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온기
상처는 사람에게서 시작됐고, 나는 그 답도 사람 안에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호주에서, 여러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보았다.
낯선 이들과 웃고, 대화하고,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헤어졌다.
그 중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하나 나타났다.
운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 그냥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마침 서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나는 시드니를 떠나려 했고, 그는 다음 날, 호주를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 인연은 스쳐가는 듯했지만, 이상하게 끈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멜번으로 이동했을 때도,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지리적 거리는 점점 벌어졌지만, 정서적 거리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혼자 멜번에 도착하던 날, 나는 지인을 만났다.
우리는 얼굴만 보고 몇 번 인사한 사이에 불과했지만,
그날 나는 주책맞게 그녀 앞에서 펑펑 울었다.
호주에서 받았던 상처들을 길게, 숨김 없이 털어놓았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참 따뜻했다.
그녀는 내 울음을 당황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조용히 있어주었고, 그 순간 나도 조금은 괜찮아졌다.
하지만 멜번은 차가웠다.
캐나다의 겨울보다 더 추웠다.
거리의 공기뿐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얼어붙은 듯했다.
나는 독감에 걸려 혼자 앓았고, 그 차가운 도시 한복판에서
‘이곳도 내가 머무를 곳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그때, 멜번에서 처음 만났던 그 따뜻한 그녀와
함께 케언즈로 여행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시드니로 돌아온 나는, 마치 멜번에서 실패하고 도망쳐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인 모임에 나가 털어놓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정착해보려고 했는데, 지금 상태로는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케언즈에 다녀왔다.
봄이지만 케언즈도 차가웠다.
오히려 시드니가 가장 따뜻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날씨마저 원망했다.
떠돌이처럼 이곳저곳을 헤매는 내 자신이, 또다시 미웠다.
모든 걸 내려놓은 채,
모든 걸 실패한 사람의 표정으로
나는 한국에 귀국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럴 거면 왜 갔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떠돌이 생활은, 대체 어디서 끝이 날까.
혹은, 정말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