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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밀 Aug 02. 2024

무서움은 낯설음에서, 아름다움은 알아감에서 오더라

이원율, <무서운 그림들>  리뷰


모르면 무섭다. 깜깜한 밤에는 저 어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무섭다.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할 때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두렵다. 알지 못하면 무섭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온가족이 할머니를 위해 기도 드릴 때,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억누르느라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날 간신히 친해졌던 어린 조카는 나와 눈이 마주치곤 겁을 먹고 제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장지에 갈 때까지도 조카는 나를 피했다. 그애에게 난 그저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섭고 꺼려지는 마음은 대개 대상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온다.조카는 죽음의 의미도, 죽음에서 파생되는 슬픔도, 그 슬픔을 마음놓고 터트리기 힘든 때도 있다는 것을 아직 알 수 없는 나이였다. 


미술 교양서 <무서운 그림들>을 읽는 동안 간간이 그때 일이 떠올랐다. 날 피하던 조카에 서운하지는 않았다. 아니, 슬픔이 빼곡해서 서운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조카도 어른이 되면 일그러짐 아래 깔린 슬픔을 읽을 수 있게 될 테니까. 알고 나면 꽤 많은 것들이 두려운 무지의 영역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밝은 앎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때로는 무서워하던 것에서 새롭게 흥미를 느끼거나, 안타까움이나 짠한 마음까지 들게 된다.  


꾸준히 미술 칼럼을 연재해 온 미술 스토리텔러 이원율 기자는 이번 저작에서 ‘무서운 그림들’을 모아 각 그림들이 가진 배경과 탄생 비화 등을 소개한다. 이 책에 실린 무서운 그림이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죽음의 이미지나 악마와 괴물처럼 기괴한 형상이 담겨 시각적으로 무시무시한 그림이 있다. 이차적으로는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어둡거나 참혹한 경우, 그외에 그림 자체가 수난을 겪은 경우가 있다.


괴물 박쥐를 타고 있는 검은 사신이 화폭을 크게 가로지르고 있는 그림, 아르놀트 뵈클린의 <페스트>는 세상을 휩쓸고 있는 페스트와 그것에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새신부 역시 예외는 없었다. 페스트라는 사신의 낫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누구도 없는 것이다. 페스트의 유행은 화가 뵈클린에게 악몽을 되살렸다. 그 역시 전염병으로 어린 자식들을 여럿 잃었다. 그의 트라우마는 악기를 연주 중인 해골(죽음)과 함께 있는 자화상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귓전을 울리는 죽음의 음악은 화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린다.’ 마치 밴시의 비명처럼. 밴시의 비명은 그것을 들은 당사자가 아니라, 그의 주변인의 죽음을 알린다. 그래서 더 슬프고 무력해진다. 차라리 자신을 찾아온 것이길 바랐던 죽음이 자식들의 목숨을 앗아갈 때, 뵈클린이 느낀 무력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지 않았을까. 그의 개인사를 알고 나서 공포의 사신이 화면을 지배하는 <페스트>를 다시 보면, 두려움이 차지하던 마음의 공간에 비애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괴물과 악마, 여러 형벌이 표현된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는 사실 요즘 말로 ‘금손 작가에 대한 덕심’으로 그려졌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유명 삽화가였던 그는 단테의 <신곡>을 읽고 이 복잡하고 긴 명작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 삽화를 그리기로 했다. 삽화를 실어 직접 출판한 <신곡>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그렇게 그는 존경하는 작가의 명작에 예술로써 함께 한, 성공한 열혈 팬이 되었다. 삽화를 그린 작가의 의도를 알고 나니 그림이 무섭기 보다는 고전에 대한 관심과 함께 삽화 세부 내용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다.


