광주에서 살아가던 소시민들의 소중한 일상에 밀어닥치는 영문 모를 폭력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한 여파를 블랙코미디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억압의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자유가 도래할 때 사람들은 그 시기를 봄으로 비유한다. 지명이나 국가의 이름을 붙여 ‘~의 봄’이라 불리는 이 시기는 성숙한 봄의 도래로 갈 수도 있고 짧은 봄비처럼 영영 머물지 않고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 이때 봄은 저절로 물러간다기 보다 혼란한 틈을 타 권력 찬탈을 노리는 새로운 내부 세력이나 국제 정치 관계의 알력에 의해 쫓겨나는 것에 가깝다. 1979년 12.12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에서 나오는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의 봄을 내쫓은 것처럼.
연극 <짬뽕>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중국집 이름은 봄이 온다는 의미의 춘래원이다. 봄은 이미 온 것이 아니라 오는 중이다. 주인공 신작로는 10년 동안 중국집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마침내 자기만의 중식당을 갖게 되었다. 늘상 돈돈 거려서 주변의 빈축을 사곤 하는 그의 유일한 꿈은 춘래원 식구들과 안정적이고 평온한 앞날을 사는 것이다. 통장에 모인 전재산을 들여다보며 애인 오미란과의 결혼을 꿈꾸고, 여동생 신지나의 미래에 보탬이 되고 싶어하고, 늘 티격대지만 사실은 형제 같은 춘래원의 배달부 백만식에게 좋은 옷을 사주고 싶어한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딱 150만원을 더 모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신작로는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돈을 벌며 제 인생의 더 찬란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눈여겨 볼 점은 춘래원의 네 식구는 극중 지나의 말대로 ‘하늘 아래 우리 넷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이좋은 이웃들이 있겠지만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은 작로, 지나, 미란, 만식 이렇게 넷 뿐이다. 주인공 신작로는 어머니가 힘들게 쌀 판 돈을 갖고 야반도주하여 광주에 자리 잡은 경우이고, 그렇다면 작로와 남매인 지나 역시 광주가 출생지는 아닐 것이다. ‘오빠야’, ‘아나’ 같은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보아 다방 종업원으로 일하는 오미란은 광주에서 쭉 산 사람이 아니라 경상도 태생이거나 그곳에서 한동안 살다 온 사람이다. 고고장 가서 춤추기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지만 알고 보면 원칙을 중요시하는 만식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광주에서 대대로 터 잡고 살아온 집들에 비하면 광주와 연고가 약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80년 5월의 광주에 그들이 살고 있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작로가 어머니의 돈을 훔쳐 도망친 점을 생각하면 천하의 불효막심한 놈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가 미란과 만식을 가족으로 여기며 그들을 위해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미래 계획을 세우는 모습은 작로에게 춘래원 식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고 사람의 다면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문제는 개인의 봄 역시 그 사람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마을, 지역, 나라의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는 점에 있다. 새로운 독재자는 자기 권력을 위해 한 지역의 시민들, 엄연히 국가가 지켜야 하는 국민들에게 폭력을 퍼부었다.
짜장과 짬뽕 단품 주문도 아니고 탕수육까지 시킨 통 큰 고객의 주문 전화에 춘래원 식구들은 눈에 띄게 기뻐하며 영업 시간이 지났음에도 배달을 보낸다. 만식은 배달가는 길에 총을 든 군인 둘을 만나고, 마침 배가 고팠던 군인들이 국가의 일을 하는 중이니 배달음식을 마치 공출하겠다는 듯 놓고가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겁 먹던 만식은 뚝심 있게 저항한다. 돈 내고 먹어! 분위기가 격앙되다 총까지 발사되고, 만식은 살기 위해 군인 한 명의 머리를 가격한 후 도망친다.
이후 춘래원이 있는 광주의 분위기는 이상해진다. 이유 모를 폭력과 공포가 매캐한 최루탄 가루 연기와 함께 춘래원의 가게 문 안으로도 스며들어온다. ‘바깥’에 난리가 나자 춘래원 식구들은 TV를 틀어 뉴스를 보지만 언론은 이미 통제 당했다. 흘러나오는 말은 ‘폭도’들이 군인에 폭력을 휘둘러 군인들이 진압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춘래원 식구들 외의 일에 최대한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작로조차 상황이 심각한 것을 느낀다. 만식은 짬뽕을 내놓으라던 군인 머리를 친 일 때문에 군인들이 간첩의 공격이 있었다고 오해하여 작금의 상황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식은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과 진실을 밝히고 싶어하지만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작로는 계속해서 만식을 막는다.
