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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S Jan 19. 2023

[캐리비안 기록#3] 어딜 가나 먹는 문제가 중요하다

섬나라에서 밥 지어먹고 사는 얘기

남편을 따라 이곳 그레나다로 와서 집 다음으로 걱정했던 건 먹는 문제였다. 

첫 며칠은 너무 긴장해서 마트에 뭐가 있는 지도 우리한테 뭐가 필요한 지도 몰랐다. 

일단은 길쭉한 롱 그레인 쌀이 있길래 쌀을 조금 사봤다. Sticky rice도 있긴 했지만 가격이 3배 정도 비쌌다. 가져간 밥솥으로 물을 넉넉히 부어 밥을 지어봤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간 귀하디 귀한 장조림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우리가 생각해도 웃겼다. 



일명 "선풍기 틀고 먹으면 안 되는 쌀"



그다음엔 토마토소스를 팔길래 한 번 사봤다. 페퍼로니도 싸게 팔길래 사봤다. 밥과 토마토소스와 페퍼로니를 함께 볶아 먹어보니 정말..... 맛이 없었다. 웬만한 건 다 잘 먹는 남편도 포기할 정도였다. 이렇게 밥을 먹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 웃겼던 동시에 일 년 동안 뭘 먹고살아야 하나 막막해졌다. 먹는 문제는 집 문제보다 훨씬 크게 다가왔다. 역시 한국인에게는 밥이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학교에서 파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 먹어 봤다. 풋롱을 하나 사서 둘이 나눠 먹으면 가격도 저렴했다. 며칠 만에 먹은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 이거면 앞으로 점심은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감동의 서브웨이




그런데 학교에서 수업도 듣고, 헬스도 하고, 공부도 하다 보니 서브웨이 반쪽으로는 양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풋롱을 다 먹기엔 많았다. 이것 역시 지속 가능한 점심 메뉴는 아니었다. 

그러다 학생 커뮤니티에서 일주일 치 채소, 과일, 닭 한 마리, 계란 15개 정도를 배달해 주는 사람을 알게 됐다. 이 나라에 어떤 채소와 과일이 있는지 몰랐던 우리는 일단 있는 대로 골고루 다 배달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패키지는 이랬다. 



이외에도 달걀, 생닭 한 마리가 같이 왔다



패키지 안에는 낯선 채소와 과일이 잔뜩 들어있었다. 일주일간 리스트에 있는 이름을 하나씩 구글링해 보며 먹어봤다. 




이건 Grapefruit 종류인 것 같은데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편은 딱 보자마자 요우즈!라고 했다. 맛이 특별히 달거나 좋지는 않았지만 상큼한 맛이 좋다.






남아공에서 즐겨 먹었던 그레나딜라 or 패션후르츠 // 석류인 줄 알고 열어봤더니 씨앗이 야구공만 한 아보카도가!




그렇게 며칠을 배달 받은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나름 풍족하게 보냈다. 그런데 아무리 먹으려고 해봐도 쉽게 못 먹겠는 채소들이 있었다. 청경채 비슷한 무언가,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호박, 일본 요리 브이로그에서 많이 봤지만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는 오크라... 꾸역꾸역 먹는 채소가 많아졌고 매주 이렇게 배달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직접 발품을 팔아 마트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파는 커다랗고 통통한 아보카도와 가지





우선 이곳은 유통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재고가 많이 들어오는 날 마트에 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주말에 갈 때보다 주중 낮에 마트에 가면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많았다. 

또 채소나 과일은 배달 받는 게 종류가 훨씬 다양하긴 했지만 그만큼 버리는 양도 많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선택지가 줄어드는 대신 딱 먹을 만큼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고기류는 냉동 코너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닭고기, 돼지고기를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고 소고기나 칠면조도 조금 비싸긴 하지만 구할 수는 있다. 

또 남편 수업이 아침에 하나가 있고 한참 뒤 오후에 있어서 중간 시간에 집에 와서 요리를 해먹는 것이 우리 스케줄에 맞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저것 요리를 시도해 봤다. 





간단한 샌드위치도 해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었다



친구들을 초대해 닭볶음탕을 대접했고 과카몰리도 만들어 먹었다!





이렇게 일주일 정도 먹어보니 조금 귀찮기는 해도 우리한테 딱 맞는 식사 패턴을 찾았다. 요리하는 재미도 있고 가격도 가장 합리적이다. 우리 취향에 맞는 식재료를 즐길 수 있고 탄단지가 고루 갖춰진 식사를 하다 보니 건강도 좋아진 느낌이다. 

다만 온갖 요리/먹방 유튜버를 구독한 나로서는 유튜브에 뜨는 온갖 익숙한 음식들... 그리고 먹어보고 싶은 새로운 디저트 등을 볼 때는 평소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최근에는 유명하다는 "개성주악"이 도대체 무슨 맛일까 너무 궁금하다! 

그래도 제한된 옵션으로 이것저것 도전하며 음식을 해먹고 있는 우리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이 과정이 재밌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곳 음식과 우리가 해먹는 음식에 대한 글을 종종 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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