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 그게 뭐야
[맏딸] 둘 이상의 딸 가운데 맏이가 되는 딸을 이르는 말
1985년에 태어난 최선희 씨는 1남 2녀 중 첫째다. 흔히들 “K-장녀”라고 부르는 자리.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규칙은 정해져 있었다. “맏딸이니까, 첫째니까, 언니니까, 누나니까.” 그녀는 늘 그런 이유들로 양보하고 참아야 했다.
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장녀’였던 건 아니다. 세상에 나온 첫 두 해 동안은 외동딸이었다. 그런데 왜 그녀가 장녀가 되었을까? 그 대답은 그녀의 엄마, 김영숙 씨의 삶에 있었다.
영숙 씨는 충청도 어느 시골 땅부잣집의 장남과 결혼해 맏며느리가 되었다. 그 시절 맏며느리에게 가장 큰 의무는 아들을 낳는 일이었다. 선희 씨를 낳고 시부모와 남편의 성화에 둘째를 가졌지만, 둘째 역시 딸이었다. 몸조리할 틈도 없이 셋째를 임신했고, 그렇게 바라던 아들이 태어났다. 그 순간 선희 씨는 ‘외동딸’에서 ‘장녀’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번에도 그녀의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장녀의 삶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언니니까, 누나니까 늘 양보하고 참아야 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밥을 지어 본 것도 그 역할의 연장선이었다. 심지어 압력솥에 지은 밥은 설익은 죽밥이었지만, 엄마는 대견하다며 칭찬했다. 칭찬이 달콤했던 선희 씨는 그 후로 매일 밥을 지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거운 압력솥을 옮기던 작은 몸짓은, 어린 소꿉놀이가 아니라 집안의 ‘실제 노동’이었다.
엄마는 미안했을까, 아니면 조금 더 맛있는 밥을 원했을까. 곧 전기밥솥이 집에 들어왔고, 그날부터 선희 씨의 밥은 더 이상 죽밥도 탄밥도 아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졌다. 밥이 막 지어져 증기가 뿜어져 나오던 전기밥솥 위에, 기저귀만 찬 막내아들이 올라앉아버린 것이다. 이내 울음이 터졌고, 빨래하던 엄마가 달려왔다. 놀란 엄마는 선희 씨의 팔을 거칠게 내팽개친 뒤 아들을 들어 올려 찬물 담긴 고무대야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미 엉덩이와 허벅지는 화상을 입은 뒤였다.
그날, 고작 일곱 살이었던 선희 씨는 회초리를 맞았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동생을 잘 돌보지 못했으니까.”
비명 같았던 동생의 울음소리, 차갑게 꽂히던 엄마의 눈빛, 공포와 억울함에 함께 울던 어린 자신.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선희 씨 안에 남았다.
아마 그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