정치에 관심을 끄고 살아도 이미 동네에는 정신이 나가버린 어린 순이가 있었고, 동네 사람들 모두 순이가 그렇게 된 내막을 안다. 춘래원이라는 좋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순이의 아버지였다. 순이의 부모는 저명한 교수였는데, 입바른 말을 하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어딘가로 끌려갔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후 할머니와 살게 된 순이는 정신을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순이를 딱하게 보며 순이가 자잘한 사고를 쳐도 넘어가지만 갑자기 정치적으로 위험한 말을 하면 불자인 스님조차 욕을 하며 순이에게 폭력성을 내보인다. 평소에는 아닌 척, 모른 척 살아갈 수 있어도 사실은 모두 마음속에 독재 정부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짬뽕 한 그릇으로 이 큰 일이 일어났다는 발상도, 연극 소개글을 읽을 때만 해도 엉뚱하고 참신한 발상 같았는데 연극을 찬찬히 보고 있으니 참 서글프고 무서운 상황이다. 사람은 불가해한 폭력을 당할 때 자기 차원에서 원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것은 본능에 가까운 기제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바람의 발현이기도 하다.
만식이 공권력의 눈에 띄면 간첩으로 몰릴 것임을 알고 있는 작로는 악몽을 꾼다. 꿈 속에서 정부 요원들이 만식을 때려 죽이고 작로를 고문하고 작로와 주변인의 인생을 탈탈 털어 북한이 남한에 보낸 갑첩인 것처럼 이야기를 짜내고 둔갑시킨다. 고문과 날조는 작로의 생생한 악몽이었지만 이것은 그 시기 누군가에게는 진짜 현실이었을 터이다. 그것을 알기에, 작로의 흉흉한 꿈 역시 지독하게 구체적일 수 있었다. 작로가 아무리 자신을 세상 일에 바른 말을 하는 지식인이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시위하는 대학생이 아니고 고만고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해도, 그는 반공을 내세우며 억울한 사람을 간첩몰이하는 세상 안에서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있는 시간과 장소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곳일수록, 그의 봄은 그가 살아가는 세상의 계절에 좌우된다.
작로는 점점 피폐해진다. 만식과 시비가 붙었던 군인 둘이 우연히 춘래원에 들어오자 작로는 이 둘만 없으면 우리 모두 안전하다며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지나와 만식은 그런 작로의 모습에 경악한다. 다행히 그 군인 둘이 사실 계엄군이 아니고 땡땡이 치려고 광주에 왔다가 계엄령에 발이 묶여버린 방위임을 알게 되고 상황은 일단락된다.
운동권 학생이나 지식인보다 춘래원의 소시민 네 명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은 점, 계엄군 배역이 등장하지 않는 점이 이 연극의 특징이다. 정치에 별 관심 없이 생활하기 바쁜 소시민의 일상이 피폐해지고 망가져가는 과정에서 관객은 역으로 계엄령이 내려져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절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계엄군 역할이 극중에 없는 점 또한 춘래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연극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엄군과 직접 맞닦뜨리지 않아도 이미 소시민들의 일상은 망가져가고 있다는 점이 어떤 의미로는 더 서늘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방위 두 명이 들어가 난리가 난 춘래원의 지금도 이런데, 계엄군의 총부리를 직접 본 사람들은…
연극은 그 상황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지만 결국 춘래원 식구들에게도 계엄령의 직접적인 영향이 간 것을 알려준다. 사랑하는 미란이 도청에서 항거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나눠주러 가다가 총을 맞아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작로는 얼이 나간다. 멍하니 ‘다방 레지면 다방 레지답게 굴 것이지 거기가 어디라고 가’라고 중얼거리며 욕을 한다. 누구나 그것이 작로의 진심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원망스럽고 갈 곳 없는 마음이 생길 때 작로는 세간에서 특정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할 법한 어휘를 끌어다 욕을 한다. 이렇듯 작로의 욕은 세상을 따라간다. 그는 자기 식구들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어떤 표현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생각이 어떻게 왔는지까지 옳고 그름을 가려가며 말하고 사유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사는 게 제일 바쁜 사람이었다. 지독한 구두쇠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손에 진짜 금반지를 생색 않고 끼워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란의 부고를 들은 만식이 방위에게서 빼앗은 총을 들고 뛰쳐나가려는 걸 작로는 한사코 막지만 역시 가족 같은 이를 잃은 만식을 끝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평소엔 능글거려고 실은 정의와 원칙을 중시하던 만식이 총을 들고 뛰쳐나가고, 만식과 오빠 작로 사이를 조율해주던, 한 쪽 다리를 저는 지나가 그런 만식을 좇아 뛰쳐나가고, 10년 노력의 결실인 춘래원에 놓인 식탁을 손으로 쓸어보던 작로 역시 그 둘을 찾으러 뛰쳐나간다. 가게 문 밖에는 총탄이 발사되는 소리와, 헬리콥터 날개가 돌아가는 것 같은 굉음이 나고 있다.
