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수 다이어트를 시작한 계기
2022년 1월 처음으로 폭식증 부작용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는 자리였다. 약 1년 동안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간헐적 단식과 다이어트 식단, 그리고 헬스장에서 공복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던 나는 솔직히 말해 친구에 대한 반가움보다 꾹꾹 참았던 외식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41에서 42kg의 저체중에 가까웠던 나는 옷에 딱 맞는 검은색 슬랙스와 골지 니트를 입고 약속한 브런치 식당에 먼저 도착했다. 친구가 도착하고 나서 나는 인스타그램 릴스로 계속 봐왔고 또 집에서 수없이 만든 자주색의 과일 스무디볼을 주문했다. 친구는 계란프라이를 얹은 토스트와 소시지, 약간의 채소가 함께 구성된 브런치 세트를 주문하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메뉴가 먹고 싶었지만 살이 찔 것 같아서 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는 맛있게 빵을 먹고 적당히 남겼는데, 나는 그걸 흘깃흘깃 보면서 ‘아깝다’라는 생각을 하며 스무디 한 사발을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스무디볼은 차갑고 달았다. 라떼도 함께 주문해서 마치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기는 친구와 달리 나는 음료와 함께 음식을 먹으면 먹는 양이 는다는 미디어의 말을 굳건히 신뢰하여 아무 음료도 없이 차디 찬 과일과 얼음으로 배를 채웠다.
브런치를 마친 후 소품샵을 돌아다니면서 카페에 들렀고,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을 찾았다. 사실 스테이크 덮밥집을 찾기로 며칠 전 정한 상태였어서 전날 나는 해당 가게의 메뉴를 달달 외우고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살이 안 찔지 결정을 다 마친 상태였다. 각각의 메뉴에 대한 리뷰글들을 섭렵한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 리뷰글 속 사진들을 확대하며 그램 수와 영양성분을 가늠하였다. 하지만 덮밥집은 재료소진으로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가까운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에 간 것이다.
일단 약간의 계획 변경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예상하지 못한 음식에 대해서 '살이 찌면 어떡하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는 동시에 함박스테이크와 밥, 감자튀김, 써니 사이드 업 계란프라이가 내 앞에 도착했을 때의 부푼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앞에 앉은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도 않고 먹었다. 고기를 나이프로 큼직큼직하게 썰고 포크로 밥과 함께 입안 가득 음식으로 채웠다. 배가 저장용량을 넘어섰다는 신호를 보내왔지만 무시했다. 차갑고 아삭한 생채소가 아닌 따뜻하고 육즙 가득한 부드러운 고기, 달짝지근하고 약간의 짭짤함을 품은 소스, 그리고 기름진 감자튀김을 지금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스테이크 덮밥에 대한 양조절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니 절제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음식을 욱여넣었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내 얼굴보다 큰 팬에 담긴 음식을 남김없이 비우고 나서야 죄책감이 밀려들어왔다. 배부르다며 그만 먹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친구의 접시와 비교되는 것 같았고, 돼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배는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었고 바지 단추가 불편했다. 애써 티를 내지 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산책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옆에서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내 몸에 이미 들어간 음식들을 모두 소모하려면 운동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샐러드를 며칠을 먹어야 하는지만 생각났다. 얼마 걷지 않아 몸에서 이상신호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흘렀고 뱃속은 요동을 쳤다. 마치 뱃멀미를 하는 듯한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당장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슴을 주먹으로 콩콩 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허겁지겁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히 오래된 건물 안에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낡고 휴지도 얼마 없는 곳에서 꽤 오랜 시간 변기 위에서 배를 움켜쥐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친구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상황 자체가 너무 부끄러워서 편하게 변을 누지 못했다. 그래서 화장실을 나오고 나서도 속이 좋지 않았고 메스꺼움과 불쾌한 음식물의 맛이 입안을 채웠다. 절제를 하지 못했던 음식점에서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고 눈물이 나올 만큼 속상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걷다가 결국 대낮에 길거리에서 토를 했다. 주변에 사람들은 별로 없었는데 바로 옆에서 등을 토닥이며 자신도 술 취해서 토 한 적 있다고 애써 위로하는 친구의 얼굴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날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낸 후 친구와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황스러울 상황에서 위로를 해 준 친구가 너무 고맙다. 하지만 당시에는 만나자고 한 친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나도 SNS에 나오는 마른 사람들처럼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카페와 식당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면서 자기관리를 동시에 해낼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속상함과 지금까지의 노력으로부터의 괴리감에 힘들었다.
