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봄의 달

by Qrie

2026년 3월 13일 금요일, Alfter. 비.


본에 간다. 여섯 시간 기차를 타고 홀로 길을 떠난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떠나 북쪽으로 가는 동안 비가 내렸다.

봄꽃과 새싹들은 구름 낀 어둔 하늘 사이에서 오히려 제 빛을 내었다.

기차에 타는 동안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이 하나의 세계(그럼에도 우리를 하나로 잇는 고리는 무엇일까)’라는 문장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안 떠올렸다. 너무나 다른 세계가 한 공간 속에서 숨 쉬고 있다. 내 앞에 있는 할아버지는 턱에 주름살이 쳐져 늘어나있다. 양 손에 목발을 짚고 기차 위 짐칸에 목발을 어설피 올려놓고 무거운 몸을 의자 위에 내려놓는다. 내 맞은편에 앉은 어느 중년 남성은 그 할아버지가 일등석에 타는 줄 알고 미리 유리문을 열어 잡고 기다린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의 옆에 앉는다. 앉아서 누군가와 전화를 한다. 그는 생일이어서 쾰른에 간다. 중년 남성은 그가 전화를 마치자 생일이냐면서, 생일 잘 보내라고 말한다. 본 중앙역행 기차는 달린다. 산 아래 긴 강이 흐른다. 늙은 남자는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낸다. 가방에는 샐러드가 든 도시락과 샌드위치와 과일이 든 도시락, 그리고 커피가 든 병이 있다. 도시락을 누가 싸주었을까. 생일을 맞은 그에게. 그의 음식에 그에 대한 누군가의 애정과 돌봄이 들어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컵에 따른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는다. 커피향이 기차 공간을 메운다. 그는 샌드위치를 다 먹지 않는다. 귤 하나와 햄이 든 샌드위치 두 개를 먹고서 사과 하나와 샌드위치 하나는 남겨둔다.

맞은 편 옆자리에는 할머니와 어린 아이가 탔다. 어린아이의 눈은 크고 검고 조금은 슬퍼 보인다. 할머니의 머리는 온통 하얗다. 그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할머니의 기억 저 너머에 지울 수 없는 어떤 따스한 사랑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그녀의 날개가 되어주는 듯하다. 아이는 기차가 멈추기를 기다려 다음역의 안내 방송이 나오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역에 완전히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할머니도 따라 나선다. 아이는 문이 열리는 버튼을 직접 눌러서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을 즐긴다.

기차는 오랫동안 산 아래의 강가를 지난다. 여전히 지나고 있다.


나는 예정보다 십분 조금 넘게 본 중앙역에 도착했고, 내리자마자 언니 H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니가 본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배가 고팠던 우린 간식거리를 조금 사들고서 거리를 거닌다. 배낭은 무겁고 비가 조금 내렸지만,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가볍다.

언니 집에 도착하자 언니 J의 어머니가 지어주신 감자전과 김치찌개가 있다. 독일에서 먹는 한국 음식은 완전히 한국 음식은 아닌데, 완전히 한국 음식이다. 재료, 그리고 짓는 이의 마음. 먹는 이의 마음. (음식은 마음일까 재료일까 시간일까?)

비가 온 덕일까. 사람과 존재의 따뜻함과 고유의 빛남이 내 눈에 비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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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2일 목요일 Stuttgart


나의 이야기를 찾아서.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한 내가 일기를 쓴다.

세상엔 얼마나 무수한 이야기가 있을까.

그 이야기를 깨우고 싶다.

그냥 내 리듬에 나를 맡기며 숨 쉬고프다. 춤 추고프다.


어떻게 너를 바라보고 듣고 이해하고 구원할 수 있을까.


우린 모두 겁을 먹었으니,

그럼에도 어떻게 세상과 화해하며 흘러갈까.


나는 사랑을 알면서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행동을 자꾸자꾸 해나가고 싶다.


