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억을 쌓아가는 여행의 맛
두번째 경주 가족 여행 후기
2020년 1월 말, 우리 가족은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친정 엄마 칠순 기념으로 경주-부산-남해를 돌기로 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5-6학년 담임할 때 수학 여행으로 갔던 경주를 가족과 함께 한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코스마다 많이 걸어야 했지만 경주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아쉬워할만큼 참 좋았다. 예전엔 학급 아이들 인솔하느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는데, 우리집 아이들과 차근차근 돌아보니 참 좋았다.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첨성대를 가장 신기해 했다.
참 좋았던 기억 때문에 언젠가 한 번 더 경주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올 겨울 가족 여행 장소로 결정했다.
경주에서 2박, 부산에서 1박하는 코스로 계획을 세웠다. 일정을 짜기 전, 아이들에게 가고 싶은 곳을 얘기하라고 했더니
"첨성대 꼭 다시 보고 싶어."
"에밀레종 있던 데 다시 가보자."
"부산에서는 국제 시장 가서 어묵 20개 먹을거야."
"부산 가면 무조건 바닷가 가야지."
아이들이 원하는 곳을 중심으로 몇 가지 장소를 추가했더니 경주에서 2박, 부산에서 1박하는 3박 4일의 일정이 나왔다.
나는 다시 경주를 오면서 한 가지 염려스러웠던 것이 있다.
요즘 자주 듣는 라디오 뉴스에서 얼마 전 뇌과학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뇌과학자는 인터뷰 내용 중에 너무 좋아서 다시 갔던 여행지가 별로라고 느껴지면 그 마지막 감정을 기억하게 된다면서 정말 좋았던 기억으로 남기고 싶으면 새로운 기억으로 덧씌우지 말라고 조언했다.
'경주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다시 선택한 이 여행이 별로면 어떡하지?좋았던 경주에 대한 기억이 변하는 건 싫은데....'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아 나는 경주로 내려오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주일 예배드리고 오후에 출발한 탓에 저녁 7시가 다 되서 경주에 도착했다. 첫 코스는 요즘 경주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황리단길'이었다. 이번에 처음 가 본 황리단길은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길거리 음식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경주에 온 관광객들이 다 모인 것처럼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주차장은 차들로 넘쳐났다. 우리 집 둘째가 꼭 먹고 싶다던 십원빵을 사 먹었다. 한 개에 3500원, 5개를 사서 한 개씩 먹었다. 빵 안에 팥도, 크림도 아닌 치즈가 가득 들어 있었다. 찬바람 부는 길거리에서 맛있다며 순식간에 다 먹었다. 두부 아이스크림은 소프트아이스크림보다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찬바람 속에서도 구경을 마치고 우엉김밥을 사서 첨성대로 갔다. 다시 찾은 첨성대는 내 기억보다 더 웅장해 보였다. 첨성대가 이렇게 컸었나 싶었다. 아이들은 조명으로 멋스럽게 변하는 첨성대의 아름다움에 연신 핸드폰을 들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둘째날 밤에 갔던 '월정교'와 '동궁과 월지(안압지)' 야경도 인생샷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4년동안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위치와 각도를 바꿔가며 아름다운 야경을 사진 속에 담고 싶어했다. '이젠 사진 그만 찍고 마음 속에 꾹~ 저장하고 가자'고 설득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경주의 필수 코스 불국사와 석굴암도 다녀왔다.
4년 전에는 불국사에 갔을 때 다보탑이 보수 작업중이라 석가탑만 보고 왔는데, 이번엔 온전한 두 탑 앞에서 사진찍을 수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두 탑을 감싸고 있어 사진 찍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밝아보였다.
4년 전에는 아이들과 친정 엄마가 힘들어해서 불국사만 갔다가 내려왔던 것 같은데 남편은 자꾸만 석굴암을 다녀온 기억이 있다고 했다. 석굴암 가는 길, 아이들은 잘 기억을 못하고 난 수학여행으로 석굴암 갔던 그 기억과 섞여서 갔는지 안갔는지 혼란스러웠다.
처음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처음 본 것 같은 본존불상의 거대함과 섬세함 앞에 감탄을 연발했다.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이라 한산한 편이었다. 여행 오기 전 찾아 본 블로그엔 석굴암에서는 사람들한테 떠밀려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줄서서 지나간다고 했는데, 운좋게 서서 찬찬히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렇게 많이 걸어와서 겨우 이걸 보냐고 투덜거렸다. 아이들의 볼멘 소리를 들으며 경주 여행은 이번까지만 오자고 했다. 좋았던 기억에 안 좋은 기억을 덧 입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주 여행을 다시 오면서 경주에 대한 좋았던 그 기억이 변할까봐 염려했던 것이 무색했다.
예전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장소를 가기도 했지만 다시 갔던 첨성대와 석굴암은 4년 전보다 더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못 가본 대릉원과 그 안에 있는 천마총은 4년 전 기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억이 덧 씌워지는 걸 걱정하지말고 여행의 맛을 누려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