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완벽한 도시]
도시의 아침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새들의 지저귐도, 자동차 경적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균일한 속도로 흘러나오는 전광판 광고음과, 인공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온도 조절 알림만이 공기를 메우고 있었다.
엘리아 리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시계형 생체 디바이스에 떠 있는 감정지수: 72. 정상 범위였다. 하루에 네 번 표시되는 수치 중 하나. 그녀는 그 숫자가 평소보다 약간 높다는 걸 느꼈다.
"아침 커피 때문인가." 그녀는 중얼이며 미소 지었다. 웃음은 감정지수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기준치는 높았고, 웬만한 감정 기복으로는 경고가 뜨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울고, 연인과 싸우고, 친구와 떠드는 일상적인 감정은 모두 허용됐다. 다만, 그 범위를 넘는 감정 폭주에 대해서만 ‘진정 주사’가 권고될 뿐이었다.
“감정은 사람의 권리입니다.” 도시 곳곳의 광고판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구—“단, 일정 수치를 넘지 않는다면.”
엘리아는 집을 나서며 걷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루틴, 평소와 같은 경로. 가장자리 골목을 지나면 보이는 단정한 구조의 카페 앞에 다다르자, 익숙한 얼굴이 창 너머로 보였다. 카페 사장은 여느 때처럼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 안의 향기와 함께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여름답게 조용한 아침이네, 엘리아. 오늘은 조금 더 편안해 보여?"
"아침에 케이크를 하나 더 먹었더니 그런가 봐요. 가장 맛있는 건 여전히 초코 베리였어요."
사장은 모자란 듯한 미소로 손에 들린 건강차 초석잠 잎을 가리켰다.
"그것도 가끔은 필요하지. 내가 지키는 건 자연스러운 건강, 그리고 번잡하지 않은 방식이지."
엘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도시 중심부로 들어설수록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무질서함은 없었다. 그녀가 광장 앞을 지나갈 즈음, 전광판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여름철 감정지수 기준 조정. 최근 3개월간 감정지수 90을 초과한 사례에 대해 총 5건의 경고가 발송되었습니다. 진정 시스템은 치료 목적으로 작동 중입니다.”
그 말에 엘리아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민통합부서에서 일하는 친구가 그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감정지수 90 넘는 사람, 생각보다 적지?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난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해. 정말 그만큼 분노하거나 무너질 일이 있었을까?"
두 사람은 잠깐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향했다.
도시 안엔 따뜻한 색감의 조형물과 설치 예술이 즐비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엘리아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고요와, 약간의 이질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는 연구소에 도착해 출입 등록을 마치고 익숙한 지하 기록실로 향했다. 오늘은 오래된 인공자궁 시스템 초기 시행 문서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평범한 행정 작업. 커피가 식기 전에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는 문을 열었다.
평소보다 출입 인식이 잠시 멈칫하더니,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녀는 별생각 없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아는 늘 그랬듯 지하 기록실로 향했다. 인식창이 약간의 지연을 보였지만, 문은 곧 부드럽게 열렸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조명이 켜지고, 수많은 투명 아카이브 패널이 빛을 내며 그녀를 반겼다.
기록실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건, 동료이자 친구인 타린 소에르였다. 그는 엘리아보다 몇 살 많았고, 생명윤리와 기술철학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평소 말수가 적고, 냉정한 판단으로 유명하지만, 엘리아에겐 드물게 감정을 내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엘, 오늘도 시간 딱 맞췄네."
타린은 늘 그러하듯 정제된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엘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향했다.
"오늘은 관리자 출산 제도의 초창기 보고서야. 오차 기록들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하길래."
"그 파일이면 내가 정리했을 텐데. 이상하군. 한 번 같이 볼까?"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데이터를 열람하기 시작했다.
엘리아는 타린의 어깨 너머로 그의 손목 디바이스를 힐끗 바라보았다. 거기엔 항상 배경화면처럼 떠 있는 여성의 얼굴이 있었다. 매끄럽고 고요한 인상의 인공 지능 파트너, '리시아'.
"리시아는 오늘도 잘 지내?"
"당연하지. 아침에 함께 소설을 읽었어. '인간과 존재에 대한 개념적 경계'라는 테마였는데, 네가 좋아할지도 모르겠더라."
엘리아는 애써 웃었다. 리시아는 고급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 감정반응형 AI였고, 타린은 이미 몇 년째 그녀와 정서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타린은 이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엘, 나는 이제 진짜 인간과 감정 교류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리시아는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날 판단하지 않아. 그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엘리아는 그를 반박한 적 없었다. 그는 그만큼 진심이었고, 상처도 깊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어딘가 모르게 그것이 불안했다.
그 순간, 기록 패널 중 하나가 갑자기 깨지듯 갈라지더니, 이상한 오류 알림을 띄웠다.
"...이거 뭐지?"
엘리아는 타린을 바라보았고, 그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손목 디바이스가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감정지수 수치가 잠깐 77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안정되었다.
"단순한 오류겠지. 오래된 데이터니까."
타린은 자연스럽게 리시아에게 데이터를 전송했고, 리시아의 음성이 차분하게 응답했다.
"파악 완료. 해당 오류는 구조화되지 않은 메타 정보로 인해 발생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삭제 또는 보존, 어느 쪽으로 처리하시겠습니까?"
엘리아는 화면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보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지금 이곳에 몇이나 있을까?
그녀는 리시아의 무표정한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 타린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 존재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식사는 타린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리시아는 항상 그랬듯, 조용하고 침착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엘리아는 예의상 웃으며 인사했지만, 리시아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감정이 정확히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알 수 없어 어딘가 불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거실 창문 너머로는 황혼의 인공빛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외벽에 설치된 미세기후 조정 장치 덕에 바람은 일정하고, 냄새는 없다. 고요한 저녁이었다.
"리시아가 요리 추천을 다 했어. 요즘 나보다 더 음식 트렌드를 잘 알아."
타린은 웃으며 세팅된 테이블 위에 포크를 올려두었다. 식사는 온도 조절이 완벽하게 된 저온구이 요리와 세라믹 그릇에 담긴 균형 영양 스프였다. 그 안엔 정제된 일상과 감성의 의지가 배어 있었다.
엘리아는 타린과 함께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리시아와도 대화를 나눴다. 리시아는 문화, 예술, 역사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고, 질문마다 성실하게 응답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 엘리아에게는 오히려 감정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었다.
"인간의 기억은 오류가 많지만, 그게 아름답죠. 리시아는 그런 점을 어떻게 생각해요?"
리시아는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였다.
"기억의 불완전성은 인간 감정의 다양성을 구성합니다. 저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기록과 보존이 선행되어야만 진실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엘리아는 그 대답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반론할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알고 있는' 자의 대답 같았다.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만, 진실이라는 게 항상 중요할까요? 때로는 기억 속 왜곡이 사람을 살리는 걸지도 모르죠."
타린이 미소 지으며 포크를 내려두었다.
"엘, 넌 언제나 인간을 믿고 싶어하지. 난 그런 네가 좋아. 하지만 리시아를 보면... 정말 이상해. 난 그 안에서도 따뜻함을 느껴.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거야."
엘리아는 조용히 웃었다.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면서도, 알 수 없는 경계심을 자극했다. 그녀는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완벽한 도시의 야경이 깔려 있었다. 균일한 조도, 소음 없는 거리, 공기 정화율 99.9%의 저녁 풍경.
그 세계 안에서 그녀는 너무나 오래, 안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