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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May 12. 2024

5월에 만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러브 스토리

유니버설 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8년만에 돌아온 유니버설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케네스 맥밀란 버전>을 발레 애호가로서 다 성장한 딸한테도 보여주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서희리나도 보고 싶어서 예매했었어요.


저는 미리 케네스 맥밀란의 버전으로는 로열오페라하우스 홈페이지에서 매튜 볼&야스민 나가디, 마르첼리노 샴베&안나 로즈 오 설리번의 로열발레단의 공연 영상을 감상했고, 유튜브에서 로열발레단의 전설 마고 폰테인&루돌프 누레예프의 영상도 찾아봤어요.


루돌프 누레예프가 파리오페라 발레단 예술감독 재직시절에 안무했던 누레예프 버전, 맥밀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존 크랑코 버전(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유니크한 해석이 독보적인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 거의 최초의 로미오와 줄리엣 버전으로 인정하는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마린스키 발레단) 버전을 찾아서 감상한 상태. 정작 딸아이는 프로코피예프 발레 음악과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 자체가 낯설은 상태였는데, 발레 자체를 좋아해서인지 무리없이 감상했어요.


딸아이가 서희리나의 여리여리한 체형이 너무 아름답다고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춤선이 유난히 예쁘다는 말과 함께요.  


저는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심리와 감정을 언어의 유희로 충실히 묘사를 한 작가이니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렇게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특히 원전에 가깝게 해석한 맥밀란의 버전은 철없는 십대들의 풋사랑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감정에 충실했던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만약에 줄리엣이라면?', '내가 줄리엣 역을 맡은 발레리나라면?'하고 상상하면서 관람했어요.


서희리나처럼 관록있는 발레리나도 줄리엣을 연기하는 순간 몸짓, 눈빛만으로도 싱그러운 십대 소녀가 되더라구요. 서희리나의 이미지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어요. 특히 3막에서 서희리나가 이별한 로미오를 그리워하며 공허한 눈빛으로 파리스와 파드 되를 췄던 모습을 보고 제 마음도 덩달아 아팠어요. 딸아이도 연인을 떠나보낸 줄리엣의 애틋한 감정이 마음에  남았는지 관람 후 내내 그 이야기를 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감상할 때마다 유심히 보는 캐릭터가 머큐시오를 비롯한 잔망 캐릭터들인데요,  머큐시오가 등장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도 장난기를 넘어서서 깐죽거리는데, 그 깐죽거리는 캐릭터의 장난끼를 연기가 들어간 춤으로 리듬감있게 춘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매우 어려운 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주인공 로미오도 머큐시오, 벤볼리오와 함께 있을때는 그야말로 현실세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십대 남자아이의 잔망미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나 운명의 상대 줄리엣을 보는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고 줄리엣 역시 로미오에게 왠지 모르게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는데...시선에 담은 감정들은 점점 자석처럼 서로를 향하게 되고 둘은 어느새 간질간질 장난도 치고 로맨틱한 파드되를 추면서 열정을 폭팔시키는 모습을 보고 가 다 설레이더라구요. 이 부분에서 박수가 터져나왔어요. 잔망스러운 남자아이에서 줄리엣을 만나는 순간 순식간에 순정만화 캐릭터가 되는 로미오 역을 맡았던 카마르고의 연기력과 춤실력도 작품에 몰입도를 높여주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 자체가 매력적인 캐릭터같아요. 이 역을 추는 순간 순식간에 십대가 되어 싱그러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운명의 상대와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하게 되는데, 무용수들이 이 캐릭터들을 그토록 좋아하고 춤추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작품 자체가 마법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는 순간 풋풋한 십대 소년소녀가 되어 작품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세속적인 사랑이 아닌 순정파같은 사랑을 하거나 또는 신데렐라가 되어 마법같은 변신을 하고 왕자님이 있는 궁전으로 가는데, 상상만해도 사람 마음을 홀리는 것 같아요.


이번 공연에서 아무리 맥밀란 버전을 사용했어도 애초에 로열발레단과 같은 비주얼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고 연주도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좋은 공연이었어요. 특히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가깝게 해석한 맥밀란 버전은 스토리만 알아도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연극의 성격이 강한 발레 작품이기 때문에 유난히 판토마임이 많이 나오는데, 그 판토마임들은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발레 마임들이에요.  그래서 저는 관람하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발레마임으로 연기할때마다 말풍선이 그려지더라구요. 말풍선 속에 온갖 대사들을 다 상상하며 감상했어요. 비록 비극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티볼트와 머큐시오의 톰과 제리같은 모습들도 재미있었고 군무도 좋았어요. 몬테규가와 캐퓰릿가의 칼싸움 장면도 살벌하게 펜싱검을 휘두르는 속도와 오케스트라의 긴박한 연주가 극적인 요소를 너무 잘 살렸어요. 무엇보다도 서희리나, 다니엘 카마르고를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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