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새해 목표 중 하나는 바로 '남편 작가 만들기'였다. 글쓰기의 유익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워낙 입담이 좋아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사람인 지라말을 그대로글로만 옮기면 책 하나가 완성되리라 기대했다. 예술적 감각을 타고나서 글도 감성적으로 잘 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신나서 남편책의 제목, 목차 등을 조금씩 궁리하며야심 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아쉽게도,결실 없이 한 해를 마무리했다.첫 번째 깨달음,말과 글은 다르다.남편이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고 개인적으로계약한 책 원고 작업에 정신이 없었다.내 밥그릇 챙기느라 그의 밥그릇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요 근래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은근슬쩍 남편의 마음을 다시 떠봤다. 수면 상에 떠오르지 않았던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비춘다.이런저런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기획도 스스로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두 번째 깨달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한다.이참에 '다시 작년의 프로젝트를 재개해 봐?' 하며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 글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 위한 글 모으기에 시동을 건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절묘한 타이밍으로기회가 찾아왔다. 브런치 성수 팝업 전시회였다.작가의 길목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뽐뿌질을 해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자리다. 남편의 글쓰기에대한동기부여와 지속성을 목적으로 방문했는데 뜻하지 않은 혜택이 기다리고 있다. 오프라인 방문자에게 간단한 미션을 완수하면 인턴 작가의 자격을 부여하고, 10월 27일까지 3편의 글을 업로드하면 정식 작가 등록을 해준다니. 여러 차례 떨어지면서 까지 부여받는 브런치 작가의 자격을 이렇게나 쉽게 얻을 수 있다니! 문이 넓어진 이유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만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다.세 번째 깨달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브런치 등록 작가와 인턴 작가에게 즉석 사진을 찍어 작가카드를 제작해 준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예상치못한 이벤트 앞에 어색한 미소로 카메라 앞에 서자 진행자가 아들과 같이 찍어도 된다고 한다.
"아들, 너 작가 카드에 사진 찍혔으니 이제 책출간하면 되겠다."
"엄마 저 이미 책 출간했어요. 바퀴 달린 그림책에서요!"
"아, 맞네! 그럼 아빠가 꼴찌 작가구나!"
미술학원에서 그림과 글을 써서 만든 동화책과 전시회를 기억하는 아들, 이미 자신은 작가다.녀석의 논리라면남편이 작가 가족의 세계에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들어온 셈이다.역사적인 날이다!
뜻깊은 날,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도 많이 만났다.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앞선 걸음으로 브런치에서 글쓰기 발자국을 찍으며 지금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황보름, 정문정 작가들을 글로 만났다.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그들의 시작은 모두 같았다.앞서간 그들의 꽁무니를 잘 따라가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비슷해지지 않을까,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나의 미래가 어떻게 뻗어나갈지 예측불가지만상상만큼은 자유로운 거니까. 성수동에서 고이 담아 온 문장들과 함께 앞으로 작가를 지망하는 모든 분들도 한 번쯤 그곳의 열기를 느껴보면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꿈의 결실이자 시작인 오늘을 고이 책갈피 해둔다. 완벽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고 나서 완벽을 만들어가기 위하여.