그날 이후 친구를 만나기 이전 했던 다이어트 행위들을 개학하기 전까지 계속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복에 몸무게를 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헬스장에 가서 죽도록 달리고 점심에는 차가운 샐러드를 큰 대나무 볼에 가득 담아 배를 채웠다. 다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매일매일 체중을 꼭 쟀고 0.1kg에 좌절하고 기뻐했다. 밥이나 국은 거의 먹지 않았고 그 대신 삼겹살을 계속 리필해서 구워 먹거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오리고기나 참치, 에그마요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주로 먹었다. 간식으로는 SNS에서 유행하던 오트밀 레시피를 따라 하거나 반영해서 혼자 만들어 먹었다. 자기 전에는 마사지볼을 다리에 이리저리 굴리면서 먹방과 레시피 영상을 보았다. “며칠 동안 이 몸무게를 이만큼 유지하면 하나 먹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머릿속에 먹고 싶은 음식들의 목록을 적었다.
대면학기가 시작하고 나서는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강박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시작하면서 다이어트는 할 수 없는 게 맞다고 합리화하면서 밤새 술과 안주를 먹고 야식을 먹었다. 이제는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이전까지 눌러왔던 식욕이 폭발하여 과식하기 일쑤였고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자극적인 음식들을 찾았다. 시험기간 등 스트레스가 유독 많은 날에는 더욱 심했다. 학기 초반에는 그간 다이어트 한 몸이 있어서 몸에 딱 붙고 짧은 옷을 입었고 자존감이 꽤 높은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주저함이 없었고 성격은 밝고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다이어트해야지, 다이어트해야지"라는 속삭임이 있었고 실제로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이어트할 거야”를 외치는 “아가리 다이어터”였다. 약속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심삼일을 결심하는 월요일마다 포케 한 그릇을 다 먹거나 샌드위치를 먹었다. 카페에서는 달달한 음료가 아니라 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였고 등굣길에 연희관을 배경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담긴 콜드컵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카페인 수혈샷을 찍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계속 불어났고 그와 반대로 자존감은 내려갔다. 떨어진 자존감과 체중에 대한 강박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전해진 건지 첫 남자친구는 내가 부담스럽다고 하였고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치마 대신 헐렁한 청바지를 입었고 골지 니트 대신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가렸다. 진한 화장과 화려한 머리 염색을 하면서 어찌어찌 스트레스를 풀고 겉모습을 치장하려고 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우울했고 감자튀김이나 치즈볼을 주문해서 침대 위에서 꼼짝 않고 먹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이 가장 간편한 음식이었고 짜고 속을 꽉 채우는 자극적인 음식이어서 그런지 감자튀김을 가장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음식 종류에 대한 제한이 사라져 폭식은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죄책감과 불안감에 과식을 했고 불규칙적으로 음식을 시도 때도 없이 섭취했다. 그리고 ‘클린식’과 ‘정크푸드’를 하루에 번갈아가면서 먹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과 만나고 대외활동들을 이어가던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2학기가 되어 자취방을 정리하고 집에서 통학을 하게 되었다. 왕복 3~4시간 정도의 거리를 등하교하고 대내외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만나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학업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오니 이전에 해오던 운동과 운영하던 다이어트 인스타그램 계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무엇보다 살을 빼고 싶었다. 2021년 새내기가 되어 처음 도전하는 다이어트로 51kg에서 10~11kg을 뺀 나는 42kg이 되었지만 학교생활을 하면서 2023년 여름 53, 54kg이 되어있었다. 너무 힘들고 욕구를 꾹꾹 눌러 뺀 살이어서 그런지 허탈스러웠고 또 내가 그 과정을 다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20대 중반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집중하고 싶은 공부와 진로가 있었기 때문에 스무 살 시절 하루하루가 다이어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나는 '살 빼기'를 이미 참아야 하는 것, 견디는 것, 힘든 것으로 꽤 거창하게 정의 내린 상태였고 날씬해지면 다른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정석적인 다이어트 루틴을 짜고 식단을 계획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 중 하루이틀은 단백질 바로 점심을 해결했고, 평소에는 단백질 셰이크와 아르기닌을 먹으면서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하러 헬스장을 다니거나 집 앞을 뛰었다.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그래놀라와 그릭요거트를 배달주문했고 아침에는 삶은 달걀과 사과만을 먹었다. 저녁에는 저녁식사 대신 단백질파우더를 섞은 요거트볼이나 오트밀 죽 또는 오트밀 빵을 만들어 먹었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었다. 다시 맛집목록을 만들기 시작했고 체중에 따라 음식을 제한하였다. 약간의 감량에 성공하면 보상심리로 디저트를 먹었고 자책감이 반복되면서 공복에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너무 힘든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하면서 체중계에서 48kg의 숫자를 보았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볼 때는 입맛이 떨어져 오히려 체중이 감소했던 것과 달리 돌아오는 시험기간에는 디저트 폭식을 했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시험기간은 음식과 다이어트 생활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었다. 평소 먹던 시리얼을 리필하였고, 한두 스푼 먹던 무첨가 피넛버터를 통을 잡고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아이허브에서 해외직구로 구매한 단백질 간식 한 통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일주일 동안 나누어 먹으려고 삶은 고구마를 하루에 다 먹었고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고 나서도 밥을 몇 공기씩 퍼먹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유명한 베이커리샵에 들러 쫙 펼친 손만 한 크기의 두꺼운 쿠키와 버터바를 종류별로 구매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밤늦게까지 다 먹었다. 낮에는 배달앱으로 대부분의 주변 디저트샵에서 디저트를 배달주문해서 먹었다. 먹느라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 때문에 참았던 드라마를 정주행 하면서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디저트를 먹었다.