헨리 8세의 궁정 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은 헨리 8세를 비롯, 그의 아내 여러 명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아내 여러 명이라니 일부다처제를 택한 나라인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았고 헨리 8세가 워낙에 결혼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왕비와 이혼하고 왕비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국교를 바꾼 일은 역사적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일이기에 여러 편의 시대물 콘텐츠로 제작되기도 했다. 헨리 8세는 자기 아들을 낳아줄 여자와 살기 위해 이혼과 결혼을 거듭하는 동안 자기 아내였던 사람을 두 명이나 참수했다. 왕의 결혼과 정치, 종교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였기에 그의 이혼과 재혼에 휘말려 죽은 귀족도 여럿 되었다. 까딱하면 왕의 눈에 날 수도 있는 분위기 속에서 궁정화가로 일한 홀바인 역시 긴장되는 나날을 보냈을 테다. 당대 역사적 배경과 함께 보는 여러 점의 왕비 초상화들은 권력과 정염 사이에서 야망을 키우기도, 자신과 주변의 야망에 베이기도 했을 궁정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 보게 한다. 왕권을 제 손에 쥐어도 불안한 것이 사람 마음인데 변하기 쉬운 왕의 총애를 기반으로 권력을 다지기 시작해야 한다면 그 마음은 또 얼마나 풍전등화 같았을까?  


<무서운 그림들>에 죽음이 얽혀 있는 그림은 또 여러 점이 존재하지만 화가가 당대인들의 죽음을 기록할 의도로 그린 그림 두 점을 언급하고 싶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과 펠릭스 누스바움의 수용소에서의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 그것이다. 전자는 부패한 왕정이 쉬쉬하던 동시대 초유의 사건을 그린 고발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제리코는 생존자들을 직접 만났고, 시신 안치소에서 시신 일부를 가져와 그림 연구를 하기도 했다. 


누스바움의 자화상은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기록이기도 하다. 장래가 촉망받던 젊은 화가였던 누스바움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도주하느라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그가 버리지 않은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이었다. 동료 예술가로 만난 아내 펠카와 함께 은신처에 숨어 살면서도 둘은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인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그림들은 죽게 두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간신히 도망쳐 나온 수용소에서의 기억을 그림에 담았다. 수용소가 언급된 그림 제목을 보는 순간, 그림 속 인물들의 불결하고 비참한 상태가 이해된다. 누스바움은 유대인들에게 드리운 죽음과 공포의 그림자를, 그리고 유대인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그림에 담아 후대에 보낸 유리병 편지로 삼았다. 누스바움 부부의 은신은 결국 나치에 발각되고 말았고, 그들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그들을 강제로 실어간 열차가 2차 대전이 끝나기 전 운행했던 마지막 아우슈비츠행 열차였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이제 그의 그림을 보면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슬픔은 물론이고, 그 속에서 그림을 놓지 않은 누스바움에 대한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근대 유럽 미술사에 대해 읽다 보면 나치의 만행은 수 차례 언급된다. 자신들의 기조에 맞지 않는 여러 예술품에 ‘퇴폐 미술’ 낙인을 찍어 강제로 빼앗고 파괴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저 유명한 <아델레 바우어 부인의 초상>은 나치에 의해 불법 점유되었다가 복잡한 국제 소송을 거쳐 초상화 주인공의 조카에게로 돌아갔다. 바니쉬 변색 문제 때문에 <야경>으로 익히 잘못  알려졌던, 렘브란트 판 레인의 <판 닝 코크 대위의 민병대 단체 초상화> 역시 작품 자체가 겪은 여러 가지 수모들 사이에 나치의 위협에 의한 불안정한 보존 상태가 끼어 있었다. 클림트의 화려하고 몽환적인 금빛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실험적인 구성의 단체 초상화가 화폭에 무서움을 자극하는 형상이 없는 데도 ‘무서운 그림들’로 분류된 데에는 이처럼 그림의 보존과 소유권에 관련된 여러 사건이 작용했다. (사실 이는 그림 자체가 무섭기보다는 무서운 상황에 놓였던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화가의 의도나 그림이 그려진 배경, 그림에 엮인 사건을 알아가며 첫 감상보다 두려움이 약해지는 효과를 경험했다. 그림들이 무서움의 위세를 벗고 눈과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그림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매력이 다소 반감되는 경우도 있었다. 내게는 귀스타브 모로의 살로메 연작이 그랬다. 중세의 금빛 배경에서 프로토 르네상스로 가는 과도기의 그림들, 라파엘전파 화풍을 좋아하기에 나는 모로의 그림에서도 매력을 크게 느꼈다. 모로 특유의 몽환성과 매혹은 보는 이를 유혹한다. 본래 나는 모로 그림의 성적인 유혹(seductive) 코드를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원래부터 팜므 파탈 캐릭터인 줄 알았던 살로메가 사실은 모친인 헤로디아 왕비의 요구에 따르던 자아가 어리고 약한 소녀임을 알게 되어 모로의 재해석이 조금은 불유쾌해졌을 뿐이다.  

