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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Jun 26. 2024

제대로 뛰지 못한 날의 기분


일희일비하지 말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자고 늘 되뇌면서도 작은 일에 격분하여 평점심을 잃는 자신에게 실망한다. 처음 실망하게 된 건 상대 때문일 텐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째서인지 실망스러운 자신의 얼굴만 남아있다. 나쁜 장난에 휘말린 것만 같고, 날 싫어하는 누군가에게 농락당한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는 얼굴 없는 존재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불쾌한 하루였다. 차라리 무더운 게 나아. 서늘하면 숨 쉴 여유가 생기니까. 머리가 팽팽 돌아가니까. 무한한 상상에 빠져서 살아있으면서도 죽는 기분을 느끼니까.


달리기는 생각처럼 되지 않았는데, 휴일 없이 매일 뛰는 바람에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살려고 뛰다 보니 멈추지 못하게 된 사람. 체력이 달려서 멈출 수밖에 없는 사람.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오랜만에 멜론에 들어갔다가 ‘싸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다. 한때 내 일기장이었던 노래들. 글로리데이즈 케세라세라 눈물바다 내 맘이 말을 해 여기서 끝내자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1분 1초. 나쁘다. Thinking of you. The way That I Love You. Solitude. Sick& Tired. My Immortal. 난 미쳤다.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날개. Absolutely Zero. 탈진. 지랄. 조각사랑. 잊기. 솔직하게. 니가 떠나가긴 떠나갔구나. 그리워하네. 잔혹한 여행. 나의 심연.


사랑하는 나의 아티스트는 여전히 내 귀에 대고 노래해.  덫에 걸려 베인 상처들을 / 애써 외면하고서 / 구원을 따라 걷고 있다고 / 너도 믿고 있었니 /// 사랑이 우리를 우리들을 죽였어.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날은 여러모로 망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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