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by 연두님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김춘미 옮김. 민음사. 2018.

연두 서평.


1.

‘지금까지의 생을 다시 되돌아가 산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들을 했을 겁니다. 후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27살,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 제출했던 자기소개서의 일부이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나의 고백이기도 한 이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게는 서글픈 책이다.


궁금하다. 나는 세상을 향해 묻고 싶다.

당신은 위선적인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셨습니까?

위선과 기만의 세계에서 주욱 안녕하신지요?


2.

어느 노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폐암으로 시작된 암이 옴 몸으로 전이가 되어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그날은 그 해 눈이 가장 많이 내린 날이었다.

임종 호흡에 들어가셨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은 아내는 남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왔다. 집에서 남편을 생각하면 불쌍했지만 이상하게도 직접 보고 있으면 무서웠다. 눈물이 줄줄 났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병실에서 나가고 싶었다.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서둘러 떠났다. 병실을 나가면서 남편이 자기를 보고 우는 것 같다고 주변에 말하며 또 울었다.


푹푹 쌓인 눈길에 들어서 집으로 들어가다 남편이 소천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여보, 아이고 여보, 엉엉 울며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축하는 사람들에 기대어 일어나 이 세계를 떠난 굳은 남편 얼굴을 보았다.


눈은 뜨여 있었고 입은 벌어진 채였다. 보기에 좋지 않았다. 아내는 우선 손바닥으로 눈을 쓸어내렸다. 눈이 감기자 다음엔 입을 오므려보았다. 눈만큼 쉽지 않아 여러 번에 걸쳐 적당히 힘을 주며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마주 대고 눌렀다. 속 채운 만두피를 누르듯이. 울면서, 남편을 부르면서.


오므려지는 듯하다 벌어지길 거듭하던 입은 어느 순간 일자로 굳게 다물어졌다. 아이고 여보, 울며 남편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니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했다. 아내는 이제 두 손으로 남편의 양쪽 입꼬리를 주물러 모양을 만들었다.


이번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자 죽은 남편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내는 만족했다. 주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남편의 얼굴이 미소 짓는 부처님 같다고 말했다. 좋은 세상으로 가셨나 보다고 좋아하며 떠들었다. 다들 만족한 듯 했다.


이게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이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다.


나는 살기도 괴로웠고 안 살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 실격>의 요조의 ‘익살‘이다.


3.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 실격>을 쓴 시기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였다. 그 불운한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그는 비극적 삶을 살았다. 39년의 생에 다섯 번의 자살 시도, 그리고 결국 성공하며 마무리. 이것은 실패한 삶인가, 성공한 삶인가? 난센스다.


그는 왜 자살한 것일까? 그의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읽으며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화자인 요조는 어려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솔직하지 않은 세상을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며 타인의 유희에 자신을 맞추는 그런 삶을 찾아내는데, 그 방법이 ‘익살’이다. 그것은 방패이고 가면은 되었지만, 요조 자신에게는 ‘소외’ 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소외‘는 비극의 씨앗이다. 요조에게 ‘소외’는 이렇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고 계속되었다.


요조는 중학교 시절부터 집을 떠나 사회에 편입된다. 그는 위선과 기만의 세계를 살기 위해 비슷한 가식과 위장으로 행동하며 적응한 듯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과 딱 맞지는 않다. 교활함이 없어서일까? 결국 ‘사회 안에서의 자아’도 찾지 못했고 ‘익살스러운 자아’도 붕괴되었고,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정상에서 탈락하고 “진정한 폐인”이 되었다.


요조에 비쳐볼 때, 이쯤 되면,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은 위선적인 세계에서 거짓 자기로 가득한 삶을 끝내는 결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4.

요조는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인가요?” -p117

“무저항은 죄입니까?” -p131


위선의 세계에서 신뢰는, 무저항은, ‘죄’이다. 왜? 그 세계에서 그것들은 ‘벌’을 받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무엇이 ‘죄’인지는 ‘벌’이 규정할 뿐이다.


나는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매 번 자문했었다. 너는 이 사회에 합격이니?

답은 항상 같았다. 나 또한 인간 실격이다.


하지만 이제는,

138억 년 우주의 시간을 생각한다. 45억 년 지구의 나이를 생각한다. 호모사피엔스로서의 30만 년의 시간을 생각한다.


때론 서글프지만, 저 시간들을 생각하며, 길어야 백 년의 인간사를 끝까지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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