살로메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살인을 종용하는 부탁이라면 모친의 부탁이라도 거절했어야 맞다. 그러나 그녀의 심약함 혹은 유약함이 새로운 유희 거리가 필요한 살롱 남성 참여자들의 사심을 위해 아예 희대의 요부로 바뀌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 한다. 인물의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경우에 따라 여러 세밀한 요소들이 작용하겠지만, 살로메의 경우처럼 한쪽으로 치우쳐 인물 해석이 퇴보하는 쪽은 솔직히 유쾌하지 않다. 근세 회화에서 유혹적인 이미지로 그려진 여성 인물들의 도상에 골몰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한 인물이 요부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목격하니 마음이 더 편치 않았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외양에 즐거워하며 도상을 공부했던 그 인물들 중에서도 이렇게 해석이 한쪽으로 치중되어 완전한 악녀가 된 인물도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지독한 관찰로 무서운 상황의 아름다움을 그려내어 작품이 불쾌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도 있었다. 이미 너무 유명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그 예이다. 비극성을 침범하지 않는 아름다움의 구현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글로 치면 워낙에 문체 자체가 유려해 기이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장면이 만들어진 것 아닐까. 이 죽음의 장면에 굳이 대상화된 영역을 찾는다면 그것은 비극적인 죽음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보면 볼수록 기묘한 감정을 자극하는 이 미적인 화폭은 오필리아가 꽃을 꺾다 물에 빠져 죽었을 법한 바로 그 장소를 찾는 화가의 노력, 그리고 그 장소를 열심히 답사하고 관찰한 노력으로 이뤄졌다. 죽어가는 오필리아는 라파엘전파의 뮤즈였던 모델 시달을 관찰하며 완성했다. 욕조에 하염없이 둥둥 떠 있던 시달은 욕조 물을 데우던 램프가 꺼진 것도 몰랐던 화가 밀레이 탓에 폐렴에 걸리는 등 큰 고생을 치렀다고 한다. 모델도 화가도 모두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밀레이는 <오필리아>의 성공에 대해 시달에게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무서운 이야기에는 이상한 호기심과 중독성이 있다. 무서운 이야기를 그려낸 ‘무서운 그림들’ 역시 기이한 매력이 있다. 화폭이 아름다워서도 있지만, 언뜻 보기에 기괴한 형상마저도 자꾸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여기에는 참혹한 역사를 똑바로 보고자 한 기록자의 마음, 죽음이 만연한 세태에 대한 고찰, 죽음의 마력을 가진 유혹적인 인물에 대한 탐구, 심지어는 예술계 선배의 명작을 알리고픈 팬의 마음까지 다양한 창작 의도가 얽혀 있다. 그뿐인가. 화가마다 다른 창작 의도에 화가를 둘러싼 시대상, 화가가 몸 담은 화파의 화풍 등 여러 요소가 얽히고 설킨 다음 심미적으로 정제되어 화폭에 남겨졌다. 무서움이라는 감정의 다양함, 무서운 이야기를 저마다 담기에 적합한 형식을 찾아 만들어낸 무서움과 아름다움의 결합은 기이한 중독성을 갖게 한다. 


무서운 것을 살금살금 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성실히 조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 ‘무서운 그림들’을 그릴 당시 화가의 심리를 추론하며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조사로 재구성된 상황에서 화가나 화가의 주변인이 했을 법한 대사가 적힌 부분에서는 화가의 일생을 다룬 단편 전기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책 속 그림과 화가의 이야기를 통해 ‘무서움이란 감정이 이토록 다채롭고 입체적이고 매혹적일 수 있는지’ 알리고 싶어 한 저작 의도는 생생한 문체 속에서 매끄럽게 전달되었다. 여러 화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 종교, 신화, 고전 등의 지식과 교양 또한 톡톡히 채워진다. 무더운 날씨에 잠시 가만히 앉아 <무서운 그림들>을 펼쳐 보면 어떨까. 기묘한 매력, 서늘한 아름다움을 탐미하며 으스스한 흥미를 느끼다 보면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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