몸과 마음이 둘 다 너무너무 아팠다. 운동은 당연히 가지 않았다. 부풀어 오른 배와 두꺼워진 다리로 헬스장에 가는 것조차 부끄러웠고 움직이기 귀찮았다. 그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영화를 보고 달콤한 디저트로 위안 삼았다. 중간과 기말고사 시험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절식과 과도한 운동으로 일이 주일 동안 55kg를 찍은 몸무게를 겨우겨우 51~52kg으로 돌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있었고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학교시험은 성적이 잘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CPA 공부를 계속하면서 한 달에 한 번 3~5일 주로 디저트를 중심으로 하는 폭식 패턴이 몇 달간 반복되었다. 몸무게는 더 이상 재지 않았고, 음식과 “건강”에 대한 강박에 대한 머릿속 속삭임은 자책감을 꽃피웠다.
2024년 2월 25일 치른 나의 첫 1차 CPA 시험은 완전한 실패였다. 시험 이 주 전부터 폭식이 시작되었고 당연히 제대로 된 마무리 공부를 하지 못했다. 운동은 다녔으나 죄책감으로 몸을 움직였고 순간의 쾌락과 뿌듯함이 지나고 나면 과도한 운동과 식욕을 누르는 다이어트 식단 및 과식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배달앱을 켜서 주문을 했고 저녁과 밤에는 폭식이 계속되었다. 이전과는 달리 시험날이 다가올 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음식이 너무 무서웠고 배가 아팠다. 시험 이틀 전에는 너무 빨리 먹어서 체를 하였고 먹은 것을 모두 비워냈다. 정신을 쏙 빼놓을 지경까지 뱃속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경험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다시 폭식을 하였다. 시험을 보지 못했다는 자책과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삐가 풀린 것이다. 이 주 동안의 폭식으로 체감상 50kg 후반의 몸무게를 찍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싫었고 차라리 내가 내일 눈을 뜨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부모님께 죄송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실패한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폭식한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마치 혼자 겪고 있는 일 같아서 외로웠고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폭식 에너지에도 한계가 있긴 한 것인지, 시험 이후 약 2주가 지나서는 그저 지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마르고 싶다는 생각은 드문드문 있었지만 음식과 체중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먹는 것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하고 음식을 제한하고 과도한 운동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으면서 거의 중독되다시피 다이어트에 집착하였다. 그림과 재미있는 소설, 외국어 공부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던 SNS 피드는 어느 순간 맛집과 카페, 예쁘게 플레이팅 된 다이어트 식단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찍은 몸매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고구마, 방울토마토, 닭가슴살… 초록초록한 SNS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자기관리도 일도 공부도 다 잘하는데 나만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먹는 대신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그림. 연필로 소묘도 하고 캐릭터 그림도 그렸다. 색연필로 초상화를 완성하고 핀터레스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배 터지게 쉼 없이 먹는 날들이 줄어들었고 식간 공복이 오면서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명백한 폭식증 부작용들을 경험하면서도 나는 내가 폭식증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인터넷으로 “폭식증”이라는 단어를 보면 회피하였고 나는 아니라고 세뇌 었다. 왜냐하면 그럴 리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잠깐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이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을성이 있고 언제든지 다시 운동하고 식단하면서 살을 뺄 수 있을 것이라는 나도 믿지 않는 말들을 되뇌었다.
그런데 배가 너무 나오고 윗배, 특히 명치가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뱃속이 밀가루로 가득 차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고 속이 불편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폭식증”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부인하고 또 부인했지만 너무 아프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해결을 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나는 폭식증이고 더 이상 폭식증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너무 아프니까 누가 나 좀 도와달라는 심정으로 이상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