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은 터키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터키 음식이 세계 3대 음식에 꼽히기 때문이란다. 역시 요식계 대부다운 선택이다. 그만큼 터키 음식은 프랑스와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음식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여행 중 식도락의 재미도 상당하다. 나는 가능한 현지 음식을 많이 먹어보려고 한다. 터키 음식은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 입맛에도 꽤 잘 맞는 편이다. 백종원처럼 먹기 위해 터키를 여행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천에서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이스탄불까지. 다시 국내선으로 환승 후 24시간 만에 도착한 카파도키아. 긴 비행시간과 18kg짜리 배낭에 짓눌려 한 걸음 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겨우 짐만 풀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메뉴판에서 지역 명물이라는 '항아리 케밥'이 눈에 띈다. 이름도 특이한 항아리 케밥을 주문하고 나니 그제야 터키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카파도키아에서 유명한 항아리 케밥은 토기로 빚은 작은 항아리 안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화덕에서 끓여낸 음식이다. 알고 보니 케밥이란 '불에 구워진 고기'를 뜻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빵에 고기와 야채를 싸먹는 케밥은 되네르케밥(Donor kebab)이라고 한다. 되네르케밥 외에도 시시케밥(꼬치형), 이스켄데르케밥, 아다나케밥, 고등어케밥 등 지역과 조리방법에 따라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드디어 등장한 따뜻한 음식에 문득 정신이 차려진다. 웨이터가 작은 망치로 톡톡 항아리의 윗부분을 치기 시작한다. 내 손에도 망치를 쥐여 주며 따라 해보란다. 톡톡 치는 진동이 손에 느껴지는 순간 항아리 뚜껑이 열린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코에 닿는다. 갑자기 맛있게 먹을 의지가 생긴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을 떠서 밥 위에 비벼 먹으니 새 힘이 났다. 고추 가루라도 뿌린다면 마치 한국 찌개와 흡사하다. 항아리 케밥은 고된 여행길 위에 김치찌개와 같은 힘을 더해 주었다.
나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피데(Pide)를 먹었다. 피데는 일상적이고 소박하다. 점심때가 되면 골목골목 피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가게마다 포장하는 사람, 먹고 가는 사람, 피데를 구워내는 사람의 움직임으로 활기차다. 여행자인 나도 어느새 그들의 일상 속에 파고들었다. 피데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화덕에서 구워 낸 빵이다. 그 위에 고기와 야채를 올려 구우면 터키식 피자가 된다. 고기피데, 가지피데, 시금치피데 등 피데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길쭉하게 구운 피데를 먹기 좋게 조각조각 잘라준다. 화덕에서 갓 나온 피데의 냄새를 맡으면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재빨리 따끈한 피데를 한입 베어 문다. 담백한 빵과 토핑의 맛이 입안 가득 어우러진다. 길거리 어귀에 앉아 잠시 쉬어 가며 먹기도 했다. 어딜 가나 부담 없이 한 끼 배부르게 채워준 피데는 여행자에게 고마운 음식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터키를 방문했을 때, 아직 나는 터키의 맛집들을 잘 몰랐다. 한 골목만 들어서면 맛집인데도 번화가의 터무니없이 비싸기만 한 식당을 들어갔다. 부모님의 첫 끼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싱거운 소스와 그마저도 말라버린 파스타였다. 함께 나온 빵은 어찌나 질기고 퍽퍽한지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인 맛이었다. 첫 식사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부모님은 여행 내내 현지 음식을 잘 드시지 못했다. 종종 한식당을 가거나, 한국에서 챙겨간 고추장과 라면을 자주 드셨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시장의 작은 식당에서 쾨프테(Kofte)를 맛보셨다. 우리나라의 떡갈비를 연상시키는 쾨프테는 미트볼과도 비슷하다. 다진 고기와 야채를 반죽해서 동그랗게 빚어 불에 구워낸 음식이다. 짭조름한 쾨프테는 빵이나 샐러드와 함께 먹기도 한다. 그릴에 지글지글 익혀 나온 쾨프테는 밥반찬으로도 손색이 없다. 곁들여진 빨갛고 매콤한 소스는 가게들만의 숨은 비법소스이다. 이스탄불 구시가지에는 무려 100년이나 된 쾨프테 맛집들이 즐비하다. 쾨프테를 맛본 부모님은 오랜만에 한 그릇을 싹 비워내셨다. 왜인지 익숙한 그 맛에는 여행의 긴장감을 해소해 주는 힘이 있었다.
평소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고, 내 입에 맞는 음식을 골라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은 터키의 음식들. 이색적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그 맛에 자꾸만 끌린다. 각각의 음식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