그날, 아마도 광주 도청에서 시민들이 최후의 저항을 하던 그날에, 춘래원 식구들도 누군가는 화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 다. 객석에 날아든 부고는 아직은 바깥에 봄 소풍을 갈 수 있던 과거 어느 날의 춘래원 식구들 모습에서 왔다. 정확히는, 작로와 미란, 지나와 만식 네 사람이 사이 좋게 소풍 사진이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었을 가족 사진에서 전해졌다. 열심히 포즈를 잡는 네 사람. 찰칵 소리와 함께 그들의 사진 프레임 위에 영정 사진 리본이 둘러진다. 그 순간 객석에서는 ‘아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 죽은 줄 알았지만 그 안에서 작로만이 유유히 걸어나온다. 작로만이 생존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가족을 다 잃고 혼자 살아남으면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해?
또 5월이 돌아왔군요. 작로가 읊조린다. 광주는 5월에 집집마다 제사가 있다고 덧붙인다. 참담한 말이다. 천수가 다해 자연스레 죽는 것이라면 이렇게 제사가 비슷비슷한 시기에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블랙 코미디극이라서 아까까지만 해도 다른 관객들처럼 많이 웃었는데, 이제는 눈물이 줄줄 났다. 본가는 다른 곳이지만, 전라도에서 대학을 다녔던 친구는 이 일에 특히 더 가슴 아파한다. 대학에서 친해진 몇몇 친구들 집안, 동네의 일이기도 하니까.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5.18은 나에게도 더 짙은 의미를 가진다. 나의 친가는 광주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할머니는 아주 가끔 당신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그때, 계엄군에 죽어 간 광주 시민들의 관을 감쌀 천을 나누신 일을 얘기해주신다. 미란이 도청에 있는 시민들에게 커피를 주러 간 것처럼, 5월 광주에서는 폭도들이 아닌 대한민국 시민들이 혼란과 강제된 고립 속에서도 서로를 약탈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며 국가의 폭력 아래서 서로를 지키고자 했다.
최근 뉴스에서 누군가가 5.18 피해자를 조롱하는 게임을 만들었고, 그 게임을 하다 이상함을 느낀 한 초등학생이 언론에 제보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도 그런 게임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을 제보해 사람들에게 알린 어린 학생이 대단하고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짬뽕>이라는 연극 자체의 높은 완성도에도 이 공연이 20년간 올려진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이 뉴스를 떠올리면 왜 20년 동안 이 연극이 사람들에게 필요했는지도 알 것 같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 해서 그때 입은 상처의 고통이 일정 시간 지나면 완전히 사라진다는 법은 없다. 이제 통장에 천만원이 넘게 있지만 영정사진이 된 소풍 사진에 함께 있는 자기 모습을 더러 자신도 이미 그날에 죽었다고 말하는 신작로처럼. 어떤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질 수 있다. 조롱, 비난, 무시가 아니라 공감과 기억하기, 기록 바로잡기를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찾아주고 같은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는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같은 역사 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추구해야할 일일 터이다. 과거 사건에 대한 공감과 발화와 기억은 언제나 ‘현재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극단 산의 <짬뽕>은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