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2

단순하게.

by 장은혁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이동진이라는 타인의 말을 빌려서 나를 내가 온전히 바라보기를 회피하던 게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왜곡된 편향에 매여 살았던 것일까.





나는 언제나 피곤하다. 이를 떠올리면 피곤한 내가 더 피곤해진다. 그다지 부정적이라기보다, 그냥 내가 그렇다. 그런 나를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자. 내게 어려운 어떤 정직이나 고백을 바라더라도, 그건 내겐 그저 바람이다. 나를 거스르는 일을 해내는 것은 숭고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기도 하다. 내게 걸맞는 어떤 부정성은 그 자체로써 나이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에 썼던 자아성찰적 글을 읽다가 수치스러워 미칠 것 같은 기분처럼. 내가 나를 벗어나고자 했던 노력은 결코 악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 나의 본성을 몸에 펴 바르지 않는 한에. 숭고하지만 그저 지금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그만한 상처를 입을 자신이 없다.


나는 조금 더 단순해질 필요도 있다. 모든 걸 드러내고서 살 순 없다. 덮고 살아야 하는 치부도, 내가 눈치채지 않아야만 할 문제들도, 그게 해결될 수 있는지와는 관계없이, 있다. 나를 피곤하게만 하는 생각들이 있다. 그건 그다지 내가 생각하는 깊은 삶의 통찰이 아니다. 오히려 얕은 의심이다. 나에 대한 언제나 존재하며, 끊이지 않을 무구한 의심.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짚고 넘어가지 말아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 인지하되 보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건 비열한 회피가 아니라 어떤 지혜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 사교적이기 않은 내게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분명 존재하는 최악의 거절을 상상하지 않고서 오로지 웃음기 가득하고 친절한 반응만을 기대하는 어떤 왜곡된 상상이 동반되어야 한다. 거절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본성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이것은 내가 내 삶을 지탱하는 의미들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기 위한, 적어도 현상유지는 하기 위해, 구멍 속에 빠진 절박한 내가 할 수밖에 없던 최대한의 선택이다. 거절로부터 받은 상처를 감수하고서 새로운 세계에, 다른 인간의 호의를, 그 타인의 알 수 없는 얼굴을 알아가는 일이다. 거절로부터 받는 상처는 지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건 상처를 받는다는 예상이 있더라도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괴롭히기에. 그럼에도 상처가 아문 곳에서는 어떤 부드러운 새살이 돋아 내게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충만함을 안겨줄지 모른다. 순수함을 잃고서 태어난 무뎌짐과 일상감은 우리에게 다시 피어오른 새살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무감각에 주어지는 순수함을 의심하지 말아라. 나는 다시 수명이 다해버리고 다시 상처받을 그 새살의 순수함을 아직 내 것으로 삼지 못했다. 그렇게 돌아가는 순환. 그것에 반항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가장 큰 반항은 그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의 마침표이다. 다시 부르틀 새살의 부드러운 속살로써, 이젠 다시 망상과 윤슬 섞인 꿈을 꾸어야 할 차례이다.





우리는 한편으로 나아가면서 퇴보해야 한다. 우리는 퇴보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다시, 우리는 퇴보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퇴보해야 한다. 우리는 재생하지 못하는 패인 살점과 탈장으로 파랗게 질려 괴사한 선홍빛의 내장들을 부여잡는다. 우리는 날카로운 꿈으로 새파란 하늘에 구멍을 찌르듯 태양과 같이 배에 헬륨을 머금고 언제까지나 위로, 더 위로 올라간다. 다시 꿈꾸지 못할 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그렇게 살아간다.


나는 꿈을 꾸더라도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노래
Complicated - Mac Miller
조금은 단순하게.
아 근데 글쓰다가 역 2개 놓쳤다.
심지어 앞에 안보다가 에스컬레이터도 반대로 타서 삐익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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