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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게, 라곰"이 가득한 발레공연 <호두까기 인형>

스웨덴 국립발레학교 공연 영상물

by 아트 서연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알게 된 영상물로 스웨덴 국립발레학교 학생들의 공연영상물이다. 처음에는 볼쇼이, 마린스키, 누레예프, 피터 라이트, 발란신 등 널리 잘 알려진 버전을 다 봐서 익숙한 게 지겨워 그 동안에 못 본 버전을 보고 싶을 때 이런 영상물을 보는 거라고 생각하고서 감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괜찮았다.

궁금해도 볼 수가 없는 스웨덴 발레는 사실 잘 모른다. 그런데 학생들 안무를 보니까 짐작했던 대로 부르농빌 메소드를 쓰고 있다.

19세기에 덴마크에서 나름 발레계의 로열패밀리 가문에서 태어난 부르농빌은 왕실지원과 혜택에 힘입어 프랑스에서 발레 유학을 했다.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무용수 경력까지 있었던 부르농빌은 덴마크에 파리 스타일의 발레를 이식했다.

그러나 오늘날 부르농빌 메소드와 프렌치 메소드는 상당히 다르다. 현재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사용하는 버전은 누레예프가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재정립한 메소드로 샤넬, 이브 생 로랑같은 명품을 연상케할만큼 화려한 느낌을 주는 메소드이다.

반면에 부르농빌 메소드는 북유럽 특유의 '휘게 라이프'가 스며들어 발전하면서 처음에는 부르농빌이 프랑스 스타일을 덴마크에 심었지만 그 두 개의 메소드가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발전해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1막의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화려함과 들뜬 분위기보다는 친한 지인들을 초대해 정다운 시간을 보내는 소박한 일상을 무대배경과 의상, 안무로 묘사했다. 발레학교 공연이라서 더 수수했던 것도 있겠지만 러시아의 경우는 발레학교 공연도 화려하기 때문에 이 공연에는 아늑한 실내공간에서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휘게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막의 무대조명과 배경, 무용수들이 입고 나온 의상을 본 순간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 칼 라르손에게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이케아의 가구들이 연상되었다.

발레학교 학생들이 출연한 공연이라 나름 연령대의 폭이 넓다. 어린 학생들은 샹즈망을 뛸 때에 아직 발끝 포인이 제대로 안 된 아이들이 많아서 나름 재롱잔치를 보는 듯 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 사이에서 말괄량이 삐삐처럼 생긴 아이도 발견했다.

아무래도 고학년의 잘 하는 학생들은 2막에 주로 많이 나왔다. 폴드브라 쓰는 것을 보는 순간 '부르농빌 메소드네.'하고 알아차렸다. 부르농빌 메소드에서 폴드브라는 많이 부드럽고 곡선적이다. 그리고 안무도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수수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테크닉 할 건 다 했던데. 고학년 학생들의 춤실력이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무용실에서 센터워크하는 것처럼 '꽃의 왈츠'에서 '톰베 파드브레 글리사드 그랑제떼'만 한참 반복한 것은 너무 한 거 아닌가요? 드로셀마이어 대부님? 학생들 그랑제떼 잘 뛰더만. 그 실력이면 훼떼 앙투르낭 넣어서 안무에 변화를 줘도 됐겠는데요? (드로셀마이어 대부로 출연한 무용수가 안무도 했음)

과자요정 베리에이션(파 드 트루아)은 마린스키 버전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전반적으로 의상이 수수한 것 까지는 '휘게,'라곰'이들어갔으니까 이해하겠는데, 호두왕자님 의상은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님이 앙오를 할 때에 자켓 윗부분이 함께 올라가니까 우아한 실루엣이 안 나왔다.

제일 시선을 끌었던 학생은 사탕요정으로 출연했던 무용수이다. 폴드브라 쓰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폴드브라 쓰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서 잘 쓰는 무용수를 보게 되면 남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피날레에서는 잠시 동화적인 환상에도 빠졌다. 그 옛날 린드그렌의 동화책에서 느꼈던 그 시간과 추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참 행복했다.

https://youtu.be/6tsVHpaiLrA?si=edJ5d-quYoLq1Bt5


크리스마스가 배경인 칼 라르손의 그림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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