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성안길은 청주읍성의 북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말 그대로 청주의 심장이자 역사가 흐르는 길이다. 용두사지 철당간이 웅장하게 서 있고 중앙공원이 쉼터를 제공하는 이곳은 청주의 문화적 자부심이 깃든 거리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성안길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황금 상권을 자랑해 왔다. 점포 하나를 임대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상가는 활기가 넘쳤고, 거리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젊음과 에너지가 가득했다. 경기의 위축과 상권의 변화로 소비자 시장은 급속하게 얼어붙었고, 성안길의 풍경 또한 낯설게 변해버렸다. 화려한 옷을 입고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마네킹들이 자취를 감춘 자리에는 '점포 정리', '50% 바겐세일', '임대 문의' 같은 서글픈 문구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며 을씨년스럽게 붙어 있다.
이 거리에 간판을 올렸던 소상공인들은 저마다의 꿈을 안고 시작했을 것이다. 남모르는 기술을 습득하고, 수지타산을 꼼꼼히 따져보고, 목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수없이 발품을 팔며 어렵게 가게를 얻었을 것이다. 장사가 잘될 것이라는 굳은 확신으로 평생 모은 종잣돈을 쏟아붓고, 부족한 부분은 금융기관의 대출로 채우며 밤낮없이 땀을 흘렸을 터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판매량은 제자리걸음인데 인건비는 치솟고, 매달 돌아오는 임차료와 공공요금은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까지 더해지니, 버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은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버티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지만, 결국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의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평생의 터전을 포기하며 간판을 내리려는 그들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진다.
내가 몸담은 충북양잠연합회 역시 이러한 시대적 시련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양잠 산업의 명맥을 잇고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청주 영동에서 양잠홍보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양잠산물을 전시하고 판매해 왔다. 기능성 뽕나무와 누에를 원료로 만든 실크 넥타이와 스카프, 천연 비누와 화장품, 그리고 당뇨에 효능이 있는 동결건조누에와 치매 예방에 좋은 홍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산물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정성이 가득하다. 그러나 가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건비와 관리비조차 양잠산물의 판매 수익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했다.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당장이라도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간판을 내리기는 쉽지만, 한번 내려진 간판을 다시 올리기는 수만 배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머리를 맞댔다. 홍보관 리모델링을 새로 하고, 양잠산물 외에 일반 농산물이나 건강식품을 추가로 진열하는 방안, 무인 판매 시스템 도입, 심지어 조합원들이 당번을 정해 봉사활동으로 근무하는 방안까지 검토해 보았으나 지속 가능한 해답을 찾기는 난망했다. 그러던 중 절실함 끝에 찾아낸 대안이 바로 ‘스토어쉐어(Store Share)’였다. 이는 공간의 가치를 나누고 비용의 부담을 줄이는 공유 경제의 지혜였다. 우리는 스토어쉐어 운영자와 협약을 맺고 새로운 상생 모델을 구축했다. 양잠홍보관의 기능은 유지하되, 판매 수익의 전액을 운영자가 가져가고 대신 가게 운영에 드는 일반 관리비를 운영자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폐업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가게가 새로운 영업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소상공인들은 초기 시설비와 리모델링비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다. 이를 회수하기도 전에 사업을 접어야 하는 이들은 시설을 원상복구 해야 하는 비용까지 떠안으며 이중고, 삼중고를 겪게 된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유 공간을 이용할 사업자를 적극적으로 연결해 관리비를 절감하고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확산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는 소상공인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 지원과 교육, 컨설팅, 그리고 재기를 돕는 희망리턴패키지 등의 지원책을 더욱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한 명의 소상공인이 무너지는 것은 단순히 가게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생계를 의지하던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한 가정이 저소득층보다 더 깊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적 재난이다.
그들이 그동안 성실하게 소득세와 법인세를 납부하며 국가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해왔듯이, 이제는 국가가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야 한다. 창업비와 손실액의 일부를 지원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생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다행히 양잠홍보관은 스토어쉐어를 통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지역 축제와 장터에서도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 어느새 무심천 벚꽃은 지고, 신록이 짙어지고 있다. 성안길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그 온기가 성안길 곳곳의 점포로 스며들어 모든 소상공인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어나는 그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