자기 전에 양치하며, “세상이 그렇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미래에서 온 편지』(현경)의 어느 문장을 되뇌었다.


그렇다.

하나하나 풀어나가자.

그렇게 풀다보면 모두의 손에 잡힌 실,

하나의 원.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봐,

윤무를 윤무를.




2026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Stutt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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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5일 목요일


나의 힘은 어느 걸까?

나의 빛은 어디에서 일렁일까?

가장 멀리에서 울리는 노래를 어떻게 들을까?

나는 얼마만큼 열 수 있을까? 피울 수 있을까?

내 씨앗엔 어떤 무지개가 들어있을까?

나는 어떻게 흘러 흘러갈까?

바다의 노래를 듣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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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일 밤, 도르나흐 여행 뒤 슈투트가르트에서, 밤.



사랑 앞에 서 있는 그 두려움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


스위스 도르나흐 여행.

도르나흐의 자연은 거대하고 마을은 자연의 숨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우린 괴테아눔에서 일평생 부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조금만 걸어가면 산 아래 호수가 있고, 물살이와 오리가 산다. 또 얼마나 무수한 존재들이 살아가고 호흡하고 있을까.

호수를 둘러싼 산은 높고 가파르다. 요하네스 선생님은 가파른 산길을 끝내 걷다보면, 산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신성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산을 오르는 길, 산 꼭대기, 그리고 다시 내려와 만나는 모든 것들이 신성했다. 모든 것들이 다 필요했다.

모든 존재가 다 이유가 있고 빛깔이 있고, 서로가 서로를 완성한다. 화해한다.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하고, 그래서 아름답고 선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


돌아가는 길에는 Y와 바젤에 잠시 들렀다. 강이, 산이, 하늘이. 오래된 집들과 이야기가. 빈틈 사이사이 자연과 화해하는 도시에는 평화가 쉬고 있다.


기차에서는 내내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 Y, M, S, N, E과 사랑과 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왔다. 우린 모두 시간이 흐르지 않길 바랬다. 기차에 문제가 생겨 멈추자 우린 기뻤다.

“이제 집이다!” 긴 여행 끝에 돌아가는 우리의 집. 우리 모두 집이 같다는 게 아름답지 않냐고 친구 M이 그랬다. 정말 그렇다. 우리를 기다리는 공간이 하나고, 우리를 쉬게 하는 공간이 하나다. 우린 함께 집으로 걸어간다.


봄이 불쑥 찾아왔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연한 잎들이 내 온몸을 울린다. 그 작은 빛 안에 모든 게 있다는 게.


기차에서 S가 물었다. 사랑과 자유는 다른 거냐고.

나는 속으로 이야기했다.

사랑은 땅에 있고, 자유는 하늘에 있다고.

인간은 그 사이에 있다. 우린 한평생을 흙 위에서 살아간다.

땅은 만질 수 있지만 하늘은 만질 수 없다. 하늘 없이 흙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랑이 땅에 있는데, 사랑이 하늘과 땅을 잇고 있다. 사랑은 자유의 하모니일까. 사랑을 분명하게 울릴수록 하늘에서는 맑은 무지개가 뜰까. 사랑의 무지개가 자유일까. 그리고 인간은 그 사이에 있고.


도르나흐에서 책 한권을 E와 가져왔다. 제목은 <BREATHING WITH THE CLIMATE CRISIS (Lin Bautze, Ueli Hurter, Johannes Krononberg)>.

(일기장에 붓으로 휘갈겨 필사한 문장을 여기에도 옮긴다.)

“The earth is a living organism, not a broken machine that can be repair. 지구는 고쳐 쓸 수 있는 고장난 기계가 아니고 살아있는 유기체야.”

“The human being is a co-creater instead of a destroyer of the earth. 인간은 지구의 파괴자인 대신 동료존재이다.” (How can we to be co-creater being with the earth? 어떻게 우린 지구와 동료 존재가 될 수 있을까? Where can we learn about that? 어디에서 우린 그